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예의 상식]/관혼상제 지식

상례범절(喪禮凡節)

현정 (炫貞) 2008. 2. 6. 22:08

상례범절(喪禮凡節)


상례범절1 / 상례범절2

상례범절(喪禮凡節).1

◈ 상례는(喪禮) 슬프고도 엄숙한 의식(儀式)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가 일생 동안 함께 살아 오던 친인척 및 친지등 모든 반려자와 영원한 작별을 고하게 되는 것이므로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이 슬픈 심정을 질서 있게 표현하면서 마지막 이별을 엄숙하고 절차있게 행하는 것이 곧 상례(喪禮)다. 예문(禮文)에 예를 다하여 장사 지내라는 말은 곧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예라는 것은 알맞아야 한다. 너무 소홀 해도 안되고 너무 지나쳐도 예가 되지 못한다.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말이 있다. 그 때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예절을 차려야 한다.그러나 종래의 우리나라 상례 의식은 번잡하고 형식에만 치우쳐서 실행이 매우 어려웠을 뿐만아니라 그로 인해 경비도 막대 하여서 그 폐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그리고 그 번잡하고 형식에 치우친 의식 절치는 그것을 연구하지 않은 사람으로써는 그 실행 방법과 절차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상례의식을 잘 아는 전문가를 불러서 일일이 지시를 받아가면서 상주는 피동적인 역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도 달라졌으므로 상례 절차도 우리의 생활 감정과 일치가 되도록 치루어 져야 할 것이다.우리의 생활 감정과 동떨어진 번잡하고 허식화된 상례의식은 타파해야 되겠다.

◈ 임종(臨終)은 침착하게


임종은 부모 형제 또는 가까운 친척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 자리를 지켜보는 것을 말한다.대개 임종이 가까워 오면 근친 혈족들은 이성을 잃고 당황하기 쉬우나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엄숙한 순간을 지켜 보아야 한다.

병자가 위독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다음 일을 진행한다.

1.병자에게 꼭 물어 둘 일이 있으면 내용을 간추려 병자가 대답하기 쉽게 묻고 대답을 기록한다.

2.가족은 속히 직계존비속 밑 특별한 친지에게 기별하고 병실에 모여 병자의 마지막 운명을 지킨다. 다만 어린이의 병실 출입은 삼가해야 한다.

3.병자에게 물어서 대답을 들은 사항이나 병자 자신이 가족에게 전할 말은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만 병자가 운명한 후에 복잡한 초상을 치르더라도 잊지 않게 되며 뒷날에 그 말을 참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언은 가족적인 것으로 민법에서 규정한 법율상의 유언과는 다른 것이다. 민법상에 규정된 유언의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민법 조문에 명시한대로 요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시에 듣는 유언은 법률상의 효력은 갖지 못하는 것이다. 병자가 운명할 때가 가까와지면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지켜 보기 위해 온 가족과 가까운 친척이 병실에 모이나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병실의 출입을 못하게 하여 병자의 운명을 목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충격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 수시 를 하려면


운명을 하게 되면 가족들은 자연 돌아가신 이의 시신을 붙들고 울게 된다. 미리 친척이나 친지 가운데 초종(初終) 범절에 익숙한 분을 청하여 운명한 뒤의 수시를 부탁한다.그러면 그분은 가족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 돌아간 이의 수족이 굳기 전에 수시를 하게 된다. 수시에 대한 가정의례준칙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병자가 운명하면 지채 없이 다음과같이 수시한다.

1.깨끗한 백지나 햇솜으로 코와 귀를 막는다.

2.눈을 감기고 입을 다물게 한 뒤 머리를 높게 하여 괴고 손발을 바로 잡는다

3.나무판 위에 시체를 눕히고 홋 이불로 덮은 뒤에 병풍이나 가리개로 가리고 그 앞에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촛불을 밝히며 향을 피운다.

◈ 초혼(招魂)은 필요 없는 미신


초혼은 俗語(속어) 이며 예문에는 復(복) 이라고 하는 것이다.

운명을 하면 고인이 입었던 웃옷 저고리를 들고 지붕에 올라가서 공중을 향하여(아무개 復(복)) 하고 그의 주소 성명 관명 등을 붙쳐 3번 복을 부른다. 그 뒤 다시 저고리를 내려서 시신에 덮어 놓았다가 입관할 때 같이 넣는 것이다. 저고리를 들고지붕 위에 오르는 것은 혼이 항상 높은대로 흩어진다는 뜻 에서 이고 복을 부르는 것은 다시 돌아 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고리를 다시 시신에게 덮는 것은 혼이 다시 몸에 돌아 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지붕에 오르지 않고 다만 뜰에 서서 지붕을 향해서 3번 저고리를 휘저으며 복을 부르나 이것은 일종의 미신인 것이다.

◈ 발상(發喪)


수시가 끝나 시신을 안치하면 곳 발상을 하고 곡을 하게 된다. 발상이라고 함은 사람이 죽어서 초상을 알리고 상례를 시작하는 의식 절차를 말한다.주상(主喪)을 정하고 역복(易服)이라 하여 의복을 갈아 입는 것이 곧 그것이다. 발상 수시가 끝나면 가족은 검소한 옷으로 갈아 입고 근신하며 애도하되 맨발 이나 머리는 풀지 않고 호곡을 삼간다. 수시가 끝나면 더욱더 슬픔이 복받쳐 울음이 나오겠지만 큰소리로 방성대곡하는 것은 도리어 혼란만 일으키게 되어 초상을 치르는데 지장을 초례하기 쉬우므로 울음도 마음속으로 울고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서 초상처리에 임해야 한다. 이렇게 옷을 가라 입는 것을 역복이라 한다.
역복은 모두가 정장을 벗고 머리를 풀고 남자는 두루마기나 검정색 계통의 양복 여자는 흰색 치마 저고리를 입는다. 이때 남자는 두루마기의 한 팔을 빼는데 관습에 따라 아버지 상에는 왼팔을 어머니상에는 바른 팔을 빼고 입는다. 이러한 관습은 상을 당하여 옷도 제대로 못입을 정도로 슬프고 애통하다는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긴머리를 풀었을 경우는 일에지장이 없도록 끈으로 동여 맨다. 역복 후의 곡은 너무 지나치지 않게 부모상에는 아이고 아이고 그외는 모두 의이 의이 로 일관한다.

