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과 여행]/여행가고 싶은곳

춘천/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현정 (炫貞) 2007. 10. 20. 12:30



참 이상한 일입니다. 춘천을 생각하면, 한 십 년 전쯤 아니면 몇 년 전쯤에 잠시 들렀거나 지나쳤을 뿐인데도, 꼭 바로 요 앞에 다녀간 곳 같단 말이지요. 게다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요. 춘천의 골목이며 나뭇가지 틈새, 호수의 굽이굽이를 마치 바람이나 안개가 되어 속속들이 스며들었던 것 같단 말이지요. 당신들도 그렇지 않아요? 춘천을 떠올리면 추억의 자락 하나가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것을, 그리고 마치 지금 그곳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을. 그렇게 춘천은 원시적인 기억을 끌어내는 이상한 묘약 같은 도시입니다.

청평사 가는 길


자 당신, 기억해보세요. 당신은 지금 얼굴의 반을 차지한 잠자리테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막 기차에서 내려 춘천역 앞에 섰습니다. 앞을 가로막은 미군부대 철조망 쳐진 담과 그 안으로 들고나는 헬기 소리가 이물스럽습니다. 당신은 이미 기차를 타고 오면서 쫓아오는 강줄기에 마음을 빼앗겼겠지요.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얼굴에는 무작정 기차를 탄 사람의 난감함과 심란함이 가득합니다.




당신이 다다른 곳은 소양댐입니다.

 

소양댐은 동양 최대의 사력댐입니다. 콘크리트 댐에서 볼 수 없는 자연미와 웅장함이 함께 있는 댐이지요. 댐의 정상에 올라 너르게 펼쳐진 소양호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소양강을 굽어봅니다. ‘소양강댐’ 글자가 보이는 곳에 번갈아 서며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의 얼굴도 훔쳐보지요. 그리고 행상들이 죽 늘어선 길을 따라 선착장으로 향합니다. 선착장에는 꼭 붙어 선 연인들과 솜털이 뽀얀한 여고생들과 풍선을 든 아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양구로 가는 배에 오르고 어떤 이는 쾌속정을 탑니다. 예전에는 깊은 계곡이었을 물길을 따라 봉우리였을 섬들을 돌아 누군가의 텃밭과 당산나무였을 물그림자를 밟으며 갑니다. 당신은 청평사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군요. 강바람이 당신의 머리카락을 흐트려놓습니다. 마음도 함께 엉클어집니다.


청평사 나루에 내린 당신은 청평사 숲길을 걷습니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작지만 구성진 폭포소리 상쾌한 숲의 내음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네요. 당신은 작은 연못 앞에 섰습니다. 영지(影池). 이자현이 청평사 주변을 정원으로 가꾸면서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만든 고려 정원의 한 흔적입니다. 사다리꼴로 가지런히 석축을 쌓고 바로 곁의 계곡물을 끌어들인 영지 위에 오봉산 한 자락이 찰랑이고 있습니다.




당신은 장승처럼 청평사 입구를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두 그루 소나무와 경내를 둘러봅니다.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대를 이어 이곳에 와 머물게 되면서 도적이 그치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췄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산 이름도 ‘맑게 평정되었다’는 뜻의 청평(淸平)이라 하지요.

 

청평산 골짜기 전체를 사찰 경내로 삼아 정원으로 가꾸었는데 이 정원이 오늘날 고려 정원의 기초이자 모범이며 가장 오래된 정원으로 전해져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수원 정원(文殊院 庭園)’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곳은 거대한 정원인 셈입니다. 절집의 아름다움보다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다음날 새벽 은밀하게 퍼지는 타종소리를 들으며 새벽잠을 깨는 맛을 보았던 것은 청평사가 있기 때문이었지요. 계곡을 따라 내려온 종소리는 당신의 머리를 말끔하게 평정해주고, 당신은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물길을 내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당신의 짧은 머리카락이 어색해 보입니다. 서늘한 바람이 드러난 목덜미를 후려칩니다. 바람이 유독 매섭게 느껴지는 어느 화요일입니다. 당신 얼굴에는 긴장과 걱정과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당신 곁에 선 여인은 아까부터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누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가에도 물기가 촉촉합니다.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떼어놓고 오려 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던 마음이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녀가 준비해준 시계와 사진을 들고 돌아섭니다. 결연히 등을 보이긴 했지만 자꾸만 고개가 꺾여지는 것은 당신도 어쩌지 못합니다.

