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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풍류가 새겨진 ‘마산 제2금강산’

현정 (炫貞) 2017. 11. 8. 11:08

창원의 비경과 숨은 이야기(창원시보 2017.5.25. 제166호)

        

 선비들의 풍류가 새겨진 ‘마산 2금강산

          마산회원구 합성동 산호천 상류에 위치

          너럭바위, 기암절벽, 폭포, 개울 등 조화

          농암동천(籠巖洞天), 강선대(降仙臺)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풍류 즐기던 곳

 마산회원구 합성동 산호천 상류에는 일명 2금강산이라 불리는 계곡이 있다. 누가, , 어떤 연유로 이러한 지명을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곳의 풍광이 금강산에 비길

만큼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너럭바위와 앙증맞은 폭포, 기암절벽, 애살맞은 개울이

숲과 풀꽃에 어우러진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절경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에게는 학창시절 추억의 소풍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다.

 제2금강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농암동천(籠巖洞天)과 강선대(降仙臺)라는 글자가

새겨진 곳이다. 장롱처럼 생긴 바위가 우뚝하고 기암절벽과 너럭바위가 펼쳐진 풍경은

신선이 내려와 놀만큼 아름답다. 그런데 누가 언제 이 글자를 새겼을까.

대략 짐작컨대 아마도 조선 초기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옛날 합포영성(合浦營城)이 합성동에 있을 때 그 치소에 따른 향교가 이 골짜기 입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향교에 출입하는 선비와 사대부들이 이 좋은 경치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선대 앞 넓고 평평한 너럭바위에 모여앉아

세상사를 논하고 시를 짓고 노래하며 사계절의 풍류를 마음껏 누리고 즐겼을 것이다.

그 흔적은 계곡 곳곳에 남아있다.

2금강산 계곡 초입부 다리 건너에 장등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삼천동(三川洞)이라는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고, 그 뒤편에 비석과 영모재(永慕齋)라는 순흥 안씨 재실이 있다. 재실 뒤편에 넓게 펼쳐진 순흥 안씨의 묘역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옛 향교 터다.

 계곡입구에서 제2금강산으로 올라가면 출렁다리 건너 길가에 옥봉류수(玉峯流水)라는

각자(刻字) 가 있다. 옥녀봉에서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이다. 두 번째 다리 위에는 작은

폭포가 하나 있는데, 그 폭포 아래쪽 비스듬한 바위에는 백운대(白雲坮)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구름도 쉬어가는 아름다운 절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백운대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바위에 시가 한 구절 새겨져 있다.

好鳥枝頭亦朋友(호조지두역붕우)’인데 이 구절은 落花水面皆文章(낙화수면개문장)’이라는 구절과 짝으로 중국 송나라 학자 주희의 四時讀書樂(사계절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시의 봄() 편이다. ‘가지 끝의 고운 새는 나의 벗이고 물위로 흐르는 붉은 꽃잎은 아름다운

싯구절이네라는 뜻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풍류를 즐기며 수양하는 선비들의 고운

아취가 느껴진다.

 농바위와 강선대 즈음에서 계곡 상부에 이르는 동안 계곡바닥을 자세히 보면 물결무늬

흔적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용비늘 문양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물결무늬 화석, 즉 연흔(漣痕)화석이라고 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물결무늬 화석이 있으면 그 주변에는 반드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하지만 제2금강산의 경우 계곡바닥에는 화석이 잘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도 농암동천과

강선대라고 새겨진 바위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이처럼 제2금강산 골짜기는 쥐라기 시절에는 공룡이 살았고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시인과 선비들이 오가며 시를 읊고 놀던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곳으로, 지금도 우리들 곁에서

팍팍한 삶에 한없는 위로를 준다.         

                                                    /박태성(문학박사, 창원대학교 외래교수)


​▲ 합포영 성지(合浦營城址). 경남 유형문화재 자료 제153호.

​이 성은 ​1378년(고려 우왕 4)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다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으로 사용하였다.