◈ 상제(喪制)와 주상(主喪)


1.고인의 배우자와 직계 비속은 상제 가된다.

2.주상은 장자가 되고 장자가 없을 경우에는 장손이 승중하여 주상이 된다. 다만 상처한 경우에는 남편이 주상이 된다.

3.고인이 무후한 경우에는 최근친자가 상례를 주재한다.

고인의 배우자와 직계 비속 즉 자녀들이 상제가 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관습으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장자 세습제도와 민법상의 호주상속 및 제사 상속등의 관습을 참작하여 장자에게 상례를 주재하도록 한것이다. 그러나 만약 고인의 맏아들이 이미 부모보다 먼저 죽었을 경우에는 둘째 아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의 상제가 있더라도 성년이 된 장손이 주상이 되는 것이다. 장손의 나이가 어려서 상제 노릇을 할 수없는 처지라면 차자 순으로 주상이 된다. 주부(主婦)는 고인의 아내가 되며 장사를 지내고 제사를 지낼때부터는 큰자부가 주부가 된다.고인의 아버지가 살아있으면 아버지가 주상이되며 아내가 죽었을 경우에는 남편이 주상이 된다. 종래의 장자 위주의 상속제도로 인하여 상례에서 장자가 주장이 되기 때문에 상례 비용 일체도 주상인 장자가 모두 부담하고 차자 이하 형제들은 조금씩 거들거나 심지어는 전혀 거들지 않는 경우가 허다 하다.물론 이러한 원인은 재산상속에 있어서 장자를 지나치게 우선 취급한 탓도 있겠으나 경비는 형제들 간에 형편 에 따라 균등하게 부담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신민법에서는 재산상속 순위를 형제간의 우선 순위를 두지 않고 있다.자손이 없이 죽은 사람은 친척 중에서 제일 가까운 친척되는 사람이 상례를 주재한다. 무후한 사람이 죽으면 친족회의에서 양자 들어 갈 사람을 결정하기도 한다.

◈ 전(奠)은 올리지 않아도 무방하다


예문(禮文)에보면 발상이 끝나면 집사자(執事者)가 포혜(脯醯)와 술로 시상앞에 전을 올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염습(殮襲)=(고인의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염포로 묶는일)이 여러날 걸리면 그때까지 날마다 한번씩 전을 올려야 한다고 되어 있다.이것은 사사여사생(事死如死生)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즉 몸은죽어 돌아가셨으되 생시와 같이 섬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절차를 생략하고 향만 피워도 된다.

◈ 점석 에는 방석을 깔아도 된다


점석은 상제가 앉는 자리를 말한다. 시실앞 마루나 대청에 거적 자리를 펴서 점석을 마련한다. 만약 마루가 좁은 집은 시실 한쪽 옆에 점석을 마련 하고 반드이 시상에 촛불을 켜야한다.

◈ 복인[服人]은 팔촌 이내로 한다.


복인 이라함은 상제 다음으로 고인에 대하여 애도 근신할 사람으로 상복을입는다.

◈ 호상소[護喪所]는 점석 가까운 곳에둔다


집안이나 친지중에서 상례에 관한 범절을 잘아는 사람으로 호상(護喪)을 정하여 상중과 장례 일체를 지휘하게 한다. 예문에 사서(司書)와 사화(司貨)를 두라고 했다. 사서라함은 부고를 쓴다든가 초종록(初終錄)조객록 같은 기록을 쓰는 사람이며 사화라 함은 부의금과 장사에 필요한 돈을 맡아서 관리할 사람을 말한다. 사서와 사화를 따로 두지 않고 한 사람이 겸해서 해도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호상이 모두 겸해서 하는것도 좋다. 호상소는 호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획 하고 일을 보는 곳이다.그러므로 상주와 연락하기 편리하도록 점석 가까운 방에 둔다.

◈ 부고는 알기 쉽게 한다.


부고는 사람의 죽음을 서면으로 알리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전화나 구두로 알리는 것도 부고라 할 수 있다.

1. 장일과 장지가 결정 되는대로 호상은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에게 부고를 한다.

2. 관공서 및 일반 직장이나 단체 명의에 관련된 부고는 하지않는다.

옛날에는 부고를 창호지에 한문으로 써서 보냈으나 요즘은 보통 청첩장용지에 알아보기 쉽게 한글을 써서 부고를 내도록 한다.

※부고 서식

부 고

본관 성명 공 께서 0000년 0월 0일 0시 에(숙환 노환 급한 등)으로 별세 하셨기에 이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미망인 (부군) 000

아들 00 , 00 딸 00 , 00 손자 00

장일 00월 00 일00시

영결식장 (주소)

장지 (주소)공원묘지 또는 화장장

0000년 00월 00일

호상 000

◈ 치장(治蔣)의준비


1.장일을 정할 것
요즘에는 3일장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만약 상주가 먼곳에서 사흘만에 오지 못할 경우에는 4일장 또는 5일장으로도 한다.

2.장지의 선정
장지와 장사날짜는 부고를 내기 전에 미리 정해야 부고를 내게 된다.

3.관과 칠성판 수의 상복등 필요한 것을 모두 준비할 것
장의사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을 한다.

