마산 임항선은 1905년 삼랑진~마산포 구간이 개통 되고
이어 1923년 마산~군북 구간이 개통 되면서 도심지를 통과하게 되었다.
1977년 석전동의 현 마산역으로 구마산, 북마산역이 통합되어 이전 되었다.
기존에 있던 철로는 마산항으로 석탄이나 군수물자 등을 운반하는
화물전용 철도 노선으로 기능을 하다가 2011년 2월 폐선 됐다.
화물전용 노선으로 전환되기 전에는 인근 농촌에서 마산으로 통학하는 학생,
북마산역과 구마산역, 어시장 등으로 물건을 팔고 사러 나오는 상인 등
수많은 사람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자 소통의 장으로서
그들의 추억과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창원시에서는 코레일과 협의하여 철로를 그대로 두고
새 생명을 불어 넣는 공간으로 활용하여,
삭막한 도심에 옛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멋진 녹색길을 만들었다.
추억과 삶의 애환이 담긴 철로와 함께 임항선 주변에 있는
마산의 근대 역사 현장을 담아 보았다.
▲ 1960년대의 마산시.
1:마산화력발전소(현 마산남부시외버스터미널 일대). 2:서항매립지. 3:제1부두.
▲ 1960년대의 마산시.
3:제1부두. 4:옛 마산세관. 5:임항선 시작점. 6:중앙부두. 7:옛 월포해수욕장 송림.
8:옛 마산역(현 월포벽산블루밍 아파트 단지). 9:월영초등학교.
▲ 1960년대의 마산시.
10:제2부두(현 대한통운 물류하차장). 11:옛 마산시청(현 마산합포구청).
12:마산여자고등학교. 13:옛 마산여자중학교(현 월성초등학교). 14:임항선 철로.
15:무학초등학교. 16:옛 마산~진주간 철로(현 임항선 그린웨이).
17:옛 마산~삼랑진간 철로(폐선되어 사라지고 추억속에 남아 있음).
18:현 3.15의거 기념탑이 있음.
▲ 옛 마산세관 앞에서 어릴적 추억을 담고 임항선 그린웨이를 출발한다.
임항선은 제1부두에서 하역물자를 싣고 이곳 마산세관앞을 지나 마산역으로 향하였다.
제1부두는 현재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철로는 묻혀 있다.
▲ 옛 마산세관 건물은 현재 "마산 신항만(주)"가 사용하고 있다.
▲ 폐선된 철로 오른쪽에는 자전거길과 도보 산책로가 멋지게 열려있다.
▲ 마산항 여객선터미널 터.
분수대옆 육교에 올라 사라져 버린 마산항 여객선 터미널을 보며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본다.
부산, 진해, 통영, 거제, 삼천포로 향하던 여객선은 육로교통의 발달로 인해
없어진지 오래전의 일. 그나마 돝섬 관광객을 위해 여객선 터미널 역활을 하다가
마산 신항만 도시 건설을 위해 항만이 매립되자 신포동 연안부두로 이전하고,
등대모양의 탑과 노래비만 지나간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 일제강점기 1935년 이전에 서성동 교차로에서 마산세관부두 일원에
월포해수욕장이 있었다고 하는 표지석을 보고 그 흔적을 찾아보가로 한다.
▲ 월포해수욕장 터.
왼쪽의 임항선과 나란히 달리는 해안로.
이곳이 일제강점기시대 월포해수역장이 있었던 곳이다.
1935년까지 중앙부두 인근에 약 2Km에 걸쳐 월포해수욕장이 있었다.
하얀 백사장과 노송의 숲으로 이어진 절경으로 유명해 여름철이면
서울에서 마산까지 특별 피서열차가 운행될 정도로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1935년~1936년 일제는 군사용 병참기지를 만들기 위해
월포해수욕장을 매립하고 중앙부두 건설이 시작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 과거 이곳이 월포해수욕장이라고 말해주며 백여년을 외로히 홀로 버티고 있는 해송.
임항선에서 중부경찰서로 가는 방향 약 10여m 길 옆 일양아파트 담벼락에 있다.
▲ 선박안전기술공단이 있는 옛 마산항만청 자리에도
80여년이 된 해송 한그루가 이곳이 월포해수욕장이었음을 말해준다.
▲ 동아일보 1934년 7월 5일자 기사.
때만난 마산월포해수욕장.[마산]
여름의 바다는 젊은 남녀들의 마음을 들썩 하게 되는 판인데
마산, 진해 해수욕장에도 벌써부터 남조선 각지에서 욕객이 모여드는 판이다.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남조선 지방에서도 물이 맑고 모래가 하얀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이 높아 각 여관업자들은 이때 한몫을 보게된다고 한다.(사진은 월포해수욕장)
▲ 임항선은 옛 마산역 터(현 월포 벽산블루밍 아파트 단지)를 지난다.
▲ 1977년 12월 석전동과 합성동에 걸쳐 개통된 통합 삼역인 마산역(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이 개통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옛 마산역이 있었던 자리이다.
▲ 옛 마산역. 곳:마산 월포동(현 월포 벽산블루밍아파트 단지).
1905년에 개통되어 우리 민족사와 함께 수많은 애환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흑백사진은 1910년 마산역전 광장.
