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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선생의 "문신미술관"

현정 (炫貞) 2007. 4. 12. 13:49
문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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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관시간 : 09:00 ~ 18: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
  • 주소 : 마산시 추산동 51-1
  • 전화번호 : 055-247-2100, 055-240-2477
  • 관람료 : 일반_500원 / 청소년_200원 / 어린이_200원
문신미술관은 1980년 프랑스로부터 20여년만에 귀국하신 '문신'선생께서 마산시 추산동 51의 1번지 일원 이천삼백여평의 언덕에 필생의 정열을 기울여 '문신예술 50년'을 맞이한 1994년 개관된 미술관으로서 '문신'선생의 작고이후 미망인 최성숙 여사가 한점 흐트러짐 없이 관리해 오다 '사랑하는 고향 마산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생전의 유지를 받들어 2003년 6월 마산시에 기증되었습니다.

문신미술관은 그가 조각 작품의 소재로 주로 사용했던 단단한 흑단이나 쇠나무들을 깎고 다듬고 새겨 가듯이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해 건립 되었으며 이 기간동안에도 '문신'선생은 10여회의 국제적인 전시회에 초대 출품했고 수차례의 회고전을 거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더 높였습니다.

'문신 미술관' 마산시에 기증한 부인 최성숙씨
"예술은 함께 즐기는 것.. 먼저간 남편 뜻 살렸죠"
파리 체류 20여년간 유럽 각국에서 100여회에 걸친 전시를 통해 독특한 조형 세계를 선 보여 한국 조각의 위상을 높인 조각가 문신(文信 · 1995년 작고)

그의 아내 최성숙(崔星淑 · 56)씨는 79년 서른 셋에 스물 네살 연상이었던 문신과 결혼했다. 서울대 미대 동기였던 첫 남편이 결혼 생활 9년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최씨는 달아나듯 독일로 떠났고 2년 뒤, 우연히 파리에 갔다가 재불화가 모임에서 문신을 만났다. 문씨에게는 10년 넘게 동거해 온 독일인 여자가 있었고 최씨에게도 구애를 해 온 화가가 있었지만 두 사람의 결혼을 막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79년 5월 최씨 집 주방 식탁에서 최씨 부모님만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다. 최씨는 남대문 시장에서 산 티셔츠와 치마 하나 달랑 입고 예배하는 것으로 식을 대신했다고 한다.

문씨는 국내외적으로 탄탄한 자리를 매김할 무렵인 80년 마산으로 영구 귀국했다. 그리고 고향 앞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추산동 가파른 언덕에 미술관을 지었다. 부부는 직접 돌멩이를 골라내고 축대와 담을 쌓아 14년에 걸쳐 미술관을 완성했다. 당시 한 미술평론가는 '문신이 평생 이력서를 땅에 쓰고 있다'고 표현했다.

말수는 적었지만 엄청난 정열의 작가로 알려진 문씨는 강철같이 단단한 흑단과 쇠나무를 재료로 조각 작품을 빚어내는 씨름을 해왔다. 톱과 쇠깎는 기계를 다루는 그의 두 손은 선반공처럼 거칠었다.

가장 가까이 그를 지켜 보았던 아내 최씨는 그를 '지독한, 치열한 작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작품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아내로서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남편이 아니라 스승이었어요. 남들은 희생이니 헌신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을 통해 박사 학위 논문 하나 뗀 것 같아요."

문씨는 미술관 개원 1주년을 사흘 앞둔 95년 5월 23일 일흔 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남편 사후 미술관을 맡아 관리해 왔다. 그리고 8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문신미술관을 마산시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문신 미술관'은 대지 2500평에 전시실 작업실에 조각 105점, 수채화 유화 등 문신의 작품 290점이 있다. 굳이 돈으로 치자면 집을 포함해 시가로 100억원 대에 달한다.

'남들이 미쳤다고 합디다. 하지만 미술관은 사유 재산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고인의 뜻이기도 했구요.'

