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만 평에 이르는 남이섬은 원래 홍수 때만 섬으로 되던 것이 1943년 청평댐의 완공으로 완전한 섬이 되었다. 그후 육십년대 중반 한 관광회사에서 통째로 사들여 잔디와 나무를 심고 길이 닦이면서 실제로는 없는데도 남이 장군의 무덤이 있는 섬으로 선전되어왔다. 어쨌거나 그 사이 남이섬은 입장료(왕복 도선료 포함 5000원, 주차료 4000원 별도)가 비싼 게 흠이긴 하지만 당일이나 1박 2일 정도 놀고 즐기는데 부담없는, 잘 닦인 공원이 되고 말았다. 특히 숲길들이 잘 조성되어 있어 이 밑에서 드라마·영화 등의 촬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섬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전나무숲길이 끝나면 오른쪽으로 메타세콰이어, 앞쪽은 은행나무길로 이어진다.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드라마 ‘겨울연가,’ 은행나무길과 그 주변은 영화 ‘겨울나그네’의 촬영무대가 되면서 수많은 연인들이 어깨를 맞대고 걸어보는 명소가 되었다.(문의:남이섬 관리사무소, 031-582-2181)
소양댐의 완공으로 거의 섬 속의 절이 된 청평사는, 짧은 시간에 여러 교통편을 동시에 이용해야 닿을 수 있는 번거로움과 재미와 신비를 동시에 갖고 있는 절이 되었다. 소양강댐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타고 가더라도 셔틀버스를 갈아타야 댐 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그러니 기차를 타고 춘천에 가서 소양강댐까지 버스를 이용해 갈 경우에는 기차-버스-버스-배-청평사, 이런 순서가 된다. 빠르고 안락한 승용차에만 길들여져가는 요즘 세태에 분명 흥미로운 여행 코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청평사! 고려 광종 때 지어지고 고려 시대 정원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영지를 비롯,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청평사는 지금 분명 이상한 모습으로 개축되고 있는 중이었다. 절 입구에서도, 안에서 보아도, 서로를 볼 수 없는 답답함으로 청평사는 막혀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청평사는 오가는 길로만 명물이 되고 싶은가 보다.
춘천 닭갈비는 살이 알맞게 찐 닭을 토막내 양념에 재웠다가 상추, 양파, 마늘, 고추 등 갖은 야채를 넣고 철판에 볶아 먹는 즉석 닭고기 요리다. 요리는 양계닭과 토종닭, 뼈째 내는 것과 뼈를 발라낸 것, 재료와 양념 등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1백여 미터 되는 골목길에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하는 원조 닭갈비집 30여 군데가 촘촘히 들어선 시내 명동 닭갈비촌은 춘천 고유의 명물이 되었다.
또하나의 춘천 음식 막국수는 임진왜란 후인 인조 때부터 즐겨 먹던 음식으로 특히 춘천지방에서 긴 겨울밤 밤참으로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리과정과 재료가 단순해 언제 어디서나 막 해먹을 수 있어 ‘막국수’란 이름이 붙은 것 같은데 요즘은 메밀이 귀해져 북한 것도 쓴다고 한다. 어쨌거나 닭갈비나 막국수, 전국으로 다 퍼져나갔지만 ‘진짜 맛’은 아직 춘천에 가야 있다.
춘천의 명물이 또하나 있으니 바로 새벽 물안개. 의암호, 춘천호, 공지천으로 둘러싸인 위치 조건으로 인해 새벽에 조금 부지런하게 일어나 호수 주변에 가면 볼 수 있다. 일교차가 큰 날에 더 많이, 더 쉽게 볼 수 있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 사랑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 물안개처럼 /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류시화의 시 ‘물안개’) “하얗게 피어나는 물안개처럼 / 당신은 내 가슴속에 살며시 피어났죠 / 조용히 밀려드는 물안개처럼 / 우리의 속삭임도 그러했는데 / 하얗게 지새운 밤을 당신은 잊었나요 / 그날의 기억들도 당신은 잊었나요 / 기다림에 지쳐버린 길 잃은 작은 영혼 / 온 밤을 꼬박 새워 널 위해 기도하리”(석미경의 노래 ‘물안개’)
몽환처럼 피어나는 희푸름한 물안개 속에서, 시인과 가수들은 바스러진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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