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히말라야 트레킹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에 대뜸 용기가 났다.
그리고 정복자도 순례자도 아니면서 미지 세계로 향하는 이유를 길 위에 서서 비로소 생각한다.
그저 이곳에 오기로 예정되었던 것 같다고. 오랜 시간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벗을 이제야 만나러 간다고.
◆티베트ㆍ인도 잇는 좀솜 루트 = 포카라에서 국내선을 타고 20분, 좀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미니 트레킹에 참가할 예정이다.
박타푸르, 보드나트, 바그마티강, 파슈파티나트, 스와얌부나트…, 카트만두에서 만난 네팔 속사연들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하고팠던 것은 역시 히말라야 설산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 일. 미약하리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히말라야를 느껴보고 싶었다.
좀솜은 안나푸르나 지역 인기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무스탕을 거쳐 `불교 성지` 묵티나트로 향하는 트레커들이 주로 선택하는 루트다.
포카라에서는 반팔 티셔츠로도 거뜬했지만 영하 5도와 영상 15도를 오가는 좀솜에서는 어림없다.
바람이 휘몰아치기 때문에 피부에 닿는 공기는 더욱 차갑다.
윈드브레이커 안에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좀솜 가도(街道)에 나선다.
옛사람들은 네팔과 몸을 맞댄 티베트와 인도로 가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 한다.
해발 2710m. 틈틈이 비탈을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대부분 평탄한 길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고지대인지라 걸음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금세 숨이 가빠온다.
침착하게 페이스를 조절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닐기리 설봉에서 녹아내리는 물이 강이 되어 곁에 따라온다.
모래바람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셀 때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고산족이 차려놓은 소박한 노점에 들러 암모나이트를 만지작거려도 본다.
방울을 딸랑이며 줄지어 가는 조랑말떼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2시간쯤 지났을까, 길 끝에 아기자기한 과수원 마을 `마르파`가 보인다.
이 주변 산간마을 중에서도 풍경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살구, 호두, 배 등이 많이 나는데 특히 사과로 만드는 브랜디가 유명하다.
마을 초입에 있는 사원에 오르니, 고르게 이가 난 듯 하얀 벽돌로 정돈된 마르파가 훤히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가 많아 며칠 머물기도 좋은 곳이다.
◆사랑코트서 보는 히말라야 일출 = 좀솜을 떠나 다시 포카라. 이른 새벽 사랑코트에 올라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해발 1592m 사랑코트 전망대는 히말라야 일출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새벽 5시에도 이미 세계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이어 동이 트고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와 물고기가 펄떡이는 듯 하늘로꼬리를 치켜세운 마차푸차레가 알몸을 드러낸다.
엊그제 페와호수에서 보트를 타면서 구름으로 몸을 가린 마차푸차레를 보며 어찌나 안달했던지.
햇빛 세례를 흠뻑 받고 있는 히말라야. 하지만 백번 솔직히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웅장하지도, 인생을 흔들어놓을 만큼 감동이 밀려오지도 않는다.
그저 "나중에 꼭 만나!" 오래 전 약속했던 친구를 이제야 대면한 것 같다.
시간을 돌고 돌아 조우해 반갑고 정겹다.
거창한 깨달음은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벗이 때로 멘토가 되듯, 이 시간이 언젠가는 삶을 버티게 하겠지.
네팔티 `찌아`로 몸을 녹인 후 산악박물관에 들른다.
에베레스트를 사모했던 수많은 얼굴들이 거기에 있다.
`에베레스트`는 세계 최고봉을 측량한 영국인 이름. 네팔에서는 `지구의 머리`란 뜻으로 `사가르마타`라 부른다.
문득 카트만두 공항에서 만났던 안나푸르나 등반대가 생각났다.
사가르마타는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되어,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을 것이다.
네팔에서 모든 일은 `나마스테`로 시작해서 `나마스테`로 끝이 난다.
`나마스테`란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신을 경배합니다`라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 하지만 일상에서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만남과 헤어짐을 말할 때 부담 없이 쓰는 인사말이다.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칠 때 두 손을 모으고 "나마스테" 하면 네팔의 미소가 어김없이 열리곤 했다.
그 즐거움에 빠져 시간이 금세 흐르고 이제 벗들에게 작별을 고할 때. 하지만 이것은 여행의 끝이자 인연의 시작이다.
네팔과 함께 할 이야기는 이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새롭게 윤회를 시작할 것이다.
나마스테, 사가르마타. 나마스테, 마차푸차레.
△항공=대한항공에서 인천~카트만두간 직항편을 매주 월요일마다 운항한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는 7시간5분, 카트만두에서 돌아올 때는 5시간55분 걸린다.
△상품정보=한진관광에서 일반인을 위한 네팔 트레킹 상품을 기획했다.
네팔 문화명소를 돌아보고 히말라야 대파노라마를 감상한다.
`안나푸르나 정통 로얄 트레킹 9일`은 189만원, `에베레스트 하이라이트 트레킹 9일`은 199만원, `랑탕 강진곰파(헬리콥터) 트레킹 9일`은 199만원, 모든 상품 2007년 2월 26일까지 매주 월요일 출발. (02)726-5850 ***
[손영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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