최관장은 미술관을 기증하면서 생의 또 다른 무대로 옮겨 가고 있다. 누구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예술가로 홀로 서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1986년 호암 갤러리 주최 한국화 86인 초대전에 꼽힐 정도로 유망한 화가였던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홀가분하게 붓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 출저 : 동아일보 2002년 11월 13일
 
1. '문신'은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며, 미래가 기억할 예술가이다.
- 작크 도판느

어느덧 문신의 작품은 파리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과 뚜렷하게 구별되면서 부터 파리 화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완전히 개인적인 역량으로 작품에 대한 허황한 광고없이 말이다.
반드시 미술전문가나 비평가가 아니고 단순한 예술애호가라도 그의 그룹전이나 화랑에서 이예술가의 작품을 한번이라도 대해 본 사람이면, 또 그런 기회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앞에 섰을 때 순간적으로 '이것은 문신이다' 라고 말 할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이것은 '칼드'다, '헨리무어'다, 또는 '자코메티'다 라고 말하듯 문신의 작품이란 말이다.


문신은 말이 적은 사람이며, 그의 말은 곧 작품의 핵심이랄 수 있다.
이를 테면 자신의 예술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조각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나는 많은 데생을 한다. 그것들은 단지 선과 선들로 연결된 원, 타원, 또는 반원만으로 구성된 것이다.
종이 위에 전개된 이 원과 선들을 하나의 구체적인 量으로 만들기 위해, 단단한 재료의 한 덩어리에다 직접 깎기 시작한다. 이 量들은 무엇보다 먼저 나의 포름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들에는 여하한 구상적 현실의 재현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연스러운 형태들이다.
그것은 그들 자체의 현실을 가진 형태들이다.
즉 주제가 없지만 그들 자체의 실재를 가진 포름이다. 오직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작업을 하는 동안에 이 형태들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며 궁극적으로 생명의 의미성을 가지게 되길 바랄 뿐이다."
언제나 나에게는, 이 예술가의 작품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독창성이다. 이 독창성은 일의 기술적 세련, 영감의 자유, 전통의 존중 이 세가지의 근본적인 질이 놀라울 만큼 잘 융합되어 이루어졌다. 우선 기술적인 세련에 대해서 살펴보자.
조각작품의 형태의 표면들은 망인이라도 손으로 만져보면 그 청초함과 풍요성을, 그리고 민감한 감촉이 전달되는 기쁨을 느끼게 될 정도로 많은 노력과 인내로써다듬어졌다.
다음 영감의 자유로 말하자면 문신의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 이 영역에서 그의 대담성은 매우 크다. 그는 현대예술에서 극소수의 예술가들이 감히 하는 것을 감행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조각의 하나 하나는 생명 그 자체, 즉 자연속의 식물, 곤충 혹은 새들의 모습과 닮은 시메트리(좌우균제)의 생명의 원리로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창조적 원칙의 귀결로 문신의 모든 작품은 매혹적이며 거대한 보석과도 같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그의 회화의 세계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그의 회화도 주의깊게 감상하면 조각과 마찬가지로 조화된 생명률의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쉽게 알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바로 이 생명률의 법칙을 한국의 옛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의 예술가인 문신은 고려시대의 도예가와 서로 따뜻하게 만나는 점도 바로 여기에서다. 여하튼 나로서는 문신은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며, 미래가 기억할 예술가이다. 왜냐하면, 문신은 전위작가인 동시에 한국예술의 전통을 여러 세기에 걸쳐 심어 놓은 옛 거장들의 특질을 갖춘 타고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2. 우주와 생명의 음률을 시각화한 바리에이션
- 피에르 레스타니 (프랑스 평론가)

서울 잠실부근 어느곳에나 수은빛 강렬한 은색의 물체가 올림픽 공원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25미터나 되는 높이의 기념비적인 조각품으로 한국인 작가 문신의 하늘에 한알씩 엮어진 거대한 묵주알 인양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55개의 반구형으로 구성된 두개의 탑이 평행으로 아랫부분을 8미터 폭으로 된 앞.뒤에 또한 반구형의 구성체가 놓여졌다. 이것이 직경 40여미터의 둥근 대좌를 겸한 수중에서 이 조각품이 솟아 있다
그 제목 " -올림픽의 단합- "은 이 작품의 상징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