▲ 제2금강산 초입부 이정표.

제금강산 계곡 가는길은 오른쪽이다. 왼쪽으로 가면 장등산 가는길이다.




▲ 계곡 초입부 다리 건너 장등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삼천동(三川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삼천동이라 새겨진 바위뒤에는 순흥안씨유적비와 영모제라는 순흥안씨 재실이

있다.



 

▲ 순흥안씨 재실 앞에 있는 追遠臺.




▲ 추원대를 지나면 瞻望臺가 있고 순흥안씨 재실이 있다.




▲ 순흥안씨 재실 영모재(永慕齋)

약200년전 순흥안씨 선조께서 조상의 얼을 기리고 후손에게 효를 살천해 보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순흥안씨일파 世居地이다.



▲ 영모재를 둘러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오른쪽 이정표 방향으로 가면 약수터를 지나 출렁다리를 만난다.



▲ 출렁다리를 지나면 제2금강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어떤 연유로 제2금강산 이라는 지명을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곳의 풍광이

금강산에 비길만큼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 출렁다리를 건너면 산사태취약지역 안내문을 만나고 오른쪽 길가 산기슭에

바위틈새에 옥봉류수(玉峯流水)라는 각자(刻字)가 있다.




▲ 玉峯流水. 옥녀봉에서 흐르는 물이라는 의미이다.




▲ 제2금강산 계곡.




▲ 계곡을 왼편에 끼고 길따라 가다보면 쉬어가라는 평상을 만난다. 그아래 조그만

폭포가 하나 있는데, 그 폭포 아래쪽 바위에는 백운대(白雲坮)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구름도 쉬어가는 아름다운 절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 백운대 옆에는 조그만 폭포가 있다.




▲ 백운대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만 더 오르면 넓은 반석을 만난다. 반석 오른쪽 면에 시가 한구절 새겨져 있다. 글자가 작게 새겨져 있기 때문에 잘 찾아야 한다.




▲ 반석에 새겨진 시 호조지두역붕우(好鳥枝頭亦朋友).

이 구절은 落花水面皆文章(낙화수면개문장)’이라는 구절과 짝으로 중국 송나라 학자

주희의 四時讀書樂(사계절 독서의 즐거움)이라는 시의 봄() 편이다. ‘가지 끝의

고운 새는 나의 벗이고 물위로 흐르는 붉은 꽃잎은 아름다운 싯구절이네라는 뜻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풍류를 즐기며 수양하는 선비들의 고운 아취가 느껴진다.



▲ 백운대에서 길따라 계속 오르면 정자를 만나다. 정자 바로 옆에 농암동천(籠巖洞天)과 강선대(降仙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장롱처럼 생긴 바위가 우뚝하고 기암절벽과 너럭바위가 펼쳐진 풍경은 신선이 내려와 놀만큼 아름답다. 그런데 누가 언제 이 글자를 새겼을까.




​▲ 농암동천 각자옆에는 4개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 강선대(降仙臺) 각자




▲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강선대.

선비와 사대부들이 강선대 앞 너럭바위에 모여앉아 세상사를 논하고 시를 짓고

노래하며 사계절의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 농바위와 강선대 를 지나 상부에 이르는 동안 계곡바닥을 자세히 보면 물결무늬

흔적이 보인다.



▲ 농바위와 강선대 즈음에서 계곡 상부에 이르는 동안 계곡바닥을 자세히 보면

물결무늬 흔적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용비늘 문양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물결무늬 화석, 즉 연흔(漣痕)화석이라고 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물결무늬 화석이 있으면 그 주변에는 반드시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하지만 제2금강산의 경우 계곡바닥에는 화석이 잘 보이지 않고 엉뚱하게도

농암동천과 강선대라고 새겨진 바위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이처럼 제2금강산 골짜기는 쥐라기 시절에는 공룡이 살았고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시인과 선비들이 오가며 시를 읊고 놀던 아름다운 풍광이 있는 곳으로, 지금도 우리들

곁에서 팍팍한 삶에 한없는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