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산자랑 과 나]/내고향 마산!

사진으로 본 경남 마산 백년의 역사 현장 (1)

현정 (炫貞) 2017. 9. 5. 15:41

"마산의 노래"

'무학산 뻗어내린 푸른맥박이 남해의 문을 열어 꽃피운 고장.

그아래 새희망을 누려온 우리. 보아라 십육만 단락한 가족.

음 음 음 산좋고 물좋아 인심이 후한곳. 살기좋다 이고장 마산이란다'.


초, 중학 시절 국민의례식 때 애국가 다음으로,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불렀던 이 노래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마산과 함께 살아와,

내고향 마산에 대한 애착심이 너무 깊은 탓인 모양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이 월영동 일대에 침략의 전초기지인

조계지(租界地)를 설정하여 일본인 거주지와  새로운 시가지를 조성하고,

마산역을 둠으로서 이 일대를 신마산. 창동과 오동동, 산호동 의

한국인 거주지역에 구마산역을 둠으로써 이일대를 구마산.

그 위쪽의 교방동 지역에 북마산역을 둠으로서 북마산이라 불렀다. 

지금도 신마산 구마산 북마산이라 부르고 있으니

이러한 일제의 잔재는 하루빨리 청산해야겠다.
구한말 창원군에서 마산시와 진해시가 분리되어

행정구역이 마산시, 진해시, 창원군으로 되었다.

1976년 창원군의 상남면, 창원면, 웅남면 일대가

창원기계공단으로 지정 되어 마산시 창원출장소로 되어었다가  

1980년 창원기계공단이 창원시로 됨에 따라 

창원군은 의창군으로 바뀌고,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 의창군으로 나뉘게 되었다.

1995년 의창군은 마산시, 창원시, 부산시(가덕도=천가면) 로 이관되고,

2010년 마산시, 진해시, 창원시가 통합 창원시로 바뀌면서

사실상 개항 100년이 넘은 마산시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장군천에서 가재잡고, 돝섬에서 낚시,

중앙부두 해변에서 헤엄, 서원곡의 빨래터 등

낭만이 깃든 추억의 장소는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의 거주지역에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치욕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마산 개항 100년 하고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100년 역사에

일본이라는 이름을 뺄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라했다.

그 역사를 통해 오늘의 교훈을 삼고자 한다.   

물 공기 따뜻한 기후 등 '천혜의 고장'이었던

마산의 모습을 옛 추억을 더듬어 사진에 담아본다.


  


▲ 1920년대 마산항.

오른쪽이 율구미(현 가포 문화방송 송신소가 있다)와 돝섬은

    현재모습 그대로이다.




▲ 2013년2월 현재 마산항 모습(신마산 일대).

지금도 신항만 도시 건설을 위해 매립중이다.

   오른쪽의 율구미(가포 문화방송 송신소 자리)가는 해안 포구는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돝섬 건너 귀곡동의 포구는 매립되어 두산중공업이 들어서 있다.




▲ 일제 건물. 신창동. 2012년.8월 촬영 



▲ 일제건물. 옛 삼광청주 자리. 곳:장군동. 2010년.10월 촬영.



▲ 일제건물. 신창동. 2012년.8월 촬영




▲ 일제 석조건물. 월남동. 2010년.8월 촬영.




▲ 일제건물. 월남동. 2013년.2월 촬영




▲ 1908년 건립되어 구한말 일본영사관,

   마산부 청사, 창원군청을 거쳐 1995년도까지 의창군청으로 사용 되었다.




▲ 1995년 의창군이 역사속으로 사라질때 까지 군청으로 사용 되었던 구 일본영사관.

    외벽만 약간 개축했을뿐 옛모습 그대로이다.




▲ 일본영사관 터. 곳:대내동.

현 경남대학교 평생교육관.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만든 자리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밖에 볼 수 없다.




▲ 일본제일은행 마산출장소 터. 현 월남성당.

표지석에 '1907년 마산에서 근대적 금융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은행 마산출장소가 있던 자리이다'

조선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 진출한 일본 은행을 미화한다는

시민들의 지탄에 표지석은 철거되고 없어져 버렸다.




▲ 일제강점기 근대건축. 마산 신창동 창원천 경교. 1943년 건립. 2010년10월 촬영.




▲ 일제강점기 근대건축. 마산 평화동 창원천 월영교. 1900년경 건립.

   건축 모양이 일본냄새가 풍기는 것 같다. 2010년10월 촬영.




▲ 일제강점기 근대건축. 마산 평화동 창원천 축대. 1900년경 건립. 2010년10월 촬영.




▲ 일제강점기 근대건축. 마산 월남동 창원천 무학교.

   1900년경 건립. 건축 기법이 일본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2010년11월 촬영.




▲ 일제강점기 근대건축. 마산 두척동 철도 교량.

   1923년 건립. 2012년 철도 고속화및 경전선 복선화 개통으로 인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11월 촬영.




▲ 일제강점기근대건축. 마산 내서읍 중리 광려천 철도 교량. 1923년 건립.

   2012년 경전선 복선및 직선화 개통으로 인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11월 촬영.




▲ 마산 조계지 터. 곳:마산 월영동 일대.