 

당신만큼 왕성한 나이의 청년들이 기막힌 이별을 끝내고 한 곳에 섰습니다. 간단한 식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연인이며 아들인 당신들을 눈 속에 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내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끝내 이별을 아쉬워하는 가족들과 연인들을 바깥으로 몰아냅니다. 당신은 군중들 속에서 그녀의 옷자락을 찾아내 아쉬운 눈길로 붙들어보지만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마네요. 몇 주 후 훈련을 마치고 다시 그녀를 볼 때쯤이면 당신의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 있고, 살집 붙은 얼굴은 몰라보게 그을려 있을 테지요. 함께 왔던 길을 혼자 거슬러 올라가야 할 그녀가 당신은 외려 걱정입니다. 그녀를 바라다주었던 골목들, 작은 일에도 곧잘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큰 눈망울, 그 모든 것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녀 역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뒤를 쫓아가볼까요? 의암호를 따라 이어진 자전거도로를 터벅터벅 걷습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확 트인 호수에 넋을 빼앗기곤 합니다. 어느덧 호수 주변으로 고운 놀이 지기 시작하고 그녀의 마음도 다양한 색상으로 물들어갑니다. 물은 마법의 힘을 가졌습니다. 들여다보는 이의 속내를 다 읽어내지요. 산란하면 산란한 대로 달뜨면 달뜬 대로 거짓 없이 비추어냅니다. 그리고는 아주 조금씩 부드러운 손길로 그것들을 다 만져줍니다. 물 속에 별이 뜨고 별이 그녀의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호수에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는 오늘 당신을 남겨두고 떠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그녀는 호숫가 작은 숙소로 찾아 들어갑니다. 얼었던 몸이 조금씩 녹아들며 당신과 함께 했던 추억들도 스며듭니다. 호수가 움직이는 소리, 갈대밭 일렁이는 소리, 별이 지는 소리. 밤새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 미미한 소리들을 골라내느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무언가 푸른 기운이 그녀를 밖으로 끌어냅니다. 그녀는 물의 손에 이끌려 서리꽃 앉은 풀을 밟아 호수로 다가갑니다. 밤새 눈물을 머금은 별빛이 한 올 한 올 서리로 앉았습니다. 호수는 물안개를 피워올려 그녀를 쓰다듬습니다. 꿈인 듯 고요히 일어났다가 바람인 듯 나지막이 사라집니다. 푸른 안개 속으로 그녀가 사라집니다. 물은 하늘과 하늘은 산과 산은 갈대와 하나가 되고 그녀는 물과 하나가 됩니다. 물이 피워 올린 안개는 세상의 경계를 지웁니다. 이토록 위안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요?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줍니다.

호수의 전설, 전설의 호수


당신 처음 차를 가지게 되었군요. 그래서 애인과 함께 첫 교외 나들이를 가려는 참이군요.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뒤져 완벽한 나들이를 계획했겠지요. 아니면 당신은 첫 나들이를 기억해내기 위해 수년 만에 찾아온 부부일 수도 있습니다. 춘천으로 가는 46번 경춘국도는 서울을 떠난 해방감을 맛보기에는 충분합니다. 춘천에 다다르기 전 의암댐을 지나면서부터 드러나는 아담한 2차선은 포근함까지 주지요.


서울에서 경춘국도를 거쳐 춘천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4차선의 시원한 국도로 의암터널을 지나는 것과 구경춘국도의 일부인 의암호 다리, 신연교를 지나는 방법입니다. 소양강과 북한강이 합쳐서 가평으로 들어가는 강을 신연강이라 하였고 신연강 뱃터는 춘천의 관문이었습니다. 또 금강산에서 흘러오는 물이 화천을 거쳐 춘천으로 흐르는 강이 북한강입니다. 춘천에서는 이 강을 북한강이라 부르지 않고 모진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옛날 모진강은 모진 나루터로 유명했는데 서울에서 소금배가 올라오고 특산물을 싣고 내려가기도 했었다지요. 춘천댐 건설로 모진강 모진나루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1939년 청평댐 공사가 시작되고 1940년 화천댐 공사가 시작되었으니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뱃길은 이때부터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강 지역의 뗏목은 사라졌고 돛을 달고 금강산 골짜기 마을까지 올라가던 소금배도 그 길을 잃었습니다. 춘천댐과 의암댐을 만든 후부터는 북한강은 아예 흐르지 않는 강이 된 셈입니다.




