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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지리산 노고단 오르다

현정 (炫貞) 2007. 10. 20. 12:18




어딜 둘러보아도 산이다. 거기, 산 그림자가 맞은편 산에 제 몸을 놓을 때 너와 나는 몸을 뒤채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기도 하고 열매를 따 먹다가 선잠에 들기도 한다. 뒷산이 앞으로 왔다가 앞산이 뒤로 갔다가, 그렇게 내가 네가 되었다가 네가 또 내가 되는 듯 산들이 온몸으로 철벅철벅 걸어와 온몸에 스미는 구례에서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뜯는다. 천왕봉에서 내려온 바람이 손목을 툭 치며 마지막 달력 한 장을 훔쳐 다시 노고단까지 내달음칠 때, 봄과 여름과 가을을 보낸 지리산은 겨울 속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바람을 따라 노고단에 올라서자 구례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하늘과 땅에 사뿐히 몸이 얹혀졌다.

중국 운남의 설산에서 하산련(夏山蓮)이란 처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집에 사흘째 묵던 날 밤, 해 지는 산마루를 바라보고 있던 내게 그녀는 문득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 세대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산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정과 망치로 절벽을 뚫고 산 밖으로 나오게 된 그들은 그토록 세상이 넓다는 사실에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금세 세상의 전부가 그 산의 흐름이라고 생각해버렸고, 그래서 다시 행복을 되찾았다고 했다. 내가 만난 구례 사람들은 그러했다. 지리산이 세상의 전부인 듯 산에 몸 기대어 이마 맞대며 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모든 생로병사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것이 한 평생 살다 가는 가장 멋진 일이라는 듯, 산이 세상의 전부고 세상의 전부가 산이기에 구례는 사계절이 행복하다는 듯.
봄, 산동면은 노란 산수유꽃으로 마을이 뒤덮인다.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 그 자리엔 새빨간 산수유열매가 맺혔다. 아무 것도 없던 자리에 꽃이 폈고 꽃이 졌고 열매가 맺혔고 그 열매가 붉게 익었다.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산동면은 좁다란 계곡을 가운데 두고 집들이 양옆으로 들어서 있다. 하위마을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상위마을이 나오는데 위아래 할 것 없이 붉디붉은 점들이 별처럼 찍혀 있다. 계곡을 따라 무성한 산수유나무들, 집집 돌담 너머에 심어진 몇 그루의 산수유나무들, 그리고 마당과 고삿에 널려 햇빛을 받으며 마르는 산수유 열매들, 그리고 볼이 붉은 산동면 사람들까지, 모두가 붉다.

 

하위마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일흔이 넘은 미용사였다. ‘중동미용실’이란 이름이 낡은 건물 위쪽에 페인트로 칠해져 색 바래고 있는, 유리창엔 신부화장이라고 적힌 그 미용실에 들어섰을 땐 잘려진 머리카락만이 바닥에 뒹굴고 파마약 냄새가 짙게 고여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뒷문을 지나 그 집 마당에 들어서서야 미용사를 만났다. 마당 가득 나락을 말리던 그녀는 물었다, 머리하러 왔느냐고. 나는 그 거친 손을 보다가 그녀에게 신부화장을 받고 싶어졌다. 시집와서 내내 농사만 짓고 살던 그녀는 마흔세 살에 광주 미용학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산동면 사람들 머리를 매만져주고 있다고 했다. 그 사이 많은 처녀들이 시집을 갈 때마다 모두 그 집에서 신부화장을 했다고 했다. 그 많은 신부들은 그 봄날 같은 신혼을 지나 지금쯤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몸 불편한 흰 머리칼의 남편이 산수유나무 아래 앉아 있는 동안 그녀는 오늘도 파마 손님을 받았다. 나는 그녀에게 있어 돈벌이가 되지 않는 손님이기에 얼른 자리를
뜨려는데, 커피라도 한잔 대접해야 속이 편하다며 손 붙든다. 파마 약내가 짙은 그녀의 웃음이 다방커피처럼 들척지근하다가 돌아서는 내 목구멍에 쓴맛으로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올 겨울을 넘기고 나면 다시 꽃이 필 것이고, 마을의 누군가는 시집을 갈 것이다. 그녀가 그랬듯 꽃 같은 신부가 될 테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테고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들에게도 봄이 있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겨울, 그 이름 속엔 봄을 지나온 여름과 가을이 숨어 있다는 걸 우린 다 알고 있으니까. 작디작은 산수유열매 속엔 봄바람과 여름햇살과 가을하늘과 겨울눈발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 맛이 우리 살림살이처럼 시고 달고 쓰고 떫다는 것도….


