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_ 토요일 오후, 마당에 가족들이 모였다. 같이 살게 되면서 정이 더 돈독해지는 것을 보면 역시 가족들은 모여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일하느라 바쁜 박표준 씨의 아내가 빠져 섭섭하지만, 집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마당에 핀 꽃 이야기도 나누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얼마 전 읽은 재테크 기사가 생각납니다. 앞으로 어디어디가 새로운 강남으로 부상할 것이다, 재개발될 마지막 지역은 어디다 하며 큰돈을 벌 수 있는, 아니 벌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어지는 부동산 정보들을 친절하게 알려 주고 있더군요. 저 역시 그 기사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돈을 벌 방법은 부동산밖에 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저 역시 공감을 하는 것인지 기사 내용에 무심해지지 않았어요. 혹시 내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그 아파트 중 하나를 사 두면 금세 몇 억쯤 벌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고, 집이라는 게 수십 년을 걸고 달성해야 하는 우리들의 인생 목표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어 조금 슬펐습니다. 이번 달에 만난 박표준 씨. 강화도에서 태어나 줄곧 그 곳에서 살아오고 있는 부모님처럼 그 역시 강화도를 떠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가족들을 위해 근사한 나무집을 지었습니다. 맑은 공기를 찾아, 근사한 전망을 찾아 멀쩡한 산 하나쯤 간단히 부서뜨리며 화려한 집을 짓는 사람들과 그는 달랐습니다. 그의 집에는 집 하나로 돈 벌겠다는 욕심은 하나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지키고 살던 자신의 고향에 지은 집. 박표준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건축가도 아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아닌 그가 누구보다 집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가족에 대한 배려를 담아 지은 집이니까 그렇겠지요. 그 따뜻한 마음을 담아 보여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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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_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거실의 모습. 천장이 높은 복층 구조라 막힘이 없어 시원해 보인다. 특별한 꾸밈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3대가 함께 산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나이가 들도록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옛날 사람들이야 땅이라는 부동의 터전을 두고는 어느 곳으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겠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요. 자신의 직장을 따라서, 때로는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또 집값이 껑충 뛰어오를 가망성이 있는 어딘가를 찾아가 둥지를 틉니다. 살아보지 않았던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니지요. 강화도에서 만난 박표준 씨는 그곳에서 나고 자란 말 그대로 ‘강화도 토박이’입니다. 이름이 무색하게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곳이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과는 거리가 꽤 멀리 떨어진 곳. 박표준 씨는 그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결혼하여 듬직한 사내아이를 둘이나 거느린 가장이 되어 있습니다. 강화읍에서 일을 하는 도중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누구라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찾아온 이들에게 인사를 보냅니다. 진즉에 마당에 나와 낯선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그의 부모님 역시 똑같은 웃음을 지으시는데 누가 봐도 부모 자식간인 줄 알겠더라고요. 부모님 역시 모두 강화도에서 나고 자랐다 하시더군요.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맞선으로 인연을 맺은 부모님은 12살 띠동갑이라는 나이 차이를 넘어서서 평생을 해로하며 살아왔노라 하십니다. 깊게 팬 주름 사이사이에는 그동안의 온갖 희노애락이 모두 숨겨져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박표준 씨 역시 그의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고향에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 갑니다. 그는 자영업을 하고 농장도 운영하면서 비교적 일찍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해요. 부모님과 떨어진 곳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불현듯 가족 모두가 모여 살 수 있는 번듯한 집 한 채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새집 자리는 당연히 부모님이 지키고 있는, 자신이 자랐던 곳으로 정해졌습니다.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나니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졌겠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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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_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역시 나무로 만들어져 무척이나 튼실해 보인다. 오래오래 살아갈 집이다 생각하면, 주인은 목수가 못 한 번 칠 때도 들여다보게 되고 패널 한쪽 붙일 때도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지은 집답게 짜임새 있다.