4.사망신고와 매장허가서
먼저 의사에게 부탁하여 사망진단서를 떼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동이나 읍 면사무소에 가면 쉽게 수속을 밟을 수 있다. 매장허가서를 잊고 장사를 지내러 가서 낭패 당하는 일이 없도록한다.

5.장사를 도울 사람을 물색할 것

6.초상에 필요한 음식준비는 철저히 할 것

◈ 입관(入棺)


입관은 운명 하신후 24시간이지난 후에 한다.

1. 깨끗한 물수건으로 시체를 닦아내고 수의를 갈아 입힌다. 수의의 깃은 모두 바른쪽으로 여민다.(수의는 여자일 경우에는 여자가 입힌다.)

2. 손발톱을 깍아서 주머니에 넣어 왼쪽은 왼편 바른편은 바른편 관에 넣는다.

3. 손은 악수한 체로 묵는다

4. 시체를 아래로부터 묶고 아홉매듭이 되게 묵는다.

5. 시신을 칠성판에 옮겨 대렴검(大殮衾)으로 싸서 여민다.

6. 관을 가져다가 받듯이 놓고 석회를 모서리에 고루편 뒤 지금(地衾)을 깔고 베게를 놓아 시신을 옮긴 뒤 천금(天衾)을 덮고 공간을 화장지나 평소에 입던 옷으로 채워 시체가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7. 뚜껑을 덮고 은정(慇釘)을 치고 관상명정을 먹으로 쓴다.

◈ 영좌(靈座)


관을 정침에 모신다음 병풍을 치고 깨끗한 상위에 종이를 깔고 고인의 혼백 이나 사진 혹은 복을 부른옷을 종이로 싸서 모시고 그 앞에 향로와 양쪽에 촛대를 하나씩 세운다.
명정은 대나무에 달아서 영좌 오른편에 세운다.

◈ 명정(銘旌)


명정은 고인의 신분을 적은 명찰이라고 할 수 있다.원래 이것은 운구를 할때 영위를 보신 용여 뒤에서 영구 행차를 표시하고 길잡이하는 것이며 하관할때는 관위에 덮어서 묻게 되는 것이다.

명정은 홍포에 흰색으로 쓴며 크기는 2m정도

남자 = 직함(직함이 없으면 學生) 본관 성 公 之 柩

여자 = 孺人 본관 성 氏 之 柩

◈ 상복(喪服)


한복일 경우에는 흰저고리 두루마기에 마포 두건을 쓰거나 마포 상장을 가슴에 달고 흰 양말 고무신을 싣는다. 여자는 흰버선을 싣는다. 양복일 경우는 양복 넥타이 양말 구두는 검은색으로 하고 마포 상장을 단다. 상장의 크기는 가로 7cm 세로3cm 로 두겹으로 가운데를 묵는다.

상복을 입는 기간은 장일 까지로 하되 상장은 탈상시 까지 단다.

입관이 끝나고 영좌를 설치하면 복인들은 상복을 갈아 입는다. 이것을 성복이라한다.

성복을 한후에 비로서 정식으로 조객의 문상을 받기시작한다. 성복을 할때 성복제를 올리는데 꼭 올릴 필요는 없다.

◈ 조상의 절차


화려한 옷차림은 피하고 흰 옷이나 검정 옷으로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 조객이 들어오면 상주는 일어나 곡을 해야 한다. 옛날에는 조객도 곡을 했으나 요즘에는 하지 않는다.

조객은 영좌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재배 한뒤에 상주 와 맞절을 하고 위로의 말을 하고 상주는 조용히 대답을 한다.조객이 많이 밀렸을 때는 문답을 간단히 하거나 생략을 한다. 평소에 돌아가신 분과 면대가 없었으면 빈소에 절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나 기왕 조상을 할 바에는 영좌에 절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성이 문상을 갔을 때 절하기가 쑥스럽게 느껴지면 잠시 묵념을 올리고 분향을 하고 상주와는 맞절을 하지않고 말로만 조의를 표한다.
조객이 부의를 가지고 갔을 경우는 문상하고 나올 때 호상소에 내어놓는다
조상은 대게 초종때 하지만 미쳐 가보지 못했다면 복중에는 언제든지 가서 해도 좋다. 부득이 가지 못할 경우 편지와 부의를 부쳐서 보낸다.

◈ 영결식 의 절차[동영상 보기]


장지로 떠나기 직전 가정과 가족들을 작별하는 의식이며 발인제(發靷祭)라고도 한다.

※ 의식 순은 다음과 같다.

1.개식

2.주상 및 상제들의 분향 배례

3.고인의 약력 보고

4.조사

5.조객 분향

6.호상 인사

7.폐식


영결식 진행에 대한 사식(司式)은 호상자가 담당한다. 조사는 고인과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 중에서 두 서너 분이 하는데 그쳐야 한다.너무 여러분이 나와서 장시간하는 것은 상제나 복인들에게 피로를 주게 되므로 좋지 못하다.

종래의 관습으로는 발인하기 전날 아침에 조전(朝奠)이라는 제사를 올린다.이 제사에서는 고인의 친구들이 떡, 술,과일,포를 올려서 전(奠)을 드리는 것이다. 이와같이 전을 올릴 때는 각처에서 조객이 모이고 상가에서는 술과 각종 음식을 준비하여 모인 사람들에게 접대하는 것이 상례였다. 이로 인해서 음식소비가 막대하여 상가에 경제적으로 많은 폐를 가져 왔다.이러한 필요 없는 낭비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따라서 조전은 지내지 않는 것이 좋으며 그대로 넘기기가 섭섭한 경우에는 상주 와 친척끼리 간소하게 올리는 것이다.

◈ 운구의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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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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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여]


발인하여 장지로 향할 때의 상차(喪次)는 1. 사진 2. 명정 3. 영구 4. 상제 5. 조객의 순서로 한다. 만사(輓飼) 가 있을 때는 상차의 맨 앞에 선다.