▲ 1910년 마산역전. 오른쪽 건물은 현 마산합포우체국 자리이다.
일제강점기때 일제는 월영동 일대를 강제 조차하여 일본인 거주지를 조성하였다.
이때 형성된 새로 조성된 시가지를 신마산이라 불렀으며, 마산역을 신마산역이라고도
하였다. 한국인이 모여 사는 원래의 마산은 구마산이라 불렀다.
아직도 신마산, 구마산, 북마산으로 부르는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
▲ 임항선을 따라 걷다가 해안로를 건너 중앙부두의 역사현장을 둘러본다.
▲김주열 시신 인양지(마산 중앙부두 해변. 신포동 대한통운 물류 하차장이 있는 해안가)
1960년 4월11일 중앙부두 앞 바다 수면위로 10대로 보이는 소년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체로 떠오른다.
시체는 당시 마산도립병원(현 경상남도 마산의료원)으로 옮겨졌다.
참혹한 모습을 확인한 13만 시민들은 격분하여 4월12일 대규모 마산 2차의거를
일으키게 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참혹한 어린 학생의 모습이 전파를 타자 4월18일 서울 고려대학교의 시위에 이어
4월19일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전국의 각 대학교및 고등학생과 시민들이 데모를 하게 된다.
4월19일 서울에서만 경찰의 발포로 18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 김주열 열사 추모의 벽
▲ 중앙부두의 현재 모습.
창원시에서는 부두를 개방하여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트랙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
주었다.
중앙부두는 1935년~1936년 일제가 군사목적으로 월포해수욕장을 매립하여 건설하였다.
초, 중학교 시절 1960년 후반까지도 일제의 군수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부두 해안가 물속에서 일제가 떠나면서 버린듯한 많은 탄약등 화약을 건져 은박지로 싸서
불놀이를 하곤 했다.
▲ 임항선은 마산합포구청을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건너 철길은 이어진다.
▲ 어부 부부상.
임항선 건널목을 건너면 창원 검철청 마산지청 앞에 어부 부부상이 서있다.
1969년 11월에 준공된 옛 서성동 분수로타리(현 서성광장, 서성동 교차로) 가운데에
서있던 이 어부 부부상은 세계를 향해 약진하는 마산의 평화로움을 담아냄으로써
당시 마산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90년 2월분수로타리의 철거와 함께 설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이 자리에 다시
설치하게 되었다.
▲ 1970년 어느날 분수로타리에서 추억을 되새긴다.
당시에는 마산시민에게 즐거운 볼거리가 되었다.
▲ 마산 전기불 터.
임항선을 잠시 벗어나 마산합포구청을 거쳐 추억이 깃든 장군천까지 가보기로 한다.
마산합포구청에 있는 이 곳 불터는 마산지역에 처음으로 전기를 만들어 보냈던 곳이다.
1911년 3월 16일. 한일와전 마산지점을 설립하였고 그 해 5월 23일 바로 이 자리에
있었던 발전소에 불이 점화되므로써 이 지역 주민들이 문명의 빛을 누리게 되었다.
▲ 마산합포구청에 있는 타임캡슐.
2010년 7월1일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가 창원시로 통합되어 마산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마산시청사는 마산합포구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통합되기전 2010년 6월 17일 마산시는 2070년 6월 17일 개봉하기로 하고
타임캐슐을 묻었다.
▲ 장군천.
장군천에서 가재를 잡고 물장난 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장군천은 무학산과 대곡산 능선의 봉우리에서 발원하여 완월폭포를 만들어내고
완월계곡을 거쳐 마산합포구청을 지나 마산만으로 유입한다.
▲ 마산 소방서 옛터.
장군천 월포교 옆에 있다.
이곳은 경남소방의 모태로서 1911년 10월 1일 마산 소방조로 발족하여 97년간
소방청사로 활용하였던 옛터이다. 마산 소방서는 신포동으로 이전하고 현재의 건물은
창원시 일자리 지원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 장장군묘와 장군동의 유래.
월포교를 지나 성지여중고 방향으로 100여m 올라가면 장군교가 나온다.
장군교를 지나 장군천을 왼편에 두고 성지여중고 방향으로 약 50여m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왼쪽으로 장군천으로 가는 골목길 입구에 있다.
▲ 다시 임항선으로 되돌아와 걸어간다.
▲ 야간 조명 시설이 되어 있어 야간에도 즐길 수 있다.
▲ 최근에 설치한 장미터널. 이제 겨우 장미 넝쿨이 형성되는 중이다.
▲ 추산동으로 진입하는 철교. 철교 오른쪽으로 가도교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였다.
▲ 마산가도교 위에서 바라본 3.15의거 기념탑.
▲ 몽고정 안내간판을 읽어보고 철교 아래로 내려가 역사의 현장을 둘러본다.
▲ 몽고정(蒙古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82호.
고려시대 말 1281년에 중국 원나라와 고려군의 려몽 연합군이 일본 정벌을 위해
이곳 합포(현 마산)에서 출항한다. 2차에걸쳐 일본정벌에 실패한 뒤 남해안의 방어를
위해 지금의 환주산(현 회원성지)아래에 군사를 배치하고 진을 설치하였다.
이곳에 주둔한 군사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몽고정이라 쓰인 비석은 1932년 일제의 고적보존회가 세운 것으로 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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