산등성이에 자리한 상위마을은 늦은 오후 햇살을 받고 있다. 붉은 열매들이 투명하게 빛나며 제 속을 드러내 씨앗까지 내보인다. 산수유열매는 보통 씨앗을 빼내고 말리게 되는데 옛날에는 그 씨를 뺄 때 처녀들이 입에 열매를 넣고 씨와 과육을 분리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모두 기계로 작업을 하지만 여전히 아낙들의 손은 바쁘기만 하다. 가장 좋은 볕에 여러 차례 말리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수유열매와 함께 마루에선 콩이, 처마에선 곶감이, 마당에선 나락이 볕에 마르고 있다. 그것들도 모두 꽃의 흔적을 가슴에 품고 있기에 그 빛이 말갛다.
고무지우개로 아무리 박박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 너무 지우려 하다간 종이가 찢어져버려서 울음을 쏟게 되는 것들이 있다. 몸에 남은 흉터 같은 것이 그렇다. 가슴에 남은 상처 같은 것이 그렇다. 꽃 진 자리의 흉터가 열매라면 절망도 언젠가는 흰 살점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우개는 책상서랍에 넣어두어야겠다. 겨울이 오면 채 따지 못한 산수유 붉은 열매들 위에 하얗게 눈발이 얹힐 테지만, 그러고 나면 곧 꽃이 필 테니까 말이다.




