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산자랑 과 나]/내고향 마산!

3.15 마산의거의 전개과정

현정 (炫貞) 2007. 4. 12. 14:03


  - 10시 30분 : 민주당 마산시당부 선거포기선언
- 10시 30분 ~ 14시 : 부정선거 무효선언, 오동동 당사에서 가두 방송
- 14시 30분 ~ 16시 30분 : 민주당 마산시당 간부 30여명 최초 시위
  600여명의 군중 불종거리에서 경찰과 대치, 투석전 전개
(민주당 간부 정남규, 강경술, 정경도, 황칠규, 정진철 등 강제연행)
- 17시 : 남성동, 부림동, 창동가두 시위종결/마산시청 개표장으로 모일 것을 약속
- 18시 30분 : 마산 무학초등학교에서부터 마산의료원에 이르는 연도에 수천명 시위군중 운집, 경찰과 투석전 전개
- 20시 : 시위 군중속으로 난입하던 소방차 전주와 충돌, 마산시 일원 정전으로 암흑
- 20시 10분 : 마산시청 앞, 남성동 파출소 앞 경찰 발포
경찰 최루탄발사에 이어 칼빈총 난사
김영호, 김효덕, 김영준 총탄 사망, 김주열 최루탄 맞고 사망
- 21시 : 북마산 파출소 시위 군중에 경찰 발포
마산시청, 남성동 파출소, 북마산 파출소 앞 경찰 무차별 발포로 8명 사망
부상자 수십명 발생 및 수백명 체포 구금
- 21시 30분경 : 북마산 파출소 전소
완월동 소재 민의원 허윤수 거주 집 습격, 전파
- 23시경 : 완월동 소재 남전 마산지점 습격, 유리창과 정문 파괴
- 23시 30분경 : 해산

  - 11시 : 김주열군 시체가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
- 17시 : 시위 시작. 남성동, 불종거리, 오동동파출소 앞 등 시내 일원 시위 계속
- 19시: 도립마산병원 앞 30,000여명 운집. 마산시청, 마산경찰서, 창원군청 앞 시위 및 기물파괴
- 20시30분 : 마산경찰서장 짚차 전소. 마산경찰발포. 2명 사망

 
- 10시 ~ 16시 30분 : 마산고등학교, 마산상업고등학교, 마산공업고등학교, 마산창신고등학교, 마산여자고등학교, 마산성지여자고등학교,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마산간호고등학교 3,000여명의 학생들이 시민 1만여명과 시내일원에서 시위, 도립마산병원에 집결 시위 후 해산
- 19시 : 시민 1만여명 경찰서 앞 집결 시위 23시 해산

  -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200여명 시위



 

남녘의 서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마산은 굴절된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는데 큰 몫을 다해 왔기에 언제나 선구적인 모습으로 부각돼 왔었다. 지난 1899년 외세에 의한 강제 개항과 함께 일제가 기도한 상권 탈취에 항민들이 똘똘 뭉쳐 필사의 투쟁을 벌임으로써 그들의 야욕을 깡그리 분쇄시키고야 말았다. 이러한 자주 정신은 1919년 3월 10일 추산활사장에 열린 독립만세 시위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 때 의분에 찬 민중들의 핏빛 함성이 4대 의거로 손꼽히는 삼진의거를 촉발

케한 진원지가 되어 민족자존의 터전으로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게 민주혼을 일깨운 의거 정신이 청년 학생들의 혈관에 뜨겁게 계승되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10월 부마항쟁으로 치달아 유신정권마저 타도해 민주실천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자주 정의의 맥을 이어온 우리 고장 마산은 늘 깨어있는 정신, 모두를 포용하는 열린 마음, 굽힐 줄 모르는 올곧은 목소리, 꺾이지 않는 정의로운 몸짓으로 진취적 기상을 키워왔기에 영세 불멸의 민주성지로서 오늘도 찬란한 광휘를 발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떤 정치상황을 막론하고 역사의 진행 모습은 이해 상충 집단 간의 갈등과 충돌, 반목 투쟁을 거쳐 화해와 용서, 재통합의 국면을 맞는 것이 보편적 흐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 속에 내재한 진실 규명작업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근대사라는 큰 틀 속에서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상을 조명해 볼 때 3 · 15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의 대응이었으며 요청이었다. 3 · 15 의거가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입에 재갈이 물리고 침묵을 강요당하면서 일반적으로 폄하, 무시당한 질곡의 공간은 분명 3 · 15의 유배공간이었다. 이제 3 · 15의 고귀한 정신을 당당히 되돌려 놓는 올바른 자리매김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무다.
따라서 3 · 15는 어두웠던 한 시대를 청산하는 마침표가 아니라 밝고 희망찬 2천년대 새역사 창조의 원동력이자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한 민주화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의 공유에 그 참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그 궁극적 목표의 귀결은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며 그것은 곧 정의와 진실이 지배하는 사회, 원칙과 순리가 엄존하는 성숙된 민주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준엄한 역사적 소명의식에 준거하고 있음을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