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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의 24 절기-2-

현정 (炫貞) 2007. 4. 29. 00:56

*가을*

13. 입추(立秋 / 8월 8,9일)

24절기의 열 세 번째. 음력으로는 7월 절기, 양력으로는 8월 8, 9일 께이며, 대서(大暑)의 15일 후인데 태양의 황경이 135도인 날이 입추 입기일(入氣日)이다.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으며, 가을(秋)에 들어서는(入) 절기라는 이름이다.

동양의 역에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의 석 달을 가을로 한다.

여름의 토용(土用)막이도 입추 전날까지로서 아침저녁의 바람은 가을 소식을 알려준다.

옛날 사람들은 입추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표현하였다.

기청제(祈晴祭) - 벼가 한창 익어가는 계절인데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동안만 계속돼도 옛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는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던 것이다. 성문제(城門祭)또는 천상제(川上祭)라는 이름도 바로 기청제를 두고 한 말이다.
'춘추번로(春秋繁露)'라는 중국 옛 문헌에 이 기청제를 영(榮)이라 하고, 제를 지내는 방법을 상세히 적고 있다. 성안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를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게 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모든 성안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고 또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비를 유감(類感)하는 일체의 행위는 금지된다. 심지어 방사(房事)까지도 비를 유감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야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는다.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일체 금한다. 제장(祭場)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다. 양(陽)의 기운인 남방(南方), 적색(赤色)을 드리우면서 태양(太陽)의 볕을 갈망했었다.  


14. 처서(處暑 / 8월 23일)

24절기의 열 네 번 째. 음력으로는 7월의 중기, 양력으로는 8월 23일께이다. 태양은 황경(黃經) 150도에 있을 때이다.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든다.

여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여 더위를 식힐 수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 사람들은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②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③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에 논두렁,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한다.

포쇄 - 아직은 붙어있는 여름 햇살과 선선한 가을 바람에 장마에 습기 찬 옷이나 책을 말리는 포쇄(曝[쬘(쇄) = 日+麗] -햇빛에 말림)도 이 무렵에 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선선한 바람에 파리 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며 또한 백중(百衆)의 호미씻이[세소연(洗鋤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 때를 맞이하게 된다.

처서에 비가 오면 장차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흉년이 된다고 해서 매우 꺼려하였다. 그래서 속담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였다.

중복에 참외, 말복에 수박, 처서에 복숭아, 백로에 포도가 제 철 과실로 최고의 맛이다. 


15. 백로(白露 / 9월 8일)

24절기의 하나로 열 다섯 번 째. 음력으로는 8월절, 양력으로는 9월 8일께이다. 처서(處暑) 다음, 추분(秋分) 앞의 절기로, 태양 황경이 165도 때이다.

이 시기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는 엉겨서 이슬이 된다. 흰 이슬이 내리며 가을 분위기가 완연해진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석 무렵으로 만곡이 무르익는 시기이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를 5일씩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날아오고, ② 제비가 돌아가며, ③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 즈음에는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을 일으켜 피해를 주는 수가 있다.

그러나 백로에 비가 오면 풍년의 징조로써, 속담에 "백로에 비오면 십리 천석(天錫)을 늘린다."고 하였다.

'흰 이슬' -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한다.

백로와 포도 - 참외는 중복(中伏)까지 맛있고 수박은 말복(末伏)까지 맛있다. 처서(處署) 복숭아, 백로(白露) 포도 하듯이 철따라 과실의 시식(時食)이 정해져 있어 과실 맛으로 절기를 느끼곤 했던 것이다. 옛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바로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포도의 계절이다.
 
다산(多産)의 상징 - 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민속이 있었다. 주렁주렁 포도알로서 다산(多産)을 유감(類感)시키기 위한 기자주술(祈子呪術)이었을 것이다. 조선 백자(朝鮮 白磁)에 포도 문양의 백자가 많은데 이 역시 다산을 유감시키고자 내방(內房)에 두는 주술 단지였다. 지금도 연만한 분들은 처녀가 공개적으로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데 포도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전통적 이미지가 도사려 있기 때문이다.