올림픽의 단합 - 엇갈리게 연결된 반구형은 외형을 초월하여 이 작품은 환상적인 맥락을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 전체의 강렬한 다이나미즘은 반복에서 기인되는 단조로움을 상쇄하는 효과를 갖는데 그러나 이 반복은 벨기에 작가 Pol Bury의 작품 "공의 연못(Fontainea Boules)"에서는 매우 단조로움이 두드러진 것이다.
문신 작품에서는 표면의 떨림이 이 금속 특유의 반짝이는 효과에 의해 강조되는 파상적인 리듬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비가 온 후에 맑은 여름 햇살 아래서 이 쌍둥이 자매같이 붙어있는 두 탑을 보아야 한다.
무한히 펼쳐지는 푸른 하늘에 두개의 원형 기둥위에 세워진 이 작품은 바로 반짝이는 빛이 근원이 되며 그 빛을 사방으로 엇갈리며 그 광채를 연쇄적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문신의 작품은 공원의 잔디 풀잎에서 부터 넓은 빈공간으로 까지 확산된다. 이 작품의 느낌은 비누방울 같은가 하면 수정알 같기도 하고 그 빛남은 유리알의 깨짐과 같은 불안감은 주지 않는다. 대단히 강렬한 시각효과는 일반 감각을 초월하여 현실과 비현실 물체와 비물체의 마술과 같은 차원까지도 창조해 낸다.
올림픽 공원내의 조각품중 문신의 작품이 가장 인상적인데, 그것은 그 크기 때문이 아니고 그 작품이 지닌 현대성 때문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자세를 새로이 하게 하며 우리 자신을 초월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이 작품의 진정한 존재가 시적인 차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 비너스상에 바치는 무한 기원
- 쟝.마리 듀노와이에 (르.몽드 지 평론가)

문신의 조각은 중압적이거나 온화한 거상에서부터 소품, 대작에 이르는 걸작의 세련됨에 이르기까지, 그의 엄청난 다양성에서 엿볼수 있듯이, 풍부한 종류의 목재와 금속을 집결시키고 있다.
특히 그는 금속을 다루고 있다. 그의 조각은 이 모든 소재의 대립의 미를 교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측정하고 있는 대가의 대작들과 그의 조각을 견줄 수 있는 것으로 그 대답은 충분할 것이다.
발걸음이 가벼운 후피동물이나 수많은 불가사의한 근원을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평온하게 거니는 실낙원에서 융기, 돌출하고 있는


