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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된 낡은 한옥의 아름다운 변신
한상교 씨의 효심 담은 한옥 | |
제 모습을 잃어 가던 ㅁ자 한옥이 이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말끔히 흔적을 지우고 유럽의 어느 집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른 집을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상교 씨는 한옥을 고집했습니다. 노모가 오랜 시간 살아온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곳이었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에는 이 만큼 훌륭한 집이 없기에 그는 그 자리 그대로 흙벽돌을 쌓고, 기와를 얹었습니다. 대신 편리한 시스템을 갖춘 주방을 집어넣고, 집 앞뒤로 널찍한 데크를 내어 공간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현대적인 감각을 실어 실용적으로 달라진 집에서는 노모가 주말마다 찾아오는 자식과 손주들을 기다립니다. 노모의 추억이 담긴 이 집에 가족들이 모여 앉으면 이야깃거리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집이란 이런 까닭으로 소중한 곳입니다. 가족들의 온기가 담겨지는 공간이라서 의미가 있고, 찾아가는 이유가 생깁니다. 아들의 정성으로 새롭게 달라진 청평의 어느 한옥을 함께 찾아가 봅니다. |
조상들의 옛집을 시대에 맞게 이어 가고 싶었다 1950년 6.25 전쟁이 났을 때 한상교 씨네 한옥은 부서졌습니다. 폭격을 맞은 탓에 오랜 세월 조상 대대로 물려오던 집이 망가진 것이지요.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한옥을 지어 올린 지 50여 년이 훌쩍 지난 올해, 한옥은 또 한 번 새로운 모습으로 달라졌습니다. 세월의 무게 탓인지 사람 살기 심란했던 한옥을 한상교 씨는 이 시대에 맞는 현대적인 주거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또한 도시로 자식들을 보내 놓고 홀로 계신 노모를 위해 쾌적한 집을 만들어 드리겠다는 마음도 더해졌지요. 터가 무척 넓어서 2, 3층 되는 넓은 평수의 근사한 주택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한상교 씨는 한옥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그냥 그 모습을 간직하기로 했습니다. “리모델링 작업이 새집을 짓는 것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ㅁ자 구조를 유지하면서 편리한 동선을 고려하고 한옥이 가지는 멋스러움을 모두 완벽하게 재현하고 싶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입주한 지 서너 달밖에 되지 않아서 모두 생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노모는 새집에상당히 만족스러워한다고. 주말에는 서울에 사는 한상교 씨 가족이 노모가 계신 경기도 청평을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흉가처럼 어수선했던 한옥이 훤해진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은 한상교 씨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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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거실 공간 옆쪽으로 데크가 이어진다. 한옥 하면 떠오르는 툇마루를 요즘 시대에 맞춘 새로운 개념이 아닐까 싶다. 내부의 연장 공간이면서 외부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 데크는 사방이 확 트여 자연을 느끼기에 적당하다. 2_ 작은 대문이라 말하면 어떨까?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에서 안을 바라보면 안뜰과 기와로 장식한 벽면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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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가진 집이 독특하다 옛날 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바깥 풍경을 빌린다는 의미로 ‘차경’이라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여름이면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기도 하고, 방안에서 창문을 열면 또 한 폭의 그림처럼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게 말이지요. 한상교 씨의 집 역시 눈이 행복해지는 집입니다. 커다란 창을 많이 낸 집은 어디서나 하늘도 보고 산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한상교 씨 집은 또 다른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개방적인 한옥이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폐쇄적인 공간이거든요. ㅁ자 한옥이 강한 바람과 같은 바깥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거실과 주방, 침실, 욕실로 이어지는 구조는 외부에서는 짐작하기 쉽지 않고 드러나 보이지 않지요.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구조가 참 매력적이지 싶습니다. ‘마당’이라는 공간을 다용도로 활용했던 조상들의 지혜도 그의 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주거 공간뿐 아니라 주변의 경관을 고려해 조경을 가꾸는 것은 집짓기의 마무리라 표현할 만큼 중요합니다. 한상교 씨는 방부목을 깐 데크로 실용적인 마당을 만듦과 동시에, 잔디를 깐 시각적인 만족을 주는 마당까지 모두 욕심내 만들었습니다. 가족 수에 비해 큰 평수를 선호하는 것이 요즘 추세지만, 그는 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할 공간 이외는 모두 자연으로 돌려주고 있는 셈입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장식 아이디어도 눈길을 끕니다. 고가의 조각은 아니더라도 옹기나 남은 기와, 재봉틀 다리 같은 물건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도 무척 즐거웠겠죠. 네모반듯한 황토 벽돌 사이사이에 기와를 쌓아 만든 벽 장식은 얼마나 멋스러운지요. 귀한 고재를 구해 거실 안 마루를 만든 것 역시 이 집의 개성입니다. 집 안 구석까지 배려하는 마음이 바로 집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집을 짓고나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습니다. 모두들 부러움의 연속이었다고 하네요. 몇 시간씩 머물러 있어도 피로감이 들지 않는 건 우리 몸에 좋은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뜨뜻하게 달군 황토방에서 하룻밤을 묵어간 이들은 아마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또 놀러 오겠노라 하겠지요. 공사 기간 동안 마음 쓰느라 고생한 노모도 이제 더 건강하고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을 테지요. 허리가 아파서 마음껏 거동할 수는 없지만, 집 안팎을 쓸고 닦느라 하루해가 짧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터를 닦고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는 보를 얹는…, 모든 과정들을 찬찬히 밟아 새로워진 한옥에서 예전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아주 조금은 한상교 씨 가족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리움 같은 감정 말입니다. 하지만이젠 새집에서 또 50년, 100년 이 가족들이 살아가겠지요. 따끈한 황토방에서 깊은 잠도 잘 테고, 데크에서는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요. 시간이 흐르면 새집은 어느 새 손때가 묻고 세월의 흔적들로 조금씩 낡아질 것입니다. 집다운 집으로 점점 성장해가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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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에 마루가 하나 더 있다. 단을 높여 만든 마루는 200년 된 고재를 구해서 만들었다. 손주들이 오면 마루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기도 한다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나무 특유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난방 시설은 해두었다.
2_ 집을 고치기 전에도 주방은 입식으로 바꾸어 생활했었다고. 한옥 안에서도 얼마든지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어 쓸 수 있고, 아파트에서 누리는 편리한 생활도 가능하다. 막연히 불편하리라는 건 선입견일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