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국토 최남단 해남_ ‘미황사’ 땅끝에 오른 봄 산사 고요 깨다 | ||||||||||||||||||||||||||||||||||||||||||||||||||||||||||||||||||||||||||||||||||||||||||||||||||||||||||||||||||||||||||||||||||||||||||||||||||||||||||||||||||||||||||||||||||||||||||||||||||||||||||||||||||||||||||||||||||||||||||||||||||||||||||||||||||||||||||||||||||||||||||||||||||||||||||||||||||||||||||||||||||||||||||||||||||||||||||||||||||||||||||||||||||||||||||||
스포츠칸 | ||||||||||||||||||||||||||||||||||||||||||||||||||||||||||||||||||||||||||||||||||||||||||||||||||||||||||||||||||||||||||||||||||||||||||||||||||||||||||||||||||||||||||||||||||||||||||||||||||||||||||||||||||||||||||||||||||||||||||||||||||||||||||||||||||||||||||||||||||||||||||||||||||||||||||||||||||||||||||||||||||||||||||||||||||||||||||||||||||||||||||||||||||||||||||||
미황사(美黃寺)는 섬을 제외한 국토 최남단 사찰이다. 유채꽃이 만발한 제주도의 봄 향기가 뭍에 첫발을 내딛는 전남 해남에 있다. 이른 봄에 피는 개나리·민들레는 아직 볼 수 없지만 사찰에는 이미 봄기운이 가득하다. 동백나무 가지마다 햇살에 못 이긴 봉오리가 하나둘씩 꽃망울을 터뜨렸다. 대웅전 앞마당 수선화도 새하얀 속살을 수줍게 내밀며 ‘어서 오라’ 손짓한다. 봄꽃이 잎을 여는 ‘춘삼월’. 범종과 예불소리 아련한 경내는 봄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풍경소리 고즈넉한 산사에서 다도해를 바라보며 봄을 맞을 만하다.
미황사는 암릉으로 솟은 달마산(해발 489) 자락에 터를 잡았다. 13번 국도 닭골재에 이른 소백산맥은 산릉을 넘어서자 암릉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 암릉은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까지 그 기세를 사그라뜨리지 않고 땅끝마을 사자봉(155)에서 갈무리한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른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 의조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절집을 삥 둘러 동백나무와 가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온갖 새소리로 가득한 숲은 푸르고 울창하다.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하는 창건설화가 재밌다. 1692년(숙종 18)에 건립된 ‘미황사사적비’에 기록된 설화는 사찰 사무장이나 스님을 붙잡고 귀동냥으로 들어볼 만하다. 천년고찰의 내력에 걸맞지 않게 미황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한문학당과 산사음악회, 1년 365일 개방된 템플스테이 등이 외지인을 불러 모으는데 ‘공로’가 컸다. 이 모두 주지인 금강 스님의 ‘미황사 사랑’ 덕이다. 과거 퇴락했던 시골의 한 사찰을 ‘전국 제1의 템플스테이 사찰’로 만든 장본인이다. 주차장에서 누각을 지나 마당에 오르면 달마산 기암괴석과 대웅보전(보물 제947호)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어우러진 법당 풍경이 기막히다. 일반인의 눈에도 ‘명당’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롭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대웅보전의 단아한 자태는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달마산의 기세에 결코 기죽지 않을 만큼 당당하다. 정면 가운데 기둥 위에 조각해 놓은 용의 머리도 인상적이다. 200여년 전 연담 유일 스님이 예언한 대로 1000불의 출연을 염원하며 벽화를 그리고 있는 법당 내부는 현재 보수 중. 느티나무로 만든 대웅전 기둥이 번듯하다. 그 기둥을 받친 주춧돌에 게와 거북을 조각해 놓은 것이 이채롭다. 바닷길을 통해 불법이 전파된 창건설화 때문이다. 대웅보전에서 석축을 따라 올라가면 응진당을 만난다. 부처의 제자 중 아라한과를 얻은 뛰어난 제자들을 모신 응진당은 보물 제1183호다. 내부 벽면에 수묵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는 유려한 선맛이 선필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른 봄볕을 맞으며 마당을 거닐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봄을 맞은 사찰에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한 스님에게 묻자 “스님들은 봄이면 ‘개구리’처럼 밖으로 튀어나온다”며 “동안거 동안 ‘백수’처럼 지낸 것이 미안스러워 너도나도 할일을 찾는다”고 말했다.