지리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 위에 제 얼굴을 비춰보며 수양을 하는 듯한 절, 천은사(泉隱寺). 전설에 의하면 ‘물이 숨어버린 절’이라지만 ‘물속에 숨은 절’처럼 일주문을 빠져나오면 마치 다른 세상을 다녀오기라도 한 듯, 뒤돌아보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절.
해가 지느라 물빛도 법당도 붉어진 저녁, 노란 은행나무 이파리가 비처럼 쏟아지느라 마당 가득 나뭇잎 빗소리 가득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일주문을 빠져나가느라 사위는 슬그머니 적요해지고, 그럴 즈음 스님은 처소 가는 길로 접어든다. 이 문을 열고 다시 닫고 물길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저 문을 열고 다시 닫고 마당을 가로질러 조용히 신을 벗어 댓돌에 가지런히 놓고 다시 방문을 열고 닫고…. 저녁 무렵 스님의 행로를 보며 살아가는 일이 그와 같단 생각이 든다. 새벽이면 다시 반대편에서 열리고 닫히는 문처럼 우리는 몸과 마음을 여닫으며 살고 있다고. 그래서 나무도 여름엔 제 몸을 여느라 잎사귀를 있는 힘껏 펼쳤다가 이젠 문 닫느라 잎사귀를 떨구는 거라고. 나뭇잎 빗소리 더 요란해진다.
법당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스님 처소에도, 행랑채에도 불이 켜진다. 담장 너머로 건너오는 불빛이 저녁 한기를 조금쯤 털어내준다. ‘춥다’라는 말처럼 퍼지는 입김이 검푸른 하늘로 오를 즈음, 저녁 예불을 알리는 천은사 범종소리가 지리산 자락을 이불처럼 덮어준다. 산도 나도 금세 따뜻해진다.
천은사에서 산 쪽으로 조금 더 오르자 도계암(道界庵)이다. 법당의 흔들리는 촛불을 따라 비구니의 검은 그림자가 창호지 문에 어룽댄다. 아이는 지금쯤 잠들었으리라.
낮에 천은사 입구 삼거리에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한 아이를 만났다. 볕이 눈으로 파고드는 길을 걷고 있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면 함께 가자는 말에 아이는 머리를 흔들며 산속으로 쏜살같이 달아나버렸다. 나중에 그 아이가 도계암에 산다는 것을 알았고, 괜스레 미안해졌다.
혜관 스님은 몇 년 전부터 강보에 싸여 암자 앞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었다. 아이들은 스님을 엄마라고 불렀다. 그렇게 도계암은 여름철에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쑥쑥 자라는 어여쁜 풀잎들 같은 아이들의 집이 되었다. 낮에 만났던 그 아이도 부처님의 품 안에서 스님의 딸이 되어 법문을 자장가처럼 들으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같이 일주문을 지나야 하는 아이는 산속으로 달아나며 문 밖의 우리들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함께 갈 수 있는 길과 함께 갈 수 없는 길이 있다고, 대체 어디까지 같이 가줄 수 있단 말이냐고. 제 길을 잃지 않고 매일 즐겁게 일주문을 지나는 아이는 길에서 헤매고 있는 내가 더 안쓰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길 앞에서, 그리고 돌아가선 안 되는 길 앞에서 미련스럽게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나보다도, 제 길은 제 스스로 가겠다는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도 어른스러워서 눈물겨웠다.
밤이 깊다. 하늘과 산의 경계선이 허물어져 이내 산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산이 되어버린 밤, 그 적막한 어둠 속에서 별 하나가 몸을 뒤채는지 유난히 반짝거린다. 키가 크느라 잠자리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아이도 반짝이고 있을까. 별에게 빈다. 아이가 여름철 나뭇잎들처럼 있는 힘을 다해 두 손을 쫙 펴기를, 그 두 손을 당당하게 내밀어 하늘에 뻗어 올리기를, 아이 인생의 여름철이 그 누구보다도 뜨겁기를, 나는 바란다. 그 뜨거운 마음이 좀 식고나면 나와도 손 맞잡아 주기를, 그렇게 갈 수 있는 데까지만이라도 함께 걸어가주기를, 나는 산사의 바람 속에서 바란다.



섬진강 물줄기 따라 내려가다 보면 피아골 상류의 물이 섬진강에 합쳐지는 걸 바라보는 마을이 있다. 경상남도와의 경계인 토지면 외곡리, 연곡천이 흐르는 양 옆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하고도 아늑한 마을이다. 늦여름부터 한겨울까지 이 마을엔 구수한 밤 냄새 가득하다.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에 밤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늦여름이 되면 마을은 밤꽃 냄새에 취해 잠들지 못하고, 가을이 오면 튼실하고 매끈한 알밤이 마당에서 햇빛에 마르는 냄새 가득하고, 겨울이면 그 말린 밤에 물을 흥건히 붓고 오래도록 끓여 먹는 밤죽 냄새가 집집 아궁이에서 피어오른다. 달달하면서도 구수하고 시원한 밤죽 맛을 설명하던 동네 아주머니가 내게 마른 밤 한 주먹을 쥐어준다. 밤 속에 들어 있는 지리산의 물과 햇빛과 흙을 우물거리며 지난여름의 밤꽃 냄새를 맡는다. 경상도와의 경계지임에도 불구하고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마을 사람들의 어투도 입안에서 우물거리며 닮아본다.