차량으로 운구할 경우는 영구와 함께 상제 복인 조객들이 한꺼번에 타고 갈수 있으므로 문제가 없으나 상여로 운구 할 경우는 상차대로 행렬을 짓게 된다. 영구의 시종은 조카나 사위가 하는 것이 예이다.

만일 묘소가 멀면 쉴때마다 영좌를 영구앞에 설치하고 전을 드리고 곡을한다.영구가 묘지에 도착하면 청결한 곳을 골라서 병풍을 둘러 영구를 안치한 다음 집사자가 명정을 막대에서 떼어 관위에 덮고 영좌를 설치한다.사진을 영좌상에 모시고 주 과 포 를 진설하고 나면 상주는 곡을 한다.

◈ 천광(穿壙)의 깊이는


천광은 약간 깊게 파서 관을 묻는 것이 시체가 부패할 때 잡 벌레의 발생을 방지하며 외부의 공기가 침투하는 것을 막고 지열의 영향으로 깨끗이 부패할 수 있다. 너무 깊이 파는 것도 물이 나올 염려가 있으므로 좋지 않다.약 1.5m 가 알맞다.

완전히 파낸 다음 석회와 흙을 섞어서 잘 다져두면 나중에 성석이 되어 돌처름 단단히 굳어진다. 또한 관을 묻을 때도 흙과 석회를 섞어서 덮어 다져두면 나중에 내부의 시체와 관이 상해서 공간이 생기더라도 봉분이 내려 앉는 일이 없다.

종래에는 흙을 처음 파 헤칠 때 산신에게 잘 도와 달라는 뜻으로 산신제를 지냈으나 미신적인 일로서 폐지되어야 할것이다.부부가 합장할 때는 남자는 왼편 여자는 오른편에 모신다.

◈ 횡대(橫帶)와 지석(誌石)


횡대 라는 것은 영구를 흙으로 덮기전에 관위를 가로 걸처서 덮는 나무판이나 막대기를 말한다. 갯수는 5 - 7장 정도로 두께는 3 - 4 치 정도며 길이와 폭은 넉넉히 하여 회다진 사방보다 2 - 3 치 정도 더 크게 만든다. 흙이 석회와 혼합되어 잘 굳어지면 지압으로 부터 관을 보호 하는 역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빨리 석지않고 단단한 비자나무나 대나무로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지석은 후일 봉분이 파괴 되더라도 누구의 묘라는 것을 알수 있도록 고인의 이름을 새긴 돌을 말한다.지석은 영구히 존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므로 땅속 에서 상하거나 형태가 변하지 않는 돌이나 회벽돌에 새기는 것이 가장좋다.

지석의 크기는 가로 10cm 세로 20cm 높이 7cm 에 새기는 요령은

1. 윗쪽 00(본관)000(성명) 의묘

2. 앞쪽 생년월일 사망 년월일 배우자 성명

3. 뒤쪽 주상 이름

4. 고인의 약력

이기록은 양각 또는 음각으로 하는 것이 좋으나 조각할 만한 시간이 없으면 먹으로만 써도 된다.또 사발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사발 안쪽에 대략 지석과 같이 먹으로 써놓고 재를 채워서 엎어서 땅에 묻어면 글씨가 영구히 지워지지 않는다. 천변으로 봉분이 파괴되거나 이장을 할경우 이 지석은 다시없는좋은 표식이 될것이므로 잊지않고 꼭 준비 하도록 한다.

◈ 하관(下棺)과 성분(成墳)


시간과 좌향(座向)을 맞추어 기울거나 움직이지않게 하고 관의 상을 위쪽으로 향하게 살며시 내려놓는다. 하관 후에는 명정을 관위에 펴놓고 폐백(幣帛)즉 현과훈(玄燻)을 관 동쪽 관과 곽사이에 현은 위로 놓고 훈은 아래로 놓은다음 횡대를 덮고 성분한다 이때 상주들은 마지막 고별의 정으로 성분의 처음 흙을 관 네 모퉁이와 중앙에 떠넣고 그 위에 석회와 흙을 섞어서 관을 완전히 덮은 다음 빨리 굳도록 물을 조금씩 뿌려가며 발로 밟고 (한자정도) 다진다음 막대기를 중심에 세워 중심을 잡게한다. 이것을 평토(平土)라고한다. 평토가 끝나면 지석을 오른편 아래에 묻는다. 그리고 차츰 흙을 쌓아 올리면서 둥그런 원형의 묘소를 만든다.

◈ 위령제(慰靈祭)


성분이 끝나면 고인의 육신이 마지막으로 땅 속에 묻히셨으니 홀로 외로우시더라도 고이 잠드시고 길이 명복을 누리시라는뜻으로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위령제는 봉분이 완전이 끝나면 묘소앞에 영좌를 모셔 놓고 간소하게 장만한 제수를 진설하고향불을 피우고 주상이 잔을 드린다음 축을 읽고 상주와 복인들이 배례하여 제사를 끝낸다.

※ 위령제 축문

축문은 어려운 한문을 쓰지말고 다음과 같이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아버지,조부 = 00년 00월 00일 아들또는 손자 는 (아버님 또는 할아버님)영전에 삼가고하나이다. 오늘 이곳에 유택을 마련 하였아오니 고히 잠드시고 길이 명복을 누리시옵소서. (어머니 할머니의경우도 이와 같다.)

2.아내의 경우= 00년 00월 00일 남편 00는 당신의 영앞에 고합니다. 이곳에 유택을 마련하였으니 고이 잠드시고 길이 명복을 누리소서.(자손이 없이 상부한 경우에는 아내가 위령제를 지내며 축문은 같다.)

3.삼촌이내 친족 = 앞에서 말한 1,2항에 따를 것이며 다음사항에 주의 한다.
ㄱ.손아래 같은 항렬 또는 비속에 대해서는 너의 영에 이른다로 바꾼다.