예상스런 창조물들이 그의 작품에서 표출됨에도 불구하고 문신의 지극한 고요함에 마주서면 우리는 그 격렬함이나 도발성은 전혀 찾아낼 길이 없어진다.
우리는 바로 "평온의 힘" - 정치적 암시와 거리가 먼 - 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있다. 심오한 삶이 영구적으로 꿈틀대며 빛을 발산하는 곳, 면밀성과 관능미가 양존하는 그런 예리하며 광범위한 지역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우수한 회화작품의 선택에 의해서 또는 지속적으로 제작하며 발표되고 있는 회고적 푯대에 의해 우리는 문신이 반세기 동안 거쳐온 행로를 더듬어 볼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일본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그를 만나 볼 수 있다. 화가로서 자위하고 있는 이들이 그렇듯이 관찰력으로써만 현실을 대항하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완벽한 화가였다. 그는 두말할 것 없는 화가이다. 뛰어나게 확고한 능력으로 10여년 넘게 분출해 내는 풍경화와 정물화는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1959년 까지 서양의 고전주의 양상이 드러나는 기운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탁월한 재능이 상승된 화가이다.
그러나 그의 생선, 딸기, 붉은 벽돌집, 친근감을 느낄수 있는 나날의 삶의 정경 또는 더욱 모던화된 스타일의 자화상을 본다해도 정반대의 세계로, 극의 세계로 접어들어 가고 있는 그의 갑작스러운 변신을 예견할 수 없다.
아마 우리는 문신의 유럽으로의 출발과 1961년 부터 시작된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들추어 보아 그의 천업의 탄생을 직감해 볼 수 있다. 그의 자각은 뉴턴의 만류인력의 사과나 프르스트의 마들렌느 과자와 같이 잘 알려진 그의 일화에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알기로 문신은 때때로 목수, 미장이, 석공 등의 고성의 복구작업을 해내며 사물의 실험성, 구체성, 견고성의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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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에서의 신비 혹은 그들의 간명한 반영마저도 서서히 허물을 벗어내리고 험난한 자각의 세계인 극복해야 할 거칠은 "3차원적인 사실성"의 세계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시각의 세계에서 손의 세계로 교차된 것이다. 수정하여, 친숙히 내면의 세계로 파고 들어가는 사물의 대결을 이제부터 그의 활동적 삶의 절대적인 원천이 된 것이다.
그는 자율적인 개념의 구체화를 위해 구상세계의 적인 새로운 사실주의를 착안하여, 우리가 통찰할 수 있듯이, 가장 견고한 사물을 자신이 손수 자르며 다룬것을 볼수 있다.


물론 거기엔 내밀한 정신이 그의 작품의 핵심적 역활을 하고 있다. 그 정신은 문신의 모든 작품의 제작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주지 할 수 있다.
그는 그것을 멀리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세계의 구상을 위해 사전에 윤곽과 프로필로서 초안을 하며 대비하고 있다. 연필과 먹으로 그린 수없이 많은 예비 데생들은 그 세계를 실증해 주고 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있으며 또 그 후에도 제작될 그의 작품 실체의 볼륨과 동일하다고 하여 이 동일성은 전체의 체계와 같이 불굴한 수학 법칙에 의한 것처럼 그의 독창적인 우주관과도 흡사한 것이다.
그곳에는 구형의 숭고한 음영이 독설적으로 "영원한침묵" 과 완결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신은 두드러진 중간 과정없이 - 그의 회화작품에서 드물지만 집요하게 표상되어 있듯이 - 사실주의의 향상이 짙은 구상세계에서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세계로 변모해갔다.
그의 작품의 초안, 크로키는 완성된 작품으로 오인 될 만큼 완결하며 원형과 타원형, 직선과 곡선은 낙원적인 정결함을 산출해내고 있다.
거기엔 시적 서정의 향내가 나며 우리의 내밀한 곳에 잠재해 있는 예민한 영역을 일깨워 주고 있다.
바로 이 부드러운 시성을 우리는 그의 총괄적인 조각에서 되찾고 있는 것이다.
그의 조각은 별들과 끊임없이 팽창해가고 있는 은하수 무리와 흡사한 것이다. 창조자의 폭발적인 비약을 지닌 운석의 떼와 같다고 할수 있다.
그들은 대기의 일시적인 변덕에 찢기고, 용수철 형태의 가닥을 꼬아 감기고, 원형으로 향기로이 피어 나기도 한다.
이 절제할 줄 아는 무리들은 짓누르지 않고 힘차게, 유아적인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으며 세련됨을 갖추어 우주공간을 점령하고 있다.
우리는 간명하고 매끄러우며, 광택이 나는 금속(스테인리스 스틸 혹은 브론즈)이나 목재(견고하며 희귀한 나무, 목판, 이국의 향나무)의 둥글게 어우러진 곡선의 형태에서 거칠함을 찾아내려 헛되이 애를 쓰고 있다. 그들의 표면은 윤이 나고, 갈리고, 닦이어, 빛을 흡수하기도 하며 애무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들을 창작의 행복감에 참여시키고자 하고 있다. 그들은 문신의 모든 창작품이 그렇듯이 대지에 단단히 닻을 내려 확고부동한 틀을 뚜렷이 부각시켜주고 있다.
그의 호적수는 "우주를 향하여"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위에 설명했듯이 이와 같은 제목은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거대한 원판의 시리즈로부터 검소한 변모에 이르기까지 문신의 내밀한 욕망은 우주를 향하고 있는 것을 제공해주며 설명해주고 있다.
"조화"는 융화의 명목으로 네번에 걸쳐 반복해주며 표현해 주었다. 몇몇 그의 조각의 제목들은 - 일반적으로 조각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 그의 작품의 상세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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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새" 나 "바다의 꽃" 이 두 작품의 예를 들어보자.
문신은 제작후에 그의 동료들이 그의 조각과 생성하고 있는 존재들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제의함으로써 그와 같이 제목이 유발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확실한 제명이 주어져 있던 무제의 작품이건 문신의 작품은 그의 형체의 존재나 조각이라