수많은 농경지와 집들을 그대로 수몰시킨 춘천댐은 춘천호와 상류의 파로호까지 만들었습니다. 가슴 저린 일이지만 춘천은 그리하여 넉넉한 호수와 아름다운 길을 가지게 된 셈이지요.


당신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강줄기를 바라보는 그녀를 위해 뒤따라오는 차를 먼저 보내고 차 속도를 늦추는 배려도 보여줍니다. 춘천까지 오는 길도 아름다웠지만 춘천댐을 지나 화천 쪽으로 가는 길은 호수와 산과 길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줍니다. 협곡에 이루어진 호수는 마치 협곡을 흐르는 강처럼 보입니다. 굽이굽이 감추었다가 내놓고 숨었다가 나타나는 풍경들이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어느 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강둑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가볍게 찰랑이는 물결을 보며 걷다보면 그 옛날 그녀와 쑥스럽게 걷던 수많은 길들이 떠오릅니다.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첫 나들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웠었는지 기억해내겠지요. 어느새 당신은 호수 밑에 수몰된 마을의 전설을 되살려낼 수 있습니다.


소를 끌고 풀을 먹이던 들판, 마루 밑에 몰래 감춰두었던 구슬, 배를 까고 깜빡깜빡 졸던 정자나무 아래 평상, 고무줄 끊고 달아나다 넘어졌던 초등학교 운동장, 그 한켠에 자리잡은 책 읽어주는 여자의 동상. 그것들은 여전히 물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가 불현듯 수면 위로 올라와 꽃을 피웁니다. 마을의 전설을 살려내는 일은 당신의 전설을 살려내는 일입니다. 의식의 심연에 매몰되어 있다가 불쑥불쑥 솟아올라 삶을 살게 만드는 것, 어려울 때마다 삶은 그래도 살 만한 것이라고 북돋워주는 어떤 것. 지금은 조금 거칠어지고 두툼해진 아내의 손을 당신은 꼭 부여잡게 될 테지요. 그리고 그녀가 건져낸 전설과 당신의 전설을 함께 풀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산골


춘천을 관통해 내려온 북한강이 가평에 이르러 물길을 바꾸는 곳에 남이섬이 있습니다. 남이장군의 묘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지요. 나무 사이로 나다니는 청솔모들이 겨우내 먹을 견과류도 충분한, 한가롭고 풍요로운 곳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행들과 토론을 하며 밤을 보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기타반주에 맞춰 금지된 가요를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새벽 안개를 따라나온 당신은 사라져간 벗들의 이름을 안개 속에 묻었습니다. 당신을 짓누르고 있는 열정도 따라 묻었겠지요. 너른 잔디밭과 그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선 단풍나무들이 당신을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겨드랑이가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는가요? 당신의 몸은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팔을 쫙 펴고 도움닫기를 해보십시오. 당신의 팔에 보드라운 털이 솟아나면서 조금씩 부풀어오를 것입니다. 당신은 한 마리 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강을 따라 이동을 하는 새들의 무리에 끼어 조금씩 북쪽으로 향합니다.


제법 잘생긴 삼악산이 보입니다. 암벽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이 울긋불긋합니다. 언젠가 동지애를 느끼기 위해 벗들과 함께 오르기도 했던 산입니다. 바위와 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삼악산에 서면 의암호와 춘천시내를 굽어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의암댐을 지나 포근하게 앉은 어느 마을에 이릅니다. 저곳이 바로 스물아홉에 폐결핵으로 죽은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 실레마을인가 봅니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김유정 산문 「5월의 산골짜기」 중에서)


지게에 풀을 잔뜩 지고 가는 노인의 걸음걸이가 무겁습니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 이마에 골이 진 당신의 아버지이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당신을 걱정하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괜히 한 번 그 주위를 돌아 반가움을 전합니다. 저곳은 염치도 모르고 막되어먹은 만무방들과 응칠이가 화투를 치던 노름터인가 봅니다. 그리고 저 산기슭은 점순이에게 밀려 알싸한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던 그곳입니다.(만무방, 응칠이, 점순이는 김유정의 고향 마을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만무방」 「봄봄」 「동백꽃」 등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 편집자 주) 봄이면 노란 동백꽃이 흐드러지겠지요. 주막에서 한잔 걸치고 올라온 남자가 성례는 안 시켜주고 일만 부리는 장인과 드잡이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날개를 펴고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차가운 바람이 이마에 와 닿으면 따뜻한 의암호에 잠시 날개를 접고 쉬어가도 좋습니다. 갈대숲에 몸을 감추고 부리를 닦거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으니까요. 너른 호수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온기와 촉촉한 물기를 주는 어머니의 몸 속 같은 호수가 있는 곳, 살을 후벼파는 혹독한 겨울이라도 따뜻한 곳, 그곳이 바로 봄시내, 춘천(春川)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입니다.