ㄴ.장례를 주제 하는 자와 망인의 친족 관계 칭호는 동례에 따를면 된다.

* 화장시의 위령제는 화장이 끝난후 혼령자리를 유골함으로 대신하고 위와같은 절차로 한다.

◈ 반곡(反哭)


주인 이하가 사진(혼백)을 받들고 천천히 걸어가며 집이보이면 곡을 하면서 집에 들어 가는 것이다. 집에 도착 하면 영좌를 그전 장소에 설치하고 혼백 신주를 모시고 모든 상주는 곡을 한다.

이때 문상 을 하는 자가 있으면 조상의 예를 행한다.

제수의 준비가 끝나면 곧 초우제를 지낸다.

(우제로는 초우 재우 삼우제 가 있다.)

◈ 첫 성묘


장례를 치르고 나면 몹시 피로하고 집안 일도 밀려 있으며 빠쁘기만 하다. 그래서 이틀동안 피로를 풀면서 가사를 정리하고 사흘만에 성분이 잘되었는 가를 확인 할겸 묘소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다. 갈때는 괭이와 삽 낫 등을 준비하여 봉분과 봉분 주위 손질을 다시 한다.

종래의 관습으로는 재우라하여 초우를 지내고 유일(乙, 丁,己, 辛 癸)을 골라 지내며 삼우는 재우를 지낸뒤 강일(甲,丙,戊,庚,壬) 을 골라 묘소에가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그리고 졸곡 이라 하여 초상을 지내고 석달째 되는 날에 제사를 지냈다.

◈ 탈상 (脫喪)


상기가 끝나고 상복을 벗는것을 말한다. 상복은 애(哀)와 경(敬)의 외부적인 표시인 만큼 내부적인 표시인 마음가짐 과 일치 해야 상복을 입는 뜻이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귀찮게 여기면서남의 눈을 가리기 위해 입는 상복은 도리어 고인에 대한 모욕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복을 입는 기간은 너무 길어도 정신적인 부담만 크고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 된다. 뿐만 아니라 상기는 시대적인 사회성과 적응되어야 하기 때문에 부모 조부모 배우자의 상기는 운명일로 부터 백일로 하고 기타 복인들이 입는 기간은 장일까지로 하는것이 좋다.

※ 탈상 제는 기제에 준하여 지낸다

예전에는 백년 삼년 일년 구개월 오개월 삼개월상 등 시대의 변천에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현실 적으로 사람과 더불어 교제를 하려면 자연 출입을 않을수 없고 출입을 하는데는 의복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상복은 흉복이라 하는데 훙복을 입고 사람을 대할 수는 없다.그러므로 옛날에는 상중에는 출입을 하지 않았다.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누구를 만날때는 밤에 방문을 하였다. 남에 잔치는 물론이요 초상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 졌으니 옛처름 고루한 격식을 지킬 필요는 없다. 다만 화려한 옷은 피하고 검정색 이나 흰색의 간소한 옷을 입되 상중이라는표시로 앞에서 말한 상장을 사람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붙이고 다니면 된다.부인들은 한복일 경우 소복을 하고 머리에 흰 리본을 다는 것이 보기에도 좋고 청결해 보인다. 어디까지나 단정하고 검소한 옷차림으로 남에 눈에 거슬리지 않게 고인을추모하며 복중을 지내도록 한다.

◈ 탈상 축문


탈상제를 지낼때의 축문도 구식의 어려운 격식을 따르는 것보다 다음과 같이하면 될것이다.

1.부모 조부모 의 경우

몇년 몇월 몇일

아들 또는 손자 누구는 아버님 또는 어머님 영전에 삼가 고하나이다.

세월이 덧없어 어너듯 상기를 마치게 되었사오니 애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 하옵니다.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니 강림하시와 흠향하시옵소서.

2.아내의 경우

몇년 몇월 몇일

남편 누구는 당신의 영 앞에 고합니다.

당신이 돌아간지 몇일이 되어 이제 상기를 마치게 되니 슬퍼고 아픈 마음

금할수 없읍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니 흠향하소서.

※ 자손이 없이 남편을 여위면 아내가 탈상제를 지내게 되며 그때의 축문도

이에 준하게 된다.

◈ 답조장


장사가 끝이나면 도와주시든 모든분들이 돌아 가게 된다 이때 그분들에게 각각 치사의 인사를 빠뜨려서는 안된다. 경우 에 따라서는 말만으로 그쳐도 좋겠지만 특히 수고를 해주신 분에게는 간단한 선물을 하여 수고를 치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조상왔던 친지나 손님에게 답조장을 보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 답조장의 예문은 다음과 같다

삼가 아뢰옵니다.

지난번 누구의 상을 당하였을때 따뜻한 위문의 말씀과 함께 분에넘치는 부의를 보내주시와 감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황망한 가운데 우선 이글로써 인사를 대신 하옵니다.

년 월 일

누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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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라북도교육정보과학원의 관혼상제 홈페이지(http://cein21.net/manner)


상례범절(喪禮凡節).2 top

유언(遺言) - 병자의 환우(患憂)가 위급하거나 소생의 가망이 희박하여 운명(殞命)하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평소의 미진한 일이나 또 사후에라도 실행하고 싶은 사항들에 대한 훈계나 교훈, 명령을 자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달하는 것이 유언이다. 이때 병자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면 병자가 대답하기 쉽도록 내용을 간략하게 묻고, 그 대답을 기록하거나 녹음해 둔다. 이 유언 증서는 차후 법적인 구속력을 지니는 소중한 근거인 점에 유의한다.
유언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귀중한 말이므로 자손이나 친지들은존중하여 따라야 할 것이다.

