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3월15일 가장 치열했던 투쟁현장에 세워진 3.15의거 기념탑
1960년 3월 15일 정. 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하자 이에 분개한 시민과 학생들이 항거해 싸웠다.
1차 2차의거로 인해 마산에서 12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구금되었다.
이는 곧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게 된다.
그 날 치열했던 투쟁현장에 이 탑을 세워
마산 시민의 기개와 3.15의거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
탑문: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15일!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 이슬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니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에 빛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도다."
▲ 3.15의거 무학초등학교 담장 총격 현장.
1960년 3월15일 저녁, 시청으로 향하던 시민들이 무학초등학교 교문앞에서 대치중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19발의 총탄 자국이 있는 무학초등학교 담장.
무학초등학교 정문과 담장 신축으로 인해 철거해야할 운명에 처했으나 역사 현장
복원 단체에서 공사중지 요청이 받아들여져 역사 현장으로 남아있다.
▲ 추산동으로 진입하는 임항선 철교.
임항선 그린웨이를 걷는 시민에게 1960년 3월 15일 무학초등학교 총격 현장을
잊지 말기를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그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 몽고식품 창업지.
마산 가도교 아래 무학초등학교 옆에는 몽고간장으로 유명한 몽고식품 창업지가 있다.
창원 팔용동으로 이전하기전 이곳에서 몽고간장이 생산되었다.
몽고간장 이름은 인근에 몽고정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4.19혁명의 진원지(당시 마산도립병원, 현 경상남도 마산의료원)
김주열의 시신이 안치된 이곳에서 분개한 마산시민의 데모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비 문:
"1960년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이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항쟁이 전개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의로운 마산시민의 투쟁정신은
곧 4.19혁명 승리의 시발점이 되었다."
▲ 야경
▲ 임항선 철로 옆 축대에는 1957년부터 1960년대의 영화 포스트를 전시하고
당시의 추억을 돌아보게 한다.
거의 고인이 된 추억의 영화배우를 만날 수 있다.
최무룡, 황해, 박노식, 이예춘, 허장강, 김승호, 최남현, 이수련, 양훈, 양석천,
석금성, 장민호, 김희갑, 박암, 이대엽, 김지미, 도금봉, 황정순, 최은희,
문정숙, 조미령, 김혜정, 변혜숙, 전옥 등....
▲ 추산정수장 옛 터와 신신예식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철로를 벗어난다.
▲ 임항선 철로 옆에서 오르는 추산 정수장 입구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 추산 정수장이 있었던 곳은 지금은 정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30년 일제의 의해 준공된 추산 정수장은 1981년 낙동강물을 이용한
광역상수도 사업이 완공되기까지 봉암수원지 물을 끌어다 이곳에서 정수하여
마산시민의 식수로 사용되었다.
정수장이 있었던 산을 수도산(환주산, 현 회원현 성지)이라 불렀다.
석각은 1930년 당시 마산부윤(시장)인 '판원지이'의 글씨로 정수장 입구에 있다가 시민들의 지탄으로 설자리를 잃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현 마산박물관 뒤켠에 있다.
▲ 추산 정수장에 입구에 있었던 석각 산명수청(山明水淸) 수덕무강(水德无疆).
▲ 회원현 성지. 경남 기념물 제88호.
추산 정수지가 있는 환주산 회원현 성터는
박물관 뒤쪽으로부터 정상부까지 토성으로 축조되어 있다.
토성의 축조방법을 알 수 있도록 토성을 절개하여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 회원현성지 망루. 2008년 환주산 정상에 복원된 망루는 마산만을 굽어보고 있다.
▲ 문신 미술관.
추산동 환주산 기슭 마산박물관 옆에 위치한 문신 미술관은
마산 출신으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의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마산 9景(경) 중 하나이다.
▲ 창원시립마산박물관
임항선이 지나는 환주산 기슭 옛 추산정수장 터에 있는 마산박물관을 둘러본다.
관람료는 무료.
▲ 청동기, 철기새대로 젖어 들면서 창원지역에 고대국가가 형성 되었다.
경남의 해안 일대에는 포상팔국이라는 8개의 부족국이 존재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창원지역은 포상팔국 중 골포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마산 현동, 대평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의 유물.
▲ 주도(酒都) 마산 그곳에 가면 기획전시실.
▲ 추억의 술병과 술통.
▲ 추억의 술병과 술통.
▲ 마산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몽고정 맷돌.
고려 충렬왕때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합포에 군사를 주둔 시키고
우물을 판 것으로 추정되는 몽고정 옆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전차 수레바퀴 또는 군량미를 가는 맷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마산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신라말 학자였던 최치원의 글씨로 음각된 월영대 표지석과
마산과 월영대를 노래한 고려, 조선시대 대학자 13인의 시를
선정하여 새긴 시비가 서있다.
▲ 추산 정수장, 마산박물관, 회원성지, 문신미술관을 둘러보고
임항선으로 되돌아와 건널목을 건너 신신예식장으로 향한다.
50년의 역사를 가진 신신예식장은 임항선과 함께하는 역사의 증인이다.
50여년 동안 이곳에서 무료로 결혼식을 올린 숫자가 1만3천쌍이라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막내 여동생 결혼식 장면의 무대가 되었다.
주인 백낙삼씨는 여든의 나이에 황정민, 김윤진 결혼식 장면의 사진사로 캐스팅되었으며
옛날 50여년전의 결혼식장 배경이 향수를 자극한다.
신신예식장은 성호남 8길 골목길을 내려가서 만나는 몽고정길에 있다.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철길 건널목 간수.
▲ 임항선을 앞에 두고 마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성호동 일원 달동네에 조성된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과 추산정을 둘러 보기로 하고 임항선을 벗어난다.
▲ 환주산 기슭의 고지대에 마산만을 바라보며 조성된 이 동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임항선을 앞에 두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벽화를 그려 마산의 관관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 백년우물.
약 1910년 이전에 형성된 이 우물은 성호동 전 주민이 이용하던 우물로
높은지대에 있음에도 가뭄에 마르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이 일대의 주민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생명수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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