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마산항"
무학산 말바위에 전설이 자고,
장군내 돌개천에 가재가 놀던,
내고향 마산항아 몇해 만이냐,
물장난 하던 시절 물장난 하던 시절 그리워 져라.
제비산 잔디위에 민들레 피고,
서원골 빨래터에 버들이 푸른,
내고향 마산항은 삼월이 건만,
한번간 님소식은 한번간 님소식은 꿈길이드냐.
돝섬에 닻을 놓고 나란히 앉아,
낚시질 하던 시절 그리워져라.
부산뱃 고동 묻고 떠난 부두에,
무심한 갈매기만 무심한 갈매기만 목이 쉬었소.
http://blog.naver.com/haneuigu/221159909778
"내고향 마산항"
노래 가사에 나오는 추억의 현장을 찿아 흘러간 세월의 뒤안길을 뒤돌아 본다.
▲ 1절에 나오는 말바위를 먼저 찾아보기로 한다. 서원곡 입구 주차장에서 차도를
따라 올라가면, 도솔암 이정표와 최치원의 길 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나고
도솔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최치원 길은 무학산 둘레길과 겹쳐진다.
▲ 너른마당 안부에 올라 무학산 정상 방향으로 가파르게 오르면 학봉에 서게 된다.
▲ 신라시대 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의 "흥에 겨워" 시구절을 읽어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 최치원의 길과 무학산 둘레길을 벗어나 학봉까지 0.8Km 남았다.
▲ 조선 후기 문인 김시겸이 지은 고운대 시.
지금의 학봉이 고운대이다. 고운은 최치원의 호이다.
▲ 무학산의 학봉. 무학산의 산세는 학이 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해발 397m인 학봉은 학의 정수리인 머리에 해당한다. 일명 부엉산이라고도
불린다.
학봉이 고운대이다. 최치원이 이곳에서 마산항을 바라보며 수학하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수난의 현장이기도 한다. 일제는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전국의
주요 산 정상에 쇠말뚝(철심)을 박았다.
1990년대 쇠말뚝 뽑기 운동이 벌여졌는데 그때 마산의 지역 산악회에서
세군데에 박혀있는 철심을 뽑은 후 그자리에 세멘트로 표시를 해놓았다.
정상 표지석이 있는 자리와 옆으로 두군데에 세멘트 자국이 있다.
▲ 일제에 의해 박혀있던 쇠말뚝을 뽑은 자리. 세멘트를 발라놓은 부분.
▲ 고운대(학봉)에서 바라본 마산항.
▲ 고운대에 대하여.
▲ 학봉에서 바라본 중봉과 말바위.
▲ 학봉에서 십자바위를 지나 안부에 내려서면 완월동 갈림길 이정표가 서있다.
무학산 정상 방향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 중봉을 지나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르면 무학산. 학봉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발바위는 무곡탑약수터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발바위를 찾으려면
무학산 정상에서 학봉 방향으로 하산 하다가 만나는 무곡탑약수터 방향
이정표에서 말바위를 찾는게 쉽다. 말바위를 지나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면 무학산 둘레길을 만나고, 이어서 보타사 방향으로 내려가면 대로를
만난다. 완월동에서 말바위를 찾을려면 안내표시판도 없고 초입 찾기가 어렵다.
▲ 말바위.
무학산 말바위에 전설이 자고...
무학산 아래에 장군이 살았다는 장군동이 지금도 있다.
성이 장씨인 "장 장군묘"가 장군동에 잘 보존되어 있다. 어느날 명마를 가진
장군이 명마를 시험하기 위해 지금의 말바위에서 돝섬을 향해 말과 화살이
누가 빠른지 경주를 시켰다. 돝섬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말이 도착하였다.
장군은 화살은 보이지 않고 말이 도착하자 말이 화살보다 늦게 도착한 줄 알고,
명마가 아니라며 말의 목을 벤다.
말의 목을 베고 나니 그때 화살이 말의 엉덩이에 꽂혔다. 화살 보다 빨리온
말을 죽였으니 크게 후회하고 지금의 말바위 아래에 묻었다.
그 후 말이 묻힌 이 바위를 말바위라 불린다.
▲ 말바위 위치
▲ 말바위에서 바라본 돝섬과 장군묘. 장군묘는 빌딩 숲에 가려 그 위치만
짐작할 뿐 보이지 않는다.