2·임종(臨終) - 운명(殞命)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사람이 장차 죽을 때를 말한다. 평상시에 거처하던 방을 깨끗이 치우고 환자를 눕힌 다음 요나 이불을 새 것으로 바꾸고 옷도 깨끗한 것으로 갈아 입힌다. 이때 환자의 머리를 동쪽으로 하여 북쪽에 눕힌다. 옛날의 예법에는 남자는 여자가 지키고 있는 데서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이와 반대로 여자는 남자가 지키고 있는데서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고 「사상기(士喪記)」에 기록되어 있다.

3·수시(收屍) - 숨이 끊어지면 먼저 눈을 감기고 깨끗한 솜으로 입과 귀와 코를 막고 머리를 높고 반듯하게 괸다. 시체가 굳기 전에 손발을 고루 주물러 편 다음 남자는 왼손을 위로,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하여 두 손을 한데 모아 백지로 묶고, 발도 가지런히 하여 백지로 묶는다. 이는 사지를 뒤틀리지 않고 반듯하게 하기 위함이다. 백지로 얼굴을 덮은 후 칠성판(七星板)위에 눕히고 홑이불을 덮는다. 이 절차는 아주 정성껏 해야 한다. 만일 소홀히 하면 수족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으므로 염습(殮襲)할 때 큰 걱정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끝나면 곡(哭)하는 집도 있으나, 고복(皐復)이 끝난 뒤에 곡을 하는 것이 옳다.

4·고복(皐復) - 고복은 곧 초혼(招魂)이다. 남자의 초상에는 남자가, 여자의 초상에는 여자가 죽은 사람의 상의(上衣)를 가지고 동쪽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는 옷의 허리를 잡고서 북쪽을 향해 옷을 휘드르면서, 먼저 죽은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왼 다음에 "복(復)! 복! 복"하고 세 번 부른다. 이는 죽은 사람의 혼(魂)이 북쪽 하늘로 가고 있다고 하여 혼이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는 것이니,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아야 비로소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곡(哭)을 하는 것이라 했다. 이때 죽은 사람의 벼슬이 있으면 모관모공(某官某公)이라고 벼슬 이름을 부르고, 벼슬이 없으면 학생모공(學生某公)이라 한다. 초혼이 끝나면 「사자밥」이라고 하여 밥 세 그릇과 짚신 세 켤레를 채반 위에 받쳐 마당 가운데 놓는다. 여기에 초혼한 옷을 같이 놓기도 한다. 또 물 한동이를 떠다 옆에 두고, 채반 위에 돈도 놓는다. 이 돈은 사자(死者)들의 노자로 쓰라는 것이다. 신은 대문 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사자밥은 사람이 죽으면 하늘에서 사자가 내려와 데려간다고 보는 관념에서 사자들이 먹고 갈 것과 신고 갈 것을 대접하는 것이다. 사자를 셋이라 생각하는 것은 전통적인 무속의 삼신 신앙(三神信仰)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한편 인간에게는 삼촌 칠백(三魂七魄)이 있으므로 삼혼을 데리고 가는 사자도 셋이라는 믿음에서이다. 나중에 사자밥은 먹지 않고 버리며, 신은 태우고, 돈은 상비에 쓴다.

5·발상(發喪) - 고복이 끝나면 자손들은 모두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옷을 갈아 입는다. 남자는 심의(深衣)를 입고 섶을 여미지 않으며, 여자는 흰 옷으로 갈아 입는다. 또한 모두 신을 벗고 근신하며 애도한다. 이처럼 자손들이 상제(喪制)의 모습을 갖추고 초상난 것을 밖에 알리는 것을 발상이라 한다. 발상과 동시에 <喪中> <喪家> <忌中>이라고 써서 문밖 또는 길목에 붙인다.

6·상제(喪制) - 상주는 상사(喪事)의 중심이 되는 상인(喪人)을 가리키는데, 죽은 사람의 맏아들이 상주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맏아들이 없고 맏손자가 있을 때는 작은 아들이 있어도 맏손자가 상주가 되며, 상주가 된 장송을 「승중상(承重喪)」이라 한다. 고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은 상제가 된다.

7·복인(服人) - 복인의 범위는 고인의 8촌 이내로 한다. 복인들은 남자상제는 흰두루마기를 입는데, 부상(父喪)이면 왼쪽 소매를 끼지 않고 어깨에 엇맨다. 여자상제들은 머리를 풀고 흰 옷을 입는다.

8·호상(護喪) - 발상이 끝나면 상가에 호상소를 마련한다. 상주를 대표하여 친족, 친구 중에서 상례에 밝고 풍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모든 일을 맡아 보는 것이 호상이며, 상례에 밝은 사람을 집사(執事)로 정하여 보조하게 한다. 이때부터 호상은 지필묵을 준비하여 물품이나 금전의 출납을 기록하고 조객의 출입도 기록한다.

9· 전 (奠) - 전은 죽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염습(殮襲)이 끝날 때까지는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섬기기 위하여 술·포·과일 등을 집사가 탁자 위에 놓는 것으로, 손과 술잔을 씻고 술을 따라 올린다. 술은 가득 부어서 시신의 오른쪽 어깨 가까운 곳에 놓는다. 이 전은 염습이 끝날 때까지 날마다 한번씩 드린다. 전을 올리는 것은 상주가 슬프고 애통하여 올리지 못하므로 집사가 대신한다. 이때 절은 하지 않는다. 전 드릴 때의 준비물은 밥상, 어포, 과일 또는 채소, 술, 식혜, 세수대야, 수건 등이 필요하다.

10·관(棺)과 칠성판 - 호상이 목수나 관장(棺匠)을 시켜 나무를 골라 관을 만들게 한다. 나무는 유삼(油衫)이 좋고 잣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오동나무 순이다. 칠성판은 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았기 때문에 칠성판이라 하는 것이다. 염습할 때 시신 밑에 까는 널빤지로 두께는 다섯 푼이 적당하다.

