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피할 수 없겠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있는 김모씨(40)는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단풍철이 와버렸다. 이미 TV뉴스는 지난달 중순부터 ‘산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고 외쳐댔다. 하지만 화면을 아무리 눈씻고 봐도 김과장 보기에 산꼭대기에만 살짝 붉어졌을 뿐이다. 과연 매스미디어는 성급하다.
단풍 뉴스를 볼 때마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은 ‘저것 보라’며 김과장을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김과장은 그동안 치열한 사내 인사경쟁 상황을 핑계로 “과장 진급하면 여행가자”며 가족의 염원을 저버렸던 터다. 이번 인사에서 만년대리 신세를 면한 이상 올해는 더이상 같은 핑계가 안먹히게 됐다. 빼도 박도 못할 처지의 김과장은 “가지 뭐!”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올가을 단풍 절정기는
단풍여행 경험이 없는 김과장은 우선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찾았다. 단풍은 나뭇잎 속의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안토시안이라는 색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일어난다. 안토시안은 붉은색이지만 나무마다 엽록소나 황색 및 갈색의 색소 성분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붉은색 외에 노란색, 갈색의 단풍을 만들어낸다. 통상 산꼭대기부터 전체 면적의 20%까지 단풍이 물들어 내려올 때를 단풍 시작일, 이후 2주쯤 지나 아래쪽 80%까지 단풍이 들면 절정기라고 한다. 단풍은 북쪽에서부터 하루 평균 25㎞ 속도로 남하한다고 알려져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가을 단풍은 평년보다 3일정도 빨리 시작됐다. 지난달 하순 시작된 설악산 단풍이 12일 절정에 오른 뒤 11월8일 두륜산까지 절정의 단풍 물결이 내려갈 것으로 예측됐다. 전국의 각 지자체는 시기에 맞춰 단풍 축제를 벌이고 있다. 김과장은 달력을 펼쳐 조사한 정보를 빼곡히 기록했다.
◇어디로 갈까
아내는 설악산을 가자고 한다. 어린 딸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내장산 단풍이 제일 예쁘다고 성화다. 내장산 단풍의 명성에 익숙한 김과장이지만 내장산은 일단 배제했다. 단풍이 화려할 때쯤 내장산의 숲은 나무숲이 아니라 사람숲이 될 게 틀림없다. 3살난 막내딸까지 안고 업으며 4명이 몰려다니기에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김과장은 당초 아내 말대로 설악산 쪽에 무게를 뒀다. 지나는 길에 동해안도 구경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좀더 알아보니 설악산도 아니다 싶다. 지난 여름 수해로 산사태가 잇따라 십이선녀탕 등 계곡에 돌이 차고 나무가 뽑혀 절경이 처참하게 망가졌단다.
“그럼 지리산이다.” 김과장의 결정은 신속하다. 지리산은 그가 대학시절 종주해봤을 뿐더러 연애시절 아내와 한번 다녀온 일이 있는 곳이니 옛날 추억도 되살릴 수 있다.
◇구체적 계획 수립
김과장은 딸이 학교를 쉬는 토요일에 맞춰 1박2일로 다녀올 참이다. 이달 딸의 ‘놀토’는 14일과 28일. ‘거사일’은 준비기간을 감안해 28일로 정했다. 이날부터 이틀간 피아골 단풍축제가 있어 볼거리는 충분하다. 직전마을까지 차를 가져간 다음 피아골대피소에서 1박하면 될 듯하다. 김과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피아골대피소를 예약했다. 대피소에서 묵으려면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김과장은 산행 요령도 메모하기 시작했다. 가을산은 특히 일교차가 크므로 겉옷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1박 이상 하면서 단풍을 즐기려면 충분한 난방 대책이 필요하다. 여행코스가 계곡이라 물은 충분할 듯하지만 피로와 갈증을 느끼기 쉬운 어린이를 동반하는 이상 식수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김과장은 내친 김에 피아골을 거쳐 노고단까지 오르고 싶지만 막내딸이 당일 얼마나 받쳐줄지 몰라 계획을 유동적으로 잡을 작정이다. 지리산의 가파른 산세로 미뤄 무리한 코스운영은 피하고 올랐던 길로 다시 내려올 예정이다.
◇현장학습 기회
단풍잎의 종류를 조사해오라니 요즘 아이들 숙제가 왜 이리 어려워졌는지. 지난달 인터넷을 뒤져 딸의 숙제를 도와줬지만 이번에 현장에서 실제 단풍잎을 확인시킬 작정이다. 김과장은 밤마다 식물도감의 사진을 일일이 훑어가며 딸의 현장학습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단풍나무는 전세계적으로 200여종이 있으며 국내에는 20여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풍나무라고 모두 가을철에 붉게 물드는 것은 아니다. 홍단풍은 1년내내 잎이 붉은 상태로 있다가 낙엽이 된다. 네군도단풍과 황단풍은 붉은 색이 아니라 노랗게 단풍이 든다. 단풍잎은 보통 5~7갈래로 갈라지는 데 반해 당단풍은 9~11갈래로 갈라진다. 내장산의 내장단풍, 울릉도의 섬단풍나무 등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산다. 모든 것이 결정됐다. 아내와 딸애는 28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과장도 그날을 손꼽긴 마찬가지다. 28일은 단순한 여행 출발일이 아니라 눈꺼풀의 무게를 견뎌가며 해야 하는 단풍잎 공부로부터 해방되는 날이기도 한 까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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