말바위의 전설이 태어난 시대에는 장군묘가 보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 말바위에서 바라본 고운대, 십자바위, 중봉의 모습
▲ 장 장군묘.
▲ 장군동의 유래.
▲ 서성동 3.15의거 기념탑 부근에서 바라본 고운대(학봉)와 말바위.
▲ 장군내 돌개천에 가재가 놀던....
완월동을 가로질러 마산만으로 흐르는 장군천. 어릴때는 이곳에서 가재 잡고
개구리 올챙이 잡던 그 시절이 그리워 진다.
세월의 흐름속에 옛모습의 계곡은 찾을 수 없다.
▲ 장군천(완월계곡).
▲ 복개된 장군천. 복개되고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이곳에서 캠핑을 하기도 했다.
추억속의 그때 그 모습이 도로 위에 겹쳐진다.
▲ 제비산 잔디위에 민들레 피고.....
용마산에서 바라본 제비산의 모습. 멀리 무학산을 등지고 있다.
무학산에서 뻗어내려온 산줄기가 회원천에서 꼬리를 내리며 조그만 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의 제비산에는 고지대의 동네가 형성되어 있어 옛모습은 찾을 수 없다.
▲ 제비산 전망대.
▲ 제비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산 앞바다.
도시의 숲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빌딩이 들어서기전에는 이곳에서 마산의 문인 시인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활동한 무대이기도 하다.
가곡 "가고파", "옛 동산에 올라" 등이 마산만과 제비산의 배경이다.
▲ 서원골 빨래터에 버들이 푸른.....
자연 암반을 이용한 서원골 빨래터. 버들은 없고 수백년 된 은행나무가
옛 아낙네들의 빨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빨래터를 지키고 있다.
▲ 서원골 빨래터. 자연 암반의 빨래터는 옛 모습 그대로이다.
▲ 서원골 입구 빨래터 옆에는 관해정이라는 서원이 있다.
굽어 꺽여 흐르는 물에 잔 띄워 시를 지어 읊조렸던 곳.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관해정에 대하여.
▲ 수령 약440년인 은행나무가 서원골 빨래터,
관해정과 함께 무학산을 오가는 길손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
▲ 돝섬에 닻을 놓고 나란히 앉아, 낚시질 하던 시절 그리워져라...
19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마산 앞바다에 돛단배가 고기잡이를 하였다.
돛단배 혹은 통통배로 돝섬에 와서 낚시를 하던 그 시절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지금은 낚시를 할 수도 없고 해안으로 내려갈 수 없다. 둘레길이 조성된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신포동 선착장에서 돝섬까지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돝섬의 전설:
1.옛날 가락국왕이 총해하던 후궁 미희가 어느날 궁중을 떠나 골포(마산의 옛 이름)
앞바다를 배회하자, 신하들이 미희에게 환궁을 재촉한다. 그녀는 돌연 금돼지로
변해 무학산으로 사라졌다. 그 후 맹수로 변한 금돼지가 백성을 해치고 다니자
임금이 군사를 동원해 금돼지를 쫓았다. 군사들에 포위된 금돼지는 한줄기 빛이
되어 섬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 후 돼지가 누운 모습의 이 섬을 돝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돝"은 돼지의 옛 말이다.
2.돝섬에서 밤마다 돼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이상한 빛이 나자 월영대에서 수학하고
있던 최치원이 활을 쏘아 괴소리를 잠재우고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 부산뱃 고동 묻고 떠난 부두에 무심한 갈매기만....
부산, 통영, 삼천포, 거제의 기항지 였던 마산항 중앙부두 옆 여객선 터미널
자리. 해양신도시 건설로 인해 신포동 선착장에서 톹섬까지 유람선만 다닌다.
육로 교통이 발달 되기전 이곳에서 민초들의 애환과 삶의 모습이 간직된
곳이기도 하다. 선착장은 없어지고 등대 모습 탑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산배 고동소리는 추억의 저편으로....
'[고향 마산자랑 과 나] > 내고향 마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산 반공포로수용소 터 (0) | 2018.08.04 |
---|---|
마산 장군시장 철거전의 모습과 완월경남맨션 부지의 옛 대학 모습들... (0) | 2018.05.12 |
마산지역에 분포 되어있는 비지정 문화재 (0) | 2018.05.05 |
마산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지정 문화재 (0) | 2018.05.05 |
제17회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 (0) | 2017.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