사람이 편한 집이 살기 좋은 집이다 옛날 70년대, 한창 새마을 운동을 펼치던 시절의 집 모양새를 하고 있던 부모님의 집 대신 넓고 편안한 안식처를 지을 생각에 박표준 씨는 마음이 들떴습니다. “몇몇 곳의 집을 직접 가서 봤어요. 요즘에는 참 다양한 소재로 집을 짓잖아요. 스틸도 있고 콘크리트도 있고…. 저는 그 중에서 나무와 황토로 지은 집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나무라는 게 튼튼할 뿐 아니라 바로 자연이잖아요. 재질이 견고하고 색깔도 예뻐서 내·외장재로 인기가 많은 모양이에요. 흙 역시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고요. 이런 소재로 집을 지으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공사는 차근차근 잘 진행되었다고 해요. 1층은 데크 18평까지 합치면 55평이고, 2층은 4평 크기의 데크를 합쳐서 22평인 복층 구조로 집을 지었어요. 1층에는 방이 3개 있고, 거실과 주방, 욕실, 보일러실이 있죠. 1층이 부모님과 아이들의 공간이라면 2층은 박표준 씨 부부를 위한 곳이에요. 침실과 욕실을 하나씩 만들고 자그마한 거실도 마련했어요. 3대가 모여 살고 부모님을 만나러 다른 가족들도 자주 집을 방문하니까 방도, 주방도 모두 널찍널찍 아주 시원합니다. 예스러운 물건들로 장식해 두었고, 황토로 만든 쌀독도 두었더니 살기 편한 현대적인 집이지만, 구수한 옛날 분위기도 느껴진답니다. 이렇게 정성껏 집을 짓고 난 후부터 박표준 씨 집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솔솔 풍긴다고 해요. 바로 나무 냄새라고 하네요. “우리 가족들은 몇 달 살다 보니 이제 좀 감각이 둔해진 듯싶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집 안 가득 나무 특유의 냄새가 나더군요. 저희 집에 놀러 온 동네분들도 하나같이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박표준 씨 어머니는 거실에 앉아 있으면 천장에서 아직도 나무의 진이 톡톡 떨어진다면서 참 좋은 집이라 자랑이 이어집니다. 지금이야 어디 내놓아도 당당할 만큼 훌륭한 집을 갖게 되었지만, 이들 가족이 보낸 과정이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았겠지요. 본 공사를 시작하기 전 마당 한켠에 방이 딸린 커다란 창고를 먼저 지었다고 해요. 가족들은 공사 기간 동안 한 방에서 생활을 했고요.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그 터에 신축을 할 때는 그야말로 가족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내 집 아닌 임시 거처에서 지내야 하는 불편함이란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죠. 박표준 씨네 역시 좁은 공간에서 복닥복닥 지내야 했지만, 그런 고생은 이제는 즐거운 추억의 하나로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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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_ 2층에는 자그마한 거실이 있다. 재봉틀 다리와 오래된 라디오, 가구들이 조화를 이룬 앤티크 공간이다. 푸릇푸릇한 식물들을 거실 곳곳에 두어 훨씬 생기 있고 싱그러운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녹아 있는 집은 아름답다 훌륭한 자재로 많은 돈을 들여서 솜씨 좋은 사람들 손에 집짓기를 맡긴다면 누구라도 근사한 집을 갖게 되겠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근사한 집이라는 게 뭘까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해요. 비싸고 번쩍거리는 살림살이만으로는 만들어 갈 수 없는,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한참 부족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네요. 집이라는 게 살림살이만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내 가족이든, 우리 집을 찾아오는 손님이든 집은 사람을 품게 되는 거니까 사람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거, 틀리지 않죠? 박표준 씨네 집에서는 그런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바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경사로가 그것이었어요. 전원에 짓는 집들은 대부분 아랫쪽에 수납 공간을 확보한 뒤 그 위로 집을 짓는 경향이 있거든요. 박표준 씨네 역시 땅에서 1미터 정도 위에 집을 지었는데 한쪽에 현관으로 곧장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요. 그런데 저런 경사로가 왜 또 필요했을까, 멋을 부린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들은 모두 건강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란 한치 앞도 모르잖아요. 가족 중에 몸이 아픈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고, 장애인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때 계단만 있으면 출입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또 몸이 불편한 손님이 우리 집을 찾아올 수도 있고요. 그래서 자재는 훨씬 많이 들어갔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거죠. 어머니가 힘들지 않게 오가시는 걸 보면 잘했다 싶어요. 이 집에서 살면서 어머니 고혈압도 호전되어 다행이고요.” 집에 창문을 많이 내어 실내에 있어도 눈만 돌리면 자연을 접하게 한 것 역시 전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아이디어. 햇살이 집 안 한가득 들어와서 늘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기분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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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_ 계단을 올라와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 쪽에는 이색적인 공간이 하나 있다. 전통적인 문살을 이용해서 만든 유리문을 열면 어른 몇몇이 들어가서 길게 누워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수납 공간이 나온다. 다락이나 벽장과 같은 용도로 이용되는 실용 공간이다.