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들은 확고한 형체의 미에 의해 그 존재성을 확립시켜 주고 있다.
그 형체는 풍만하며, 볼륨이 두드러지며, 대부분 하늘을 떠도는 유성과 같이 순환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유연하며, 부풀어 있고, 돌며, 뒤틀리며, 팽창되어 있으며, 홈이 파이고, 길게 벗어나 그런 구형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거기엔 끊임없이 조화가 존재하고 있다. 미세한 불균형의 리듬 즉 가식적 균형이 부여된 작품들도 포함되고 있다. 그와 같은 구조는 수직으로 치솟아 있으며 그 우뚝솟은 모습은 마치 그들이 늘 그렇게 존재해 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세로 보인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어떤 상징을 부여하기를 갈망한다. 또 그들에게 토템, 우상 또는 지상에 인간들이 숭배하고 있는 신들의 전통의식을 찾아내려하고 있다. 이미 몇몇 비평가들이 이점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날렵한 목재로 된, 평행선의 나래를 펴고 있는 수평으로 제작된 훌륭한 작품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창세기의 넘실대는 정신이 그 물위에 맴돌고 있는 것일까?
우리도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추상작품에서, 앞에서 언급한 유사성 뿐만이 아니라 "잘 손질된" 짐승, 새, 곤충, 개미, (대형의) 나비 등의 유사성의 흔적을 발견하여 비유하며 이끌어 가보자.
문신은 동화된 형태들을 부인하지 않지만 자신의 작품은 "자연의 생성 존재들의 묘사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형체"라는 것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넋을 잃게하는 동상으로 된 예상한 동물원으로 간주하고 근원을 알수 없는 모든 생명체들을 광대한 힘의 저장고라고 간주하여 토론의 격을 높여 보자.
이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바로 그곳에 응결해 있다.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잉태하며, 그 세계의 활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는 이들에겐 감동적인 불길은 확고한 것이다. 위의 사실은 하나의 소견이 아니며 수수께끼도 아닌 현실이다. 수많은 표적에 의해 그 사실은 여실히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느끼지 못하며 무관심한 이들에겐 비물질적이며 미세한 이 불길은 소위 짐승이라든가 신들이라는 외향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문신은 그들에게 생명을, 자신의 삶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그를 아끼는 감상자와 더욱 더 알고 싶어 갈망하는 관람자에게 그는 강렬함과 감동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의 작품에서 풍겨나오는 강렬한 관능미에 민감하나 거기엔 헤아릴 수 없는 풍요가 넘치며, 풍성한 곡선과 팽창, 관능적인 굴곡, 날카로운 선이 격투라기 보다는 - 가죽으로 쌓인 검의 애무하는 듯한 창의 격투를 상기 시켜주는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면 - 욕망의 자극대로 볼 수 있는 미온한 매력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은 비너스신을 향하고 있는 무한한 기원이다. 되찾은 고요함을 우아하게 두르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향의 작품과 광대한 창작품이 여기에 펼쳐져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문신의 고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것을 상기 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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