포도지정 -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했는데,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물림으로 먹여주던 그 정이 일컫는다.

허수아비 - 만곡이 익어가니 백로(白鷺)아닌 새들이 한창이고 이를 쫓으려는 허수아비의 수고로움도 향수(鄕愁)처럼 그립기만 하다. 


16. 추분(秋分 / 9월 23일)

24절기의 열 여섯 번 째, 음력으로는 8월 중이며 양력으로는 9월 23일 께이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북에서 남으로 천구의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곳(秋分點)을 지나는 9월 23일경을 말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는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진다. 이 시기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며,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백로와 한로사이에 든다.

옛 사람들은 추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우레 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②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창을 막으며, ③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이 시기가 추수기이므로, 백곡이 풍성한 때이다.
 
추분도 다른 24절기나 마찬가지로 특별한 절일(節日)로 치지 않는다. 다만 춘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므로 계절이 나뉘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의 길이가 길어지므로 비로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점을 실감한다.

시절 요리로는 버섯이 가장 맛있는 철이다. 호박고지, 박고지, 호박순,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때 먹을 수 있으며 산채를 말려 묵은 나물로 준비하기도 한다.

또한 추분 즈음이면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를 따고 고추도 따서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 일이 있다.


17. 한로(寒露 / 10월 8일)

24절기의 열일곱 번째, 음력으로는 9월절. 양력으로는 10월 8일 께이다. 이때 태양은 황경 195도의 위치에 온다.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든다.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한로)이 찬 공기를 만나서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옛 사람들은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②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돌며, ③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다.

또한 여름철의 꽃보다도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세시명절인 중양절(중구(重九), 음력 9월 9일)과 같은 시기에 해당한다. 중양절에는 특별한 민속이 있으나 한로는 다만 절기로 칠 따름이다.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 국화는 그 둥근 모양과 밝은 색이 태양을 상징하며 양(陽)의 숫자 중 가장 큰 수인 9가 겹치는 중양(重陽, 9월 9일)이 바로 이즈음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수유(茱萸)를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 색은 양(陽)색으로 벽사(邪)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와 상강철의 서민들은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을[추(秋)]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했는가 보다.

저녁이면 붉게 익어간 감을 까치 밥으로 남겨 둔 고향집이 그리울 때이다.


18. 상강(霜降 / 10월 23,24일)

24절기의 열 여덟 번째, 음력으로는 9월 중이며, 양력 10월 23일, 24일 께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210도 되는 때. 한로와 입동 사이에 들며, 대체로 이 시기는 말고 상쾌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운이 뚝 떨어지면서 서리(霜)가 내리기(降) 시작한다.

옛 사람들은 상강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①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고, ② 초목이 누렇게 되며, ③ 동면(冬眠)하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서서히 겨울잠에 들어갈 동물들은 동면을 준비한다.

봄부터의 바빴던 농사일도 추수의 가을걷이가 마무리되면서 상강 때쯤이면 거의 끝이 난다. 다음해 농사에 대비하는 잔손질만이 남았다.

<농가월령가.도 9월령에서는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침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행사들이 농사 기술 개량으로 인해 모두 한 절기 정도 빨라지고 있다.


*겨울*

19. 입동(立冬 / 11월 7,8일)

24절기의 열 아홉 번째, 음력으로 10월 절기, 양력 11월 7일, 8일 께이며,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이 225도일 때.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옛사람들은 입동기간을 5일씩 3후(候)를 정하여, ① 물이 비로소 얼고, ②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③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채비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장 - 무수히 쌓인 낙엽 위에 서리가 내려 쉬고 찬바람이 옷깃을 올려준다. 입동엔 벌써 겨울채비가 한창이다. 입동 전후해서 김장을 담근다.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옛날에는 우물가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배추 씻는 풍결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덤을 친다.