월영사거리(경남대학교 정문부근)에 일제 강점기 조계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조계지(租界地)란 불평등조약의 결과 개항등에

설정되어 자유로운 통상주의와 치외법권이 인정되던 구역으로서

   제국주의 침략의 전초기지이다.




▲  마산상공회의소 회관. 곳:마산 중앙동 1가.

    1900년 민족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결성된 마산 상호회 건물로서,

    일제강점기에는 1939년 부터 일본인이 사용하다가 해방후 1958년 까지 사용되었다.

    그 후  경남조달청이 1980년대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경남조달청 옛 터. 곳:마산 중앙동1가.




추산동 마산정수장 터.  곳 : 마산시립박물관.

1981년 낙동강물을 이용한 광역상수도 사업이 완공 되기까지

봉암 수원지물을 끌어다 이곳에서 정수하여 마산시민의 식수로 사용되었다.

정수장이 있었던 산을 (현 회원성지)수도산이라 불렀다.

山明水淸(산명수청) 水德无疆(수덕무강) 석각은 1930년 당시 마산부윤(시장)인

'판원지이'의 글씨로 정수장 입구에 있다가 시민들의 지탄으로 철거되어

이리저리 뒹굴다가 추산동 정수장이 있었던 박물관 뒤켠에 두었다.




▲ 옛 마산 헌병분견대. 곳:마산 월남동 3가.

   일제강점기에 악명높았던 마산헌병분견대로 사용 되었던 건물로

192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 1899년에 세워진 일제강점기 시대의 러시아영사관.

    1960년대 초등학교시절에 이 건물이 있었든 것으로 기억된다.




▲ 러시아 영사관 옛 터. 곳:마산월포초등학교.

   이곳은 1899년 개항과 함께 설치된 각국 공동조계지 안에 러시아 영사관이 있던 자리이다.




▲ 신동공사 터. 곳:마산 청계동 근린공원.

공식명칭은 '관리마산포 조계 사무공사'이다.

   1901년 마산 조계지의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지명,지번을 마구잡이 일본식으로 바꾸어 지금까지도 창포동. 대내동. 대외동,

청계동. 신창동. 문화동. 홍문동. 화영동. 태창동. 유목동. 평화동.

두월동. 월남동. 신월동 등 동명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 옛 마산형무소 터. 곳:마산 오동동.

   이곳은 1913년부터 1970년까지 마산형무소가 있었던 자리이다.

   지금도 당시 형무소 벽의 창살이 그대로 있어 형무소임을 알 수 있다.






▲ 봉암동 수원지. 곳:마산 봉암동 산.

   1929년 마산시에 수도물을 공급하기위해 건설하였으며,

1981년 낙동강을 이용한 광역상수도가 공급되면서 수명을 다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있다.




▲ 마산 봉암수원지. 봉암수원지 둘레길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산책로로 각광을 받고있다.

 



▲마산 불종거리:

  일제시대 동성동 희다방 앞에 설치하여 불이 나거나 위급한 일이 발생하였을때

종을쳐서 시민들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 되었다.

그후 이 일대를 불종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일제말기에 도로 확장으로 인해 철거되었다.

  마산시에서 그 뜻을 살리고자 1999년 5월27일 개항 100주년을 맞아

창동, 동성동, 오동동 코아양과 앞 네거리에 마산의 전통 문화를 상징하는 

조각과 종을 단 아치를 설치했다.




▲ 馬山神社. 곳:마산문화동 제일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천황을 신격화 하기 위해 천황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곳곳에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강제로 참배하게 했다. 

   神社는 일본인의 민간 종교인 神道인 사원이다.




▲일본의 마산신사(馬山神社) 터. 곳:마산제일여고.

계단은 옛모습 그대로이다.

  한국인들로 하여금 강제로 일본천황을 위해 참배하게 한 치욕의 자리에

교육단지가  들어 선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일본 화류문화의 상징인 게이샤(기생)문화가 마산의 일본인을 위해

요정과 여관을 겸한 망월루(望月樓)가 있었다.

90년대까지도 이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이 자리에 신마산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 망월루가 있었던 자리. 곳:마산월남동 신마산교회.   




▲ 옛 불로장유 벽화. 곳:마산 중앙동.

근대문화유산으로 옛 삼광청주, 선일탁주공장, 불로장유 등이 있었던 곳의

오래된 담벼락을 깨끗이 정비한뒤 "술도가 거리" 벽화를 그려 추억의 마을 옛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게 중앙동 사무소에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 마산 중앙동 불로장유가 있었던 자리에는 현대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 삼광청주와 칠성주조장이 있었던 자리에 남아있는 담벼락에

추억의 옛 모습을 벽화로 재현해 놓았다.





▲ 삼광청주가 있었던 자리. 곳:장군동




▲ 선일탁주공장이 있었던 자리에 남아있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옛 마산헌병분견대

등록문화재 제198호

명  칭 : 옛 마산헌병분견대

등록일 : 2005.09.14

장  소 : 마산시 월남동 3가 11번지

소유자 : 국방부


1926년 건립된 일제식민통치의 상징적 기관인 헌병대 건물로

현재는 충호회 경남지부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일제시대 관공서 건축물로서의

권위적인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건축사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