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시내 중심에 위치한 3.15의거탑...
1960년 3월 15일 독재로 참담했던 민주화 속에서 독재타도와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마산시민은 야당인 허윤수를 당선 시켰으나 1960년 1월 당적을
버리고 민주당에서 자유당으로 입당하자 시민들은 분노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자유당의 장기집권 계획은 초대 대통령을 두 번 이상 연임이 가능하도록 아예 법을 고쳐
종신연임을 개정하게 이르자 민주당은 3월15일 오동동 당사 앞에서 민주당 선거포기를
발표하게 되고 분노한 민초는 저지하는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카빈총 난사 사건이
발생한다.
4월 11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김주열군의 사체가 마산 중앙두부에서 총기로 난사된
체 떠오르자 마산 시민과 대학생에 이어 고등학생까지 참여,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다.
광주 5.18이 현대식 민주항쟁이라면 당시 암담했던 현실에 반기한 3.15의거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역사의 뒤편에 한때는 그랬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3.15의거 기념탑은 높이 12m, 둘레 10.8m로 삼각 탑이 뾰족하게 치솟고 당시 참여한
분노에 가득한 학생들의 동상이 서있다.
몽고정은 바로 마산시민정신의 바로 코앞에 자리 잡고 있다.
마산하면 떠오르는 "몽고간장"의 진한 맛은 "몽고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1274년,1275녀 두 차례나 일본 원정길에 오른 몽골군이 마산시를 몰골원정군 근거지로
합포에 머물면서 군마의 물을 위해 우물을 만들었고 지금의 몽고정이다.
여몽연합군 식수로 사용되던 몽고정은 칼슘이 풍부하고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말 1281년 중국 원나라 세조가 2차 일본 원정길에 실패 한 후 같은 해 10월
남해안 방어를 위해 지금의 마산시 정수장 일대의 환주산에 군사를 배치하고,
진을 설치하면서 주둔한 군사에게 마실 식수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우물을 판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인 고적보존회단체가 1932년 고려정을 몽고정으로 격하 시키고 몽고정이란 비석을
세움으로서 몽고정으로 알려지게 된다.
몽고정은 훗날 몽고간장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몽고정을 고려정으로
환원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의 많은 문화유산이 일본인에 의하여
잘못된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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