경남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가마귀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 말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고사 - 이 시기에 고사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터줏간지, 씨나락섬이나 외양간에도 고사 지낸후,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한해의 노고와 집안의 무사하였음을 감사드리며 이웃과의 일체감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치계미(雉鷄米) - 또한 옛날 향약(鄕約을 보면 춘추(春秋)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돼 있었다. 비단 논 한 뙈기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응분의 출연(出捐)을 했다.  


20. 소설(小雪 / 11월 22,23일)

24절기의 스무 번째. 음력으로는 10월 중기, 양력으로는 11월 22일, 23일 께이다. 입동과 대설(大雪) 사이에 드는데 태양의 황경(黃經)은 240도가 된다. 이로부터 차츰 겨울이라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서 눈(雪)이 내린다.

이 시기에는 첫겨울의 증후(症候)가 보이는데, 옛사람은 이 기간을 5일씩 3후(三侯)로 구분하여, ①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②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③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살얼음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제법 춥지만 그래도 낮엔 아직 따뜻하여 아늑하기도 해서 소춘(小春)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데 이날은 손돌(孫乭)이 죽던 날이라 하고, 이때의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고 배를 바다에 띄우지 않는다.

손돌(孫乭)의 전설 - 고려 때 전란이 일어나 왕이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가게 되었는데, 배가 통진(通津)·강화 사이(후에 손돌목이라 하였다)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일어 위험하게 되었다. 뱃사공 손돌이 왕에게 일단 안전한 곳에 쉬었다가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왕은 파천하는 처지라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터에 그런 말을 고하므로 그를 반역죄로 몰아 참살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 뱃길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싣고 가던 왕의 말을 목베어 죽은 손돌의 넋을 제사하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에 도착하였다 한다.

그 뒤 매년 이 날이 되면 날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인다고 하는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 바람(손돌풍, 손석풍(孫石風))이라고 한다. 


21. 대설(大雪 / 12월 7일)

24절기의 스물 한 번째. 음력으로는 10월 중,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이다. 태양이 대략 황경(黃經) 255도에 도달하며, 소설과 동지 가운데에 있는 절기이다.

눈(雪)이 많이(大) 내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상(氣象)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도 이 시기에 반드시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옛 사람들은 대설 기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눴는데, ① 제1후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②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③ 여지(枝)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이라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고 본다.
 이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고 한다


22. 동지(冬至 / 12월 22,23일)

24절기의 스물 두 번 째, 음력으로는 11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冬至線 : 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 도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대설의 다음이며 소한의 앞이다.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

가장 긴 밤 - 태양이 남회귀선, 적도 이남 23.5도인 동지선에 도달한 시절로 밤이 제일 길다. 반대로 남반부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다.