※임종에서부터 이 절차까지를 초종(初終)이라 한다.

11·부고(訃告) - 친척들에게 고인의 사망을 알리기 위하여 호상과 사서는 부고를 써서 발송한다.

12· 습 (襲) - 습은 시체를 닦고 수의(壽衣)를 입힌 뒤 염포(殮布)로 묶는 절차로서 염습(殮襲)이라 한다. 먼저 향나무 삶은 물이나 쑥을 삶은 물로 시신을 정하게 씻기고 나서 수건으로 닦고 머리를 빗질하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머니에 넣는다. 이것은 대렴(大斂)을 할 때 관 속에 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시신을 침상(寢牀)에 ?히고 수의(壽衣)를 입히는데, 옷은 모두 오른쪽으로 여민다. 다음으로 습전(襲奠)이라 하여 제물을 올리고 주인이하 모두가 자리에서 곡한다. 이어 시신의 입 속에 구슬과 쌀을 물려주는데 이를 반함(飯含)이라 한다. 염습의 절차가 끝나면 시자(侍者)는 이블로 시신을 덮는다. 이를 졸습(卒襲)이라 한다.

13·설전(設奠) - 설전을 상을 당하고 처음 지내는 제사로「습전(襲奠)」이라고도 한다.

14·반함(飯含) - 반함은 염을 하기 전에 시신의 입에 구슬 또는 엽전과 쌀을 떠넣어 주는 것을 말한다. 상주가 손을 씻고 곡을 하면서 왼쪽 소매를 벗어 오른쪽 허리에 꽂고, 무공주 3개를 담은 그릇을 받들고 쌀(깨끗이 씻은 것)을 담은 그릇에 버드나무 수저를 꽂아 들고 시신 앞에 들어간다. 명건으로 얼굴을 덮고 시신의 동쪽 발치로부터 서쪽으로 올라와서 동쪽을 향해 앉아 시신을 덮은 명건을 들고 버드나무 수저로 쌀을 조금 떠서 오른편 입에 넣고(쌀은 왼편에서 뜬다) 동시에 무공주를 넣되 왼편과 가운데도 이와 같이 하고 깨끗한 솜을 명주에 싸서 턱 아래를 채운다. 다음에 복건을 씌우고 충이로 좌우의 귀를 막은 다음 명목을 덮고 신을 신기고 심의를 거두어 여미는데 옷깃은 산 사람과 반대로 오른쪽으로 여민다. 다음에 조대(條對), 대대(大帶)를 동심결(同心結)로 매고 악수를 맨다.

※이상으로 습례(襲禮)는 끝났으며, 시신은 다시 이불을 덮어 시상에 모신다. 염습이 끝나면 모든 기물을 태울 것은 태우고, 묻을 것은 묻어서 없앤다. 다음에 영좌(靈座)를 꾸미고 혼백(魂帛)을 만들고 명정(銘旌)을 만들어 세운다. 이 의식이 끝나면 가족, 친척, 친구들이 들어가 곡을 해도 된다.

15·혼백(魂帛) - 혼백은 신주(神主)를 만들기 전에 삼베 또는 백지를 접어서 만드는데, 근래에는 신주를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빈소에 모셨다가 대상(大祥)이 지난 후에 묘소에 묻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 접은 혼백에 오색실로 만든 동심결을 끼워 혼백함에 넣어 모신다. 깨끗한 백지에 고인의 옷을 싸고 지방을 써서 함에 넣기도 하며 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16·소렴(小殮) - 소렴은 사망한 이튿날 아침에 수의를 입히는 절차이다. 우선 깨끗한 자리를 깔고 그 위에 지금(地錦)을 펴놓은 다음 속포 20마리를 일곱 구비로 서려 놓고 장포 7자를 길이로 깐다. 시신을 그 위에 모신 후, 위 아래 옷을 각각 겹쳐서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며 입힌다. 다음에 베개를 치우고 옷을 접어서 시신의 머리를 반듯하게 괴고 몸을 바르게 하는데, 새 솜으로 어깨 사이의 빈 곳을 채우고 좌우를 걷어 맨다. 양쪽 다리는 옷으로 보공(들어간 곳을 채우는 것)한 다음 발끝까지 똑바르게 한다. 수의는 왼쪽부터 여미고 옷고름은 매지 않고 손은 악수로 싸맨다. 명목으로 눈을 가리고 폭건과 두건을 씌우고 이불로 고르게 싼 다음 장포의 두 끝을 찢어 각각 매고 속포로 묶은 다음 끊어서 속포의 한쪽 끝을 세 갈래로 찢어서 아래서부터 차례 묶어 올라간다. 그러므로 베폭은 일곱폭으로 묶고, 묶는 끈은 21개가 된다. 고인이 여자인 경우에는 수의를 여자가 입히고 그 다음은 남자가 한다. 이것으로 소렴은 모두 끝이 난다. 다음에 시신을 시상에 모시고 곡을 한 다음 상제들은 머리 푼 것을 걷어올리고, 남자는 포두건(布頭巾), 베중단을 입고 자리에 나가 곡을 한다. 집사가 전(奠)을 올리는데, 이것이 고인에 대한 최후의 봉사이므로 상주와 근친 일동은 정성을 다해서 모신다.