스님의 표현이 우습다. 동안거가 끝난 지 2주. 경내는 겨울의 잔재를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금강 스님도 행사 참석차 대구에 갔다고 하니 봄은 봄인가 보다. 미황사는 일반인과 신도는 물론 타 사찰 스님도 찾는 이가 적지 않다. 이곳에 객으로 왔다는 한 스님은 “부처의 진리를 깨닫는데 장소가 따로 없다”며 “주지 스님의 덕망에 머리가 숙여지고 달마산과 어우러진 미황사 풍광에 고개가 내려지질 않는다”고 말했다. 산사의 봄은 대웅전 마당에만 머물지 않는다. 마당 한쪽 자그마한 차밭과 가시나무숲, 텃밭에도 봄빛이 완연하다. 세심당을 지나 남쪽 동백나무숲 오솔길을 따라 500m 거리의 부도전 가는 길도 정겹다. 옛 통교사 터에 자리한 부도전에는 대흥사 12종사인 벽하·설봉 스님 등의 탑비 5기와 21기의 부도가 있고, 여기서 다시 서쪽으로 100m 거리에도 6기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이 모두 300여년 전부터 세워진 것이다.
미황사는 절집 풍광도 수려하지만 발아래 펼쳐진 다도해를 조망하는 맛이 일품. 특히 남해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장관이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응진당과 만하당이 관람 포인트. 매월당 김시습이 낙산사의 일출과 미황사의 일몰 풍경을 최고로 꼽았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찾아가는 길:서울→서해안고속국도로→목포IC→2번 국도 강진방향→성전→13번 국도 해남→월송리→달마산 미황사 ▲특산품&맛집:땅끝맛김, 황토고구마, 땅끝햇살, 참다래, 녹산주 등/땅끝마을에 자리한 땅끝동산회관(061-532-3004)에서는 매생이국과 석화(생굴)비빔밥이 맛있고 ‘돼지갈비 묵은지 해물탕’을 별미로 즐길 수 있다. 이외에 용궁해물탕(061-535-5161)과 진일관(061-532-9932), 전주식당(061-532-7696), 태양정식당(061-535-4751) 등이 유명하다. ▲주변 볼거리:땅끝관광지, 고산유적지, 두륜산 대흥사, 우수영관광지(명량대첩지), 고산 윤선도 유적지, 우항리공룡화석지, 고천암호 철새도래지, 해양자연사박물관, ‘허준’ 촬영지 등 ▲템플스테이:15~22일까지 ‘참 나를 찾아가는 7박8일간의 참선집중수행-참사람의 향기’를 진행한다. 매일 6시간씩 참선수행을 하고 묵언, 오후불식, 간화선 수행서인 ‘육조단경’과 ‘좌선의’ 강의, 수행문답, 다도 등을 경험할 수 있다.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정기행사로 30명 선착순 모집한다. 매월 정기행사 외에도 1년 365일 템플스테이를 신청할 수 있다. (061)533-3521 ▲숙박:가학산자연휴양림(061-535-4812), 해남유스호스텔(061-533-0170), 해남관광호텔(061-533-1222), 땅끝해남테마파크관광호텔(061-535-1000), 땅끝마을하얀집(061-534-3223), 케이프타운(061-535-8555) 등 ▲문의: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228 해남 | 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 옮김|서라벌_080305
미황사 [美黃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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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松旨面) 서정리(西亭里) 미황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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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라벌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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