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暗行御使) 國王의 눈과 귀
“암행어사 출두야 !”
한 번 고함하니 江山이 무너지고
두 번을 고함하니 草木이 떠나는 듯
세 번을 고함하니 남원이 우글우글
암행어사 이몽룡이 변사또 일당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春香傳> 명 장면이다
중국에도 황제가 자신의 측근에게 지방을 돌며
감찰하게 하는 어사 제도가 있었지만
비밀리에 파견해 백성의 고통을 살피고 지방관의 비리를
조사하게 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제도였다
암행어사는 관직에 오른지 얼마 안 된 청렴한 인물
가운데 뽑았는데 이유는 경력이 오래된 사람은 혈연과
지연에 얽메여 감찰이 어려울 수 있고 수천 수만리를
걸어 다녀야 하므로 건강한 젊은이여야 했다
암행어사가 된 사람은 王으로부터 봉투 하나를 받았는데
그 안에는 “짐(王)을 대신 한다”라는 王의 親筆과
내려가 살필 지역, 특별히 감찰해야 할 사항이 적힌
문서가 들어있었으며 이어 수행 할 관원과 노자, 마패 등을
지원 받았으며 마패에 새겨진 말의 수 만큼 관청의
말을 빌릴수 있었지만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는
암행어사에게 말은 필요치 않았으므로 오히려
왕의 사신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에 가까웠다
어사는 즉각 해결해야 할 상황에 처하면 출두 (出頭)
즉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리고 백성들의 진정 내용을 듣고
장부와 창고를 검열해 관리의 부정함이
드러나면 창고를 봉인하고 수령을 처벌했다
또한 복명 (復命)이라 하여 감찰했던 수령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효자, 열녀 등의 미담도 적어 王 에게 보고하였다
암행어사의 행적은 철저히 비밀로 붙여졌고
심지어 거지 행색까지 하고 다니며 백성들의 불만을
가장 가까이서 듣기도 했으며 朝鮮 成宗 때 암행어사
조지서는 “항상 번개처럼 행동하였으며 복색이 무상하여
그의 행동을 알 수가 없었다“라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러나 신분을 제대로 감추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玄宗 12년 충청 지방에 파견된 한 암행어사는
친구네 집집마다 들려 누구는 포상 할 만하고
누구는 파직 할 만하다 라고 말을 흘려
암행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한다
또 어떤 어사는 관할 지역 서른일곱 고을 가운데
무려 스무 군데나 출두하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 모두
어사의 얼굴을 알아 본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朝鮮 英祖 때 암행어사로 활약한 박문수는 억울한
사람의 결백을 입증하고 횡포를 일삼는 사람을
벌 주는가 하면 노총각 노처녀를 맺어 주는 등 백성들의
어려운 삶과 함께한 인물로 수많은 미담이 전해진다
暗行御使 이야기 착한사슴 옮긴글
※ 마패 사진이 없어 이 사진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 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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