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명소! 경천대(擎天臺)
지난 2014년 8월10일, 일요일 오전 7시30분에 경북 상주시 경천대 국민관광지로 출발하였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칠원앞을 지날때부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남성주휴게소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그런덕분으로 시원함속에 시작된 경천대 둘레길 산행은 무사히 마치고 오후 3시 조금 넘어서
뒷풀이 할때도 갑자기 소나기가 조금 뿌렸다.
오늘 우리가 산행한 경천대 국민관광지는 낙동강 1300리 물길중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이름나있다.
경천대 국민관광지의 소재지 주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산12-3번지이며,
면적은 209,000㎡(63,223평)이고, 1989년 4월 3일 개장하였다.
영남의 상징이자 젖줄인 낙동강이 감싸 안은 “삼백의 고장” 상주는 성읍국가시대부터 사벌국,
고령가야국의 부족국가가 번성하였으며, 신라시대에는 전국 9주, 고려시대에는 전국 8목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관찰사가 상주목사를 겸하는등 웅주거목의 고도로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
또한 누란의 위급한 국난을 극복할 때에도 충과 효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앞세운 수많은 충신과 지사가 있어
자랑스러운 역사의 맥을 이어왔다.
낙동강변에 위치한 경천대는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300여리 물길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 온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일명 자천대(自天臺)로 불리는 경천대와
낙동강물을 마시고 하늘로 솟구치는 학을 떠올리게 하는 천주봉,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울창한 노송숲과 전망대, 조선 인조15년(1637) 당대의 석학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무우정과 경천대비, 임란의 명장 정기룡장군의 용마전설과 말먹이통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명승지와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경천대 관광지내에는 전망대, 야영장,목교,출렁다리, MBC드라마 상도”세트장, 어린이 놀이시설, 수영장,
눈썰매장 및 식당, 매점 등이 갖추어져 있고, 소나무 숲속의 아담한 돌담길과 108기의 돌탑이
만들어진 산책로와 맨발체험장 및 황토길이 있으며,인근에는 “전 사벌왕릉”과 “전 고령 가야왕릉”,
“화달리 3층석탑”,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룡장군의 유적지인 “충의사”, “도남서원”등 여러 문화유적지가 있다.
그리고 상주활공장, “MBC드라마 상도”세트장(중동), 상주예술촌 등이 있어 가족과 함께 편안한 휴식과
관광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돌탑과 황토길) 곽광받고 있다.
남성주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경천대 입구인 관리사무소 앞 경천대 국민관광지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경천대 전망대 가는길~~~ 맨발 체험장을 거처 걷는 길 참으로 인상적인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경천대 전망대...
경천대 전망대 앞에 도착을 하여 맨 먼저 낙동강의 위엄을 보면서
이 기름진 옥토가 삶의 터전의 젓줄인듯 함을 가슴깊이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 옥토가 결실의 열매를 맺어 가을의 황금빛 물결로 변할때의 모습은 더욱 장관일것입니다...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은 말이 없고...
돌탑들을 양쪽으로 구경하면서...
전망대에 오르자 제일 먼저 돌탑들이 우리들을 반긴다.
이 돌탑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스며 있을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사벌국 옛땅에 자리한 경천대는 하늘이 지은 절경이라 자천대로 일컬어졌으며,
대(臺) 밑에는 기우제터 우담이 있어 상산의 신성지였다.
우담 채득기(1604~1646) 선생이인조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난 해 무우정을 짓고 은거하였다.
그런 까닭에 숭명사상으로 자천대 정상에다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 여덟자를 새긴
경천대비를 세워 후대에서 자천대를 경천대라 부르게 되었다.
우담 선생은 충절가의 후예로 학문이 뛰어나 빙고별좌에 제수된 징사요, 신묘한 침술로 국난에 특채된
명의였다.
1637년 세자와 대군 등이 청에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잡혀 갈 때 충신한 재학지사로 천거되어 왕자들의
몸을 보호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그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이유로 사양하다가 유배되었다.
1639년 방면되어 재차 부르니 나라 위해 몸을 받칠 결연한 각오로 충신연주지사 '봉산곡(鳳山曲)'
일명 '天臺別曲'을 짓고 섣달에 심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봉림대군(효종)과는 군신 이상의 지기로서 사생을 같이 하여 망국민의 굴욕과 울분,
복수 일념의 충분의기를 시로 주고받아 한국 시사에 희귀한 시첩 '군신언지록'도 남기었다.
1645년 환국 후 봉림대군의 만류에도 굳이 경천대로 돌아왔음은 초지일관하려는 신하의 뜻이었고,
충신의 사는 곳이라마 보고 싶어 화사를 보내어 자천동 28경을 그려 갔음은 임금의 뜻 둠이었다.
실로 경천대야말로 지사의 은거지로서 그 입구에 선생의 손 ?가 묻은 소연분, 관분(세수대야),
약분이 고스란히 남은 유적지요, 가사문학의 산실이며 충신의 입절지요,
효종의 은택지로서 자연과 인문이 조화의 극치를 이룬 낙동제일경, 상주시의 국민관광지이다.
경천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모습...
무우정(舞雩亭)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인조14년(1636) 병자호란을 예견하고 숭명의 의리를 지켜 은거하여 자연에 귀의하러
지은 정자이다.
무우란 춤을 추며 빈다는 뜻이요, 정자도 기우제터 우담위에 세워졌으나, 선생은 자연을 벗삼아 도를
즐긴다는 풍도영귀의 뜻을 취하여 그 이름을 삼았노라 밝히었다.
무우정은 국난에 목숨바쳐 신하의 도리를 다하리라 맹세한 충신연주지시 '봉산곡'의 산실이요, 청의 볼모가
된 소현세자, 봉림대군의 주치의로 특채된 재학지사로서 망국의 한을 품은 왕자들과 7년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충신 우담선생이 천추에 고절을 세운 유서깊은 현장이다.
그러기에 청음 김상용, 택당 이식, 계당 유주목 등이 기문을 지어 강산이 절사를 만나 그 무게를 더하였다
기리었거니와 후대에는 경천대 무우정이 낙강시회의 중심이 되어 문향 상주를 전국에 알리는 종루가
되기도 하였다. 무우정은 옛것을 지켜 새 것을 창출하려는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1748년에는 상주목사
이협이 중건하였고, 1948년과 2005년의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먼 훗날에도 상산 낙수를 거느리고
늘 여기 지켜 섰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우담선생이 쓴 '경천대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명천지승전일월'이라고 씌어져 있다.
영화 세트장이 고풍스럽게 자라잡고 있다. 이곳에서 인기 드라마 '상도'를 촬영했다고 한다.
목교 건너 갈림길로 되돌아 나가 통나무 계단길을 오르면 길이 40m로서 나무발판과 쇠줄로 구성된
출렁다리가 있다.
정기룡 장군 동상과 높이 8m, 폭 24m로 자연석을 쌓아올린 인공폭포가 있는 경천대 관광코스 출발지점...
자전거도로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우측 아래로 놀이시설, 눈썰매장, 수영장등 위락시설이 자리를 하고
있고. 고갯마루에 오르면 우측으로 경천대유래비가 있고, 좌측으로는 산책로 계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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