20여 만 평에 이르는 남이섬은 원래 홍수 때만 섬으로 되던 것이 1943년 청평댐의 완공으로 완전한 섬이 되었다. 그후 육십년대 중반 한 관광회사에서 통째로 사들여 잔디와 나무를 심고 길이 닦이면서 실제로는 없는데도 남이 장군의 무덤이 있는 섬으로 선전되어왔다. 어쨌거나 그 사이 남이섬은 입장료(왕복 도선료 포함 5000원, 주차료 4000원 별도)가 비싼 게 흠이긴 하지만 당일이나 1박 2일 정도 놀고 즐기는데 부담없는, 잘 닦인 공원이 되고 말았다. 특히 숲길들이 잘 조성되어 있어 이 밑에서 드라마·영화 등의 촬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섬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전나무숲길이 끝나면 오른쪽으로 메타세콰이어, 앞쪽은 은행나무길로 이어진다.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드라마 ‘겨울연가,’ 은행나무길과 그 주변은 영화 ‘겨울나그네’의 촬영무대가 되면서 수많은 연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걸어보는 명소가 되었다.(문의:남이섬 관리사무소, 031-582-2181)


 

 

 




소양댐의 완공으로 거의 섬 속의 절이 된 청평사는, 짧은 시간에 여러 교통편을 동시에 이용해야 닿을 수 있는 번거로움과 재미와 신비를 동시에 갖고 있는 절이 되었다. 소양강댐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타고 가더라도 셔틀버스를 갈아타야 댐 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그러니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가서 소양강댐까지 버스를 이용해 갈 경우에는 기차-버스-버스-배-청평사, 이런 순서가 된다. 빠르고 안락한 승용차에만 길들여져가는 요즘 세태에 분명 흥미로운 여행 코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청평사! 고려 광종 때 지어지고 고려 시대 정원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영지를 비롯,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청평사는 지금 분명 이상한 모습으로 개축되고 있는 중이었다. 절 입구에서도, 안에서 보아도, 서로를 볼 수 없는 답답함으로 청평사는 막혀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청평사는 오가는 길로만 명물이 되고 싶은가 보다.




춘천 닭갈비는 살이 알맞게 찐 닭을 토막내 양념에 재웠다가 상추, 양파, 마늘, 고추 등 갖은 야채를 넣고 철판에 볶아 먹는 즉석 닭고기 요리다. 요리는 양계닭과 토종닭, 뼈째 내는 것과 뼈를 발라낸 것, 재료와 양념 등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1백여 미터 되는 골목길에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하는 원조 닭갈비집 30여 군데가 촘촘히 들어선 시내 명동 닭갈비촌은 춘천 고유의 명물이 되었다.


또하나의 춘천 음식 막국수는 임진왜란 후인 인조 때부터 즐겨 먹던 음식으로 특히 춘천지방에서 긴 겨울밤 밤참으로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리과정과 재료가 단순해 언제 어디서나 막 해먹을 수 있어 ‘막국수’란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요즘은 메밀이 귀해져 북한 것도 쓴다고 한다. 어쨌거나 닭갈비나 막국수, 전국으로 다 퍼져나갔지만 ‘진짜 맛’은 아직 춘천에 가야 있다.






춘천의 명물이 또하나 있으니 바로 새벽 물안개. 의암호, 춘천호, 공지천으로 둘러싸인 위치 조건으로 인해 새벽에 조금 부지런하게 일어나 호수 주변에 가면 볼 수 있다. 일교차가 큰 날에 더 많이, 더 쉽게 볼 수 있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 사랑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 물안개처럼 /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류시화의 시 ‘물안개’)
“하얗게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 당신은 내 가슴속에 살며시 피어났죠 / 조용히 밀려드는 물안개처럼 / 우리의 속삭임도 그러했는데 / 하얗게 지새운 밤을 당신은 잊었나요 / 그날의 기억들도 당신은 잊었나요 / 기다림에 지쳐버린 길 잃은 작은 영혼 / 온 밤을 꼬박 새워 널 위해 기도하리”(석미경의 노래 ‘물안개’)


몽환처럼 피어나는 희푸름한 물안개 속에서, 시인과 가수들은 바스러진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