태양의 부활과 크리스마스 -  그러나 이로부터 태양은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옛날에는 이를 태양이 복원(復元)한다 하여 동짓날을 축일로 삼았으며, 특히 태양신을 숭상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동지, 12월 25일 <태양탄생일>로 정해서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였으며,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 25일은 동지(冬至)날이었고 유럽이나 중근동 지방에서는 이 동지날이 설날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은 신약성서에 명기돼 있지 않으며 그 옛날에는 1월 6일로 성탄일을 삼기도 하고 3월 21일을 성탄일로 잡기도 했다. 로마 교황청이 성탄일을 이 동지설날로 통일시킨 것은 4세기 중엽이다. 그래서 옛 설날 풍습이 성탄 풍습으로 혼합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작은 설, 동지 -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할만큼 11월은 동지가 대표한다. 옛날엔 동지를 설이라 했는데 이는 태양의 부활과 새로운 시작의 의미이다. 설날이 바뀌면서 '작은 설', 다음해가 되는 날의 의미로 '아세(亞歲)'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축귀(逐鬼)와 팥죽 - 동짓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팥죽을 쑨다. 팥죽은 팥을 후루루 삶아 첫물을 버리고 새물을 부어 삶아야 쓴 맛이 없다. 푹 삶은 팥을 굵은 체에 걸러서 오래도록 달이다가 쌀을 넣고 잘 퍼졌을 때 새알심[옹시래미라도도 함]을 넣는다. 새알심은 찹쌀 가루를 익반죽하여 작은 새알 만한 크기로 동글동글 빚어 둔다. 소금 간을 하여 그릇에 담고 식성에 따라 꿀로 단 맛을 더한다. 이렇게 쑨 팥죽을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다음에 방과 마루 부엌과 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팥죽의 붉은 색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음귀(陰鬼))을 쫓는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런 연후에야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다. 먹음으로써 마음속의 사악함도 깨끗이 없애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옹시래미(새알심) - 자기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었다고도 한다. 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였고 새알심 속에 땅콩이나 아주 작은 동전을 넣어 그것을 씹는 아이에게 따로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가난하고 추운 어린 시절에 그래도 참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는 시절이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신(疫神, 전염병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여겼으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절에서도 죽을 쑤어 대중들에게 공양(供養)한다.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마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어쩌면 붉은 색의 연지·곤지, 입술루즈, 봉선화 매니큐어 등의 화장은 아름답게 꾸미기 위함 보다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견강부회일까마는 성탄전야 산타클로스는 붉은 색(양(陽))의 옷을 입고 불(양(陽))을 지피는 부엌 아궁이로 들어온다. 성탄절 = 동지날 = 설날 = 태양의 부활이라는 등식에서 나온 풍속이고 보면 설날 풍속이 동서양이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동지가 초승(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다 한다. 팥죽이든 시루떡이든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이면 그 맛이 더욱 일품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속담에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속담에 '동지 때 개딸기'란 말도 있다. 이말은 추운 동지 때에 개딸기가 있을 리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이다.
동지받이 - 동짓달 보름쯤에 함경도 앞 바다에 몰려드는 명태의 떼, 볼이 묽고 등이 넓고 알배기가 많다. 평안도 함경도에서는 메밀국수로 냉면을 하여 먹고, 청어를 종묘에 천신하였다고 한다.
하선동력(夏扇冬曆) - 옛날 왕실에서는 동짓날에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다.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청장력·백력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생강· 정향(丁香)·후추·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귤 - 또한 제주목사는 동지 무렵이 되면 특산물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상감은 멀리 섬사람에게 그 공로를 위로하는 선물을 하사하였으며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동지부적 -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고 여겼으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또 동지사(冬至使)라는 외교 사절을 파견하였다.

동지헌말 -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진다. 시할머니나 시어머니 시누이 시고모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기 위함이다.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 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는 뜻이라 했는데 그것은 미화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3. 소한(小寒 / 1월 5,6일)

24절기 중 스물셋째. 음력으로는 12월절(十二月節), 양력으로는 1월 5일, 6일 경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285도일 때이며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면서 한겨울의 추위가 매섭게 찾아든다.

옛사람들은 소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기러기가 북(北)으로 돌아가고, ②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③ 꿩이 운다라고 하였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운 것 같으나 실은 소한(小寒) 때가 우리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춥다. 그래서 속담에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춥다. 그러나 추위를 이겨냄으로써 어떤 역경도 감내하고자 했던 까닭으로 '소한(小寒)의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고 했다.


24. 대한(大寒 / 1월 20,21일)

24절기의 마지막. 음력으로는 12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소한(小寒) 15일 후부터 입춘(立春) 전까지의 절기로, 1월 20일, 21일 께이다. 태양의 황경은 300도가 된다. 음력 섣달로 매듭 짓는 절후.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에 이를수록 추워지며 1월 15일 경 대한에 가까워지면서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대한이 지나면서 추위는 수그러들기 시작하여 속담에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는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할만큼 푸근한 것이 보통이다.

절분(節分) -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해넘이 -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

집안 손질 -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新舊)간에 하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이때의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간(1월 25일∼2월 1일)의 보통 1주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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