우리식의 웰빙 라이프를 지켜 나간다 어머니 세대들은 지글지글거리는 아랫목에 허리 좀 지지고 싶다는 말, 가끔 하시잖아요. 요즘엔 아랫목, 윗목 개념조차 없는 시대이니 찜질방에 가서 뜨끈한 미역국을 마시며 그 마음을 달래 보기도 합니다. 박표준 씨네 집에는 구들장이 있어요. 심야 보일러와 페치카로 난방 걱정은 없는데 향수가 남았던 것인지 방 하나는 구들장을 통해 난방을 하고 있대요. 여자들이라면, 아니 우리 나라 여자들이라면 아마 부럽다 하실 거예요. TV 홈쇼핑을 보다 보면 몸에 좋다는 매트도 많고 침대도 어쩜 그렇게 종류가 많나요. 질 좋은 것으로 하나 장만해도 뜨뜻한 아랫목이 주는 그 설명하기 어려운 시원한 기분은 쉽게 얻지 못하리라 싶네요. 시커먼 솥단지 하나까지 걸어 두니 젊은 세대들에게는 박물관에서나 보았을 광경을 구경하게 됩니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장독들도 햇빛 잘 드는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새집으로 이사 간다고 살림살이까지 몽땅 바꾸는 이들도 참 많지만, 손때 묻은 물건들을 구박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 가족의 모습이 곱고 곱습니다. 박표준 씨네 집 앞길을 따라 올라가면 백련사라는 절이 있다고 합니다.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다고 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단속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집 앞에는 대문은 없고 벽돌을 쌓아 만든 자그마한 화단 하나 덜렁 있네요. 찻집인가 싶어 찾아오기도 하고, 집이 예쁘다며 무턱대고 구경하겠다는 이도 있지만 그의 가족들은 이런 상황들을 짜증보다는 웃음으로 대신합니다. 친절하게 집 구경을 시켜주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대문은 앞으로도 필요없다 하네요. 누구라도 환영한다는 뜻인거겠지요.
그 예쁜 가족들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내가 살고 있는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길에서 마음이 아주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길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대꾸도 하지 말고, 집에 있을 때는 문도 열어 주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도시 사람들의 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세상을 경계하고 나를, 내 가족을 방어하느라 지친 우리들에게는 박표준 씨네 집이 참 부럽습니다. 멋스럽게 지어진 집도 탐이 나고, 그 속에서 재미나게 사는 그들의 표정도 갖고 싶습니다. 부끄러움 없이 내 세간 드러 내놓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넉넉한 마음도 닮고 싶습니다. 물론 당장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요. 아파트를 모두 없앴을 수도 없고, 욕심부리지 말고 살라고 말하기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들 마음만큼은 좀 다스려보면 어떨까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각박해지지 않도록,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도록, 언젠가는 우리도 그들을 닮아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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