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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시대의 중년은 "무엇으로 사는 가"

현정 (炫貞) 2007. 4. 27. 21:12
중년의 서글픈 단상 / 문경찬

 

     
    어제는 어스름한 허거름 무렵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보니
    한 겨울에도 보기 드물었던 소담스런 눈송이가
    어두워져가는 빌딩 숲을 하얗게 덮어가더이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습관처럼 깊은 상념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58년 개띠...
    베이붐 세대의 대표주자로 일컬음을 받으면서
    선배들처럼 보릿고개의 배고픈
    설움을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는게 누구나 할 것없이 
    그리 넉넉하지도 못했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밥상 머리에서는 늘 먹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면서 자라온 세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미국에서 원조로 나온 
    멀건 옥수수 죽과 빵을 급식으로 먹고
    회초리 맞아가며 국민교육헌장과 
    월남 파병장병을 위한 군가를 배워야 했던 세대.
    선배에 대한 깍듯한 복종과 존경심을 배웠고
    후배들에 대해선 배려와 양보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겨왔던 세대.
    장래의 진로의 보증수표라도 되는 양
    죽을 둥, 살 둥 모르게 배워뒀던 
    주산의 공인 단증은 
    컴퓨터에 밀려 무용지물이 돼버려 
    꼭 누군가에게 사기당한 느낌이 들기도 했던 세대.
    현장에서 일을 하려고 보니 
    학교에서는 듣도 보지도 못했던 컴퓨터라는 
    괴물이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위, 아래로 채이며 한동안을 어리버리 해야했던 세대
    하면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며...
    무식하게 다그치며 몰아 치던 군사문화의 산물을 
    절대적인 삶의 지표로 알고 살아온 세대.
    그렇게
    숨가쁘게 변화하는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이제야 겨우 어지럼증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후준비를 하랍디다.
    선배들은 자식들이 챙겨줬고
    후배들은 나라에서 챙겨줄텐데.
    억울하게도 하필이면 우리들만.
    이제껏 내 입에 넣었던 것도 
    아까워 삼키지 못하고 뱉어 먹이듯 
    애지중지 길러온 자식들에게선 
    늙으면 무엇이든 바래서도 안되고 
    더 바랄 것도 없으니
    내 손으로 노후준비를 해야 
    서럽고 처량한 노년를 보내지 않을거라며 
    자꾸만 여기 저기서 다그칩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지금도 먹고 사는 것만도 바쁜데
    노후준비는 무슨 말라빠진 노후 준비...
    부모가 부모다우려면
    자식 낳아 남들처럼 잘 가르치고
    결혼시켜 내보낼 때는
    작은 집 한칸이라도 그도 못하면
    전셋 집이라도 마련해 줘야 하는데...
    지금 형편이 말처럼 그리 쉽게 되느냐며
    친구와 나누던 자조 섞인 그 넉두리가 
    자꾸만 가시처럼 가슴에 박혀
    뜻 모를 설움같은 것이 칼 바람처럼 몰아 칩디다.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한게 있어야 말이지...
    그게 어디 무엇하나 가볍게 되주는게 있습디까?
    겨우 허리 좀 펴고 살만하니
    직장에서는 사오정이라는 이상한 말을 앞세워 
    명퇴를 강요 당해야 했고 
    살려고 사업이라고 시작하면 
    사양산업이라며 또 내리막 길 타고...
    지금처럼 생고생 안하고 
    그 돈 땅에다 묻어 뒀더라면 
    지금 내 팔자는 오유월 엿가락처럼 쭉 늘어졌을텐데...
    허기야 평생 일만 하며 등꼴 빼먹고 살라는 팔자는 
    애초부터 따로 있습디다.
    요즘같이 땅 짚고 헤엄치듯 쉽게 돈버는 
    땅 장사,집 장사는 또 아무나 한답디까?
    큰맘 먹고 따라 해봤더니만 또 맨 땅에 헤딩이지.
    그렇게 늘어진 어깨 추스리며
    눈오는 창가에 서서 밤거리를 내다 보다가
    불현듯 서있는 내 자리가 
    무섭다는 생각까지 듭디다.
    이제 나도 머지않아 
    가운데 자리를 비켜가며
    한 발...
    또  한 발...
    그렇게 물러서는 연습을 
    조금씩 조금씩 
    해야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출처 : 불교호스피스연합
    글쓴이 : 고든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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