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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삼진의거의 역사적 의의와 발생배경

현정 (炫貞) 2007. 4. 12. 14:06

마산삼진의거는 1919년 3 · 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시점에 지금의 마산시 진전ㆍ진북ㆍ진동 3개면 주민들이 연합하여 일으킨 의거를 말한다. 이 의거는 수원의 제암리사건, 평안도 선천읍의거, 황해도 수안의거와 더불어 기미년 4대 의거로 손꼽히는 대의거이다. 삼진의거에서 순국한 지사는 8명이며 부상자는 22명이었다. 이날 희생된 순국지사는 김수동, 변갑섭, 변상복, 김영환, 고묘주, 이기봉, 김호현, 홍두익 등이었다. 이 순국지사들은 8의사로 추앙되었고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지방민

들에 의해 사동교 건너편 암벽에 창의비를 세웠다가 1963년10월 삼진 지방민들의 발원으로 진동면 국도변의 사동교 옆, 즉 의거 당시에 8의사가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 새로 8의사 창의탑을 세워 영령들을 위무하고 있다. 1968년 정부에서는 8의사의 유훈을 기려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이 장렬한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1963년에 진동면 사동리의 당시 현장에는 '창의탑'이 세워졌고, 삼진 의거의 진원지인 진전면 양촌리 산자락에는 '팔의사 묘역'이 조성되었다. 그 앞에는 '삼진독립의거기념비'와 '지사 석당 변상태선생기적비'가 선조들의 장렬한 의거를 증명하는 역사의 교훈으로 서 있다.



마산삼진의거는 거시적으로는 국.내외적인 대 사건 - 고종의 승하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부각된 민족주의 흐름의 강화였고, 미시적으로는 변상태 선생 및 8의사와 같은 독립투사들의 행적을 미루어 볼 때 일본의 수탈에서 유래된 삼진 지역 내 반일 저항 운동역량의 표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