외곡리에서 피아골로 접어들수록 단풍은 점점 더 바짝 타들어 간다. 산등성이엔 추수를 끝낸 다랑이가 빈 계단처럼 놓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선 염소들이 노닌다. 피아골은 지리산 최대의 활엽수림이어서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핏빛 단풍이 수면에 비쳐 핏물을 풀어놓은 듯한 연곡천을 따라 걸으며 사람들은 소곤댄다. 단풍놀이 나온 사람들이 꽃놀이 나온 사람들처럼 부산스럽지 않은 건, 이제 이파리들과 작별해야 하는 나무의 마음과도 같기 때문일 것이다. 종달새 무리가 머리 위로 떼 지어 날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붉은 숲길에서 누군가와 이별이라도 하듯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외곡리에서 피아골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연곡사( 谷寺)는 산중의 박물관이다. 국보인 동부도와 북부도, 보물인 소요대사부도와 동부도비와 현각선사부도비와 삼층석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동부도는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도 여성스럽기로는 최고로 치는데 조각이 세밀하고 화려한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서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그러나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저 방향에 따라 동부도, 북부도라고 부르고 있다. 그저 먼저 이 자리에 왔다 간 스님의 사리가 모셔진 부도 위에 오늘 낙엽이 떨어지는 걸 우리는 보고 있을 뿐이다. 가만히 부도를 보고 있자니 하대석의 여덟 면에 새겨진 사자들이 지키라는 부도는 안 지키고 가을 낙엽을 밟으며 노는 듯하다. 그 아래에는 구름과 용이 어우러져 새겨져 있어서 마치 이곳이 정토인가 싶은데 고개 흔들고 보니 발등에 쌓인 낙엽이 몸에 다닥다닥 붙은 번뇌 같다. 여전히 예토에 앉아 처연할 뿐이다.

한 생애가 그렇게 온몸의 물기를 다 빼내고 사리로 남듯, 나뭇잎이 제 몸의 물기를 말려 땅으로 떨어지는 걸 보면 생이 한순간이다 싶다. 그러나 그 잎이 땅으로 돌아가 다시 새잎이 될 때까지, 그렇게 윤회할 때까지의 오랜 삭힘과 견딤이 어쩌면 생의 전부가 아닐까도 싶다.
부도 옆쪽엔 차밭이 펼쳐져 있다. 흰 꽃은 어느새 단단한 열매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가려고 툭툭 온몸 던지고 있다. 씨앗 하나 집어 껍질을 벗겨보니 새하얀 속살에 물기가 촉촉하다. 그래서 가을엔 모두들 겉은 메말라도 가슴이 촉촉해지는 걸까.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겉모습은 견과류처럼 주름지고 검어지지만 눈물이 잦아지는 걸까.



그렇게 촉촉해지면서도 견고해지는 것 중 하나가 가족일 것이다. 부부는, 모두가 떠나도 마지막까지 남아 손 붙잡고 있는 이들이다. 외곡리에서 만난 슈퍼집 부부가 그러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만나 부모님이 반대할까봐 손 붙잡고 야반도주했다는 부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서로가 자신에게 과분했다는 말을 꺼내놓는 부부를 보며 오랜 사랑을 배운다. 아무리 젊음이 아름답다고 해도, 아무리 신혼이 달콤하다고 해도 황혼의 부부가 서로에게 갖는 감정만큼이나 깊은 사랑이 또 있을까.
종일 붉던 단풍이 어둠 속에 묻히자 산은 금세 검게 변한다. 다섯 살 무렵엔 골목의 어둠이 슬픔의 전부일 줄 알았고 스무 살이 넘었을 땐 사랑의 아픔이 절망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서른이 넘어서는 ‘전부’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내 생의 가을을 다 지내고 나면 무엇을 알게 될까. 가을을 보내고 있는 지리산은 오늘밤도 안녕하다.


아침, 비가 내리다가 말다가 하니 날이 더욱 차디차다. 마음이 먼저 추위를 타자 마음의 가난은 더욱 서글퍼진다. 추운 날의 가난은 그 누구도 구제해주지 못할 것만 같은데 운조루(雲鳥樓)에서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를 보고는 마음의 가난을 벗었다.
지리산 노고단 줄기가 뻗어내려와 섬진강 줄기와 만나면서 구만들이라는 넓은 평야를 만들어내는데, 그 명당에 운조루가 있다. 운조루는 조선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영조 때 유이주(柳爾胄)가 낙안 군수로 있을 때 지은 99칸 집이다. 현재는 60여 칸이 남아 있을 뿐인데 예전엔 솟을대문 좌우에 있는 행랑채만도 12칸이었다고 한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마주보이는 사랑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현재 유이주의 10대손이 살고 있는 안채가 있다. 그 안채로 들어서기 바로 전에 큰 통나무를 파서 만든 쌀통을 볼 수 있는데, 아래쪽에 있는 쌀구멍에 바로 ‘타인능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타인도 능히 그 구멍을 열 수 있다는 뜻의 뒤주다. 유이주는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이 뒤주에 늘 쌀을 채워 놓고 가난한 이웃들이 필요한 만큼 쌀을 퍼가도록 했다. 직접 돕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가져가게 한 주인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웃들은 서로를 위해 꼭 필요한 한두 되의 쌀만을 가져갔다고 하니 서로를 위해 베푸는 마음은 모두가 부자였던 것이다.
운조루의 세심한 배려는 굴뚝에도 있다. 굴뚝이란 것은 원래 연기가 잘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되도록이면 높이 올리는 것이지만 이 집의 굴뚝은 낮다. 밥 짓는 연기가 이웃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한 것이다. 가난한 이웃들에겐 밥 짓는 연기가 눈물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유이주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밥 짓는 냄새가 가득한 운조루 안채 마당의 돌확 앞에 앉아 있는데 안에서 나이든 아낙이 문을 열고 나온다. 마당을 가로질러 장독대로 가더니 고추장을 한 사발 퍼 가는데, 되는 집안은 장맛도 달다고 했던가. 고추장 때깔이 곱디고운 것이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이 집안의 품성이 엿보인다.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가족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따뜻해지려는데, 이제 비가 그치고 아침볕이 환하게 마당에 들어찬다. 겨울엔 등줄기에 달라붙는 따뜻한 볕 한줌만 있어도 주린 배가 반쯤은 채워지는데 그 나머지 반을 운조루가 채워준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 구례를 ‘삼대삼미(三大三美)’의 땅이라고 소개했다. 세 가지 큰 것은 지리산, 섬진강, 들판이고 세 가지 아름다움은 풍경, 인심, 소출이라고 했다. 다섯 가지는 일찌감치 인정한 바, 마지막으로 지리산의 크기를 가늠해보자며 노고단에 오르기로 한다. 해가 이제 막 오르기 시작한 새벽, 노고단으로 오르기 위해 성삼재에 섰을 땐 온몸을 밀어내는 바람의 세기가 만만치 않았다. 노고단까지 오르며 줄곧 생각한 것은 바람의 생애였다. 바람은 태어나서 제 생을 마칠 때까지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불어 가는가, 어디서 나고 죽는가, 바람의 생애는 절대적 무소유이니 찬란하지 않은가. 그 마음으로 해발 일천오백칠 미터의 노고단 정상에 섰을 때, 바람은 더 몸을 불려 불어쳐서 얼굴조차 들지 못하게 한다. 일어서서 걸음을 떼는 일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주위의 첩첩 산과 아래의 섬진강 물줄기와 사람의 체온을 간직한 구례의 살림살이를 내려다보며 바람에게 말한다. 겨울과 손 붙잡고 오는 이 얼음장 같은 바람이 좋기만 하다. 바람아, 네가 아무리 강짜를 부린대도 나는 이 지리산의 품이 따숩기만 하다. 찬 왜바람 속에서도 벅찬 풍경으로 심장 뜨끈해지는 이 순간이 생의 전부라 해도 좋겠다. 산을 닮아 묵묵하면서도 인정 많은 구례사람들처럼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세상의 전부라 믿고 살 수 있겠다.




글 정 영

2000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낼 때가 되었건만 사람과 풍경과 정들을 찾아 산·들·바다를 찾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

사진 이요셉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을 사진, 노래, 영상 등을 통해 알리는 버드나무(www.birdtree.net / www. lovenphoto.com)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