18·대렴(大殮) - 대렴은 소렴이 끝난 뒤 시신을 입관하는 것으로, 소렴을 한 이튿날, 즉 죽은 지 삼일째 되는 날 새벽 동틀 때 하는 의식이다. 날이 밝으면 먼저 관을 들어다가 서쪽에 놓고, 집사는 관 밑바닥에 출회(숯가루 또는 석회)를 고르게 깔고, 그 위에 칠성판을 깔고 지금(地錦)을 깐다. 다음에 대렴포 30자에 횡포 두 매를 놓고, 맬 폭이 양쪽 끝을 반으로 쪼개면 좌우가 각각 여섯 쪽이 된다. 그 다음 장포 한 폭을 놓고 양끝을 셋으로 쪼갠 후 그 위에 대렴금(大斂衾)을 펴 놓고 소렴한 시신을 그 위에 모신다. 먼저 발을 여미고 머리를 여미는데 왼쪽, 오른쪽 순으로 여민 후 다시 장포를 세 매로 묶고 횡포를 매는데 좌우로 다섯 쪽만 묶고 한 쪽은 제쳐 놓는다. 모든 다섯 매로 묶은 뒤 시신을 들어서 기울지 않게 관 속에 넣는다. 그리고 다섯 주머니에 모셔 둔 머리털, 손톱, 발톱을 관 아래 위에 넣는다. 또 빈 공간에는 고인의 옷을 뭉쳐서 넣는다. 그러나 금옥(金玉)이나 비싼 물건을 넣어서 도둑 맞는 일이 없도록 한다. 다음에 천금을 관 석에 덮고 상주, 상제, 복인들은 슬피 통곡한다. 이제 천개(관 뚜껑)를 덮고 은정(나무, 못)을 박고 명정(銘旌)을 관 동쪽에 세우고, 장지로 관을 싸서 노끈 50발로 내결관(內結棺)한다. 그리고 다시 초석(짚자리)으로 싸고, 백지를 감은 가느다란 동아줄로 외결관(外結棺, 관의 밖을 묶음)한 후 천금(관을 덮는 홑이불로 위는 검은색, 안쪽은 흰색)으로 관을 덮는다.

19·성복제(成服祭) - 대렴이 끝난 이튿날,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 하는 의식이다. 날이 밝으면 오복(五服)의 사람들이 각각 그 복을 입고 제 자리에 나간 후에 조곡(朝哭)을 하고 서로 조상(弔喪)한다. 조상을 할 때는 오복의 차례대로 행하는데, 여러 자손들은 조부와 아버지 앞에가서 꿇어 앉아 슬피 운 다음 조모 및 어머니 앞에 가서 또 이와 같이 한다. 여자는 먼저 조모와 어머니 앞에 가서 곡한 다음에 조부 및 아버지 앞에 가서 남자의 의식과 같이 행한다.

20·복제도(服制度) - 복제도는 참최, 재최는 각 3년, 장기(杖朞)는 상장을 짚고 1년, 부장기(不杖朞)는 상장을 짚지 않고 1년, 대공(大功) 9개월, 소공(小功) 5개월, 시마(媤麻) 3개월 등으로 다음과 같이 세분되지만, 근래에는 통상 사용하지 않으므로 전통의 격식으로 참고만 하도록 한다.

21·문상(聞喪) - 객지에 나가 있다가 부모의 상(喪)을 듣고 돌아오는 것을 일컫는다. 부음(訃音)을 듣는 즉시 곡을 하며 부고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절을 하고 흰 옷으로 갈아 입는다. 집에 돌아오면 상복으로 다시 갈아 입고 시신 앞에 나아가 슬피 곡을 한다.

22·심상(心喪) - 실제로 상복은 입지 않은 채 마음으로 3년 동안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스승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해서나 또는 적모(嫡母)나 계모, 재가한 어머니를 위해서도 이와 같이 한다.

23·조상(弔喪) - 조상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가 인사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식 상례의 경우 조상은 원래 성복(成服) 후에 하도록 되어 있다. 성복 전에는 가까운 일가 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가서 상주에게만 인사하고 영구(靈柩)에는 절을 하지 않는다. 성복 후라도 망인(亡人)과 생시에 안면이 없었거나 여자인 경우 빈소에는 절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인사한다. 조객은 먼저 호상에게 성명을 말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상주는 일어나서 '애고 애고…'하고 곡을 한다. 호상이 조객을 안내하여 영좌 앞으로가면 조객은 '허희 허희…'(보통은 '어이 어이…')하고 슬피 곡을 한 뒤 두 번 절을 한다. 향을 피우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집사가 무릎을 꿇고 잔을 조객에게 주고 술을 따른다. 조객이 이것을 다시 집사에게 주어 영좌 앞에 놓게 하고 일어서면, 호상이 상주의 곡을 그치게 한다. 축관이 서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제문(祭文)을 읽고 조객이 가져온 부의(賻儀)의 명세를 바치고 나면 조객과 상주가 모두 슬피 곡한다. 고인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조객은 상주와 맞절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상사(喪事)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 또는 "상사 말씀, 무슨 말씀으로 여쭈오리까" 또는 "병환이 침중하시더니, 상사를 당하시어 얼마나 망극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한다. 상주는 머리를 숙여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대답을 대신하기도 하고, "망극하옵니다""원로에 수고하시니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24·부의(賻儀) - 상가에 부의를 보낼 때는 백지에 단자(單子)를 써서 봉투에 넣어 보낸다. 단자를 쓰지않을 때는 봉투에 물목(物目)을 기록한다. 부의는 돈이나 상가에서 필요한 물건으로 한다.

25·영결식(永訣式)

- 치장(治葬) : 장사를 치르려면, 먼저 묘지를 정해야 한다. 이를 「택지」라 하며, 상주이외의 자식 중의 한 사람이 내정된 곳에 직접 가서 시신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는 곳인가를 잘 살펴 정한다. 햇볕은 잘 드는지, 돌이나 물은 없는 지, 봉분을 이를 만큼 두터운 곳인지 등을 잘 알아본다. 날짜가 정해지면 영역(塋域·산소)에 산역을 시작하고 토지신에게 사토제(祠土祭)를 지낸다.

- 천광(穿壙) : 사토제가 끝나면 드디어 땅을 파기 시작하여 광중(壙中)을 만든다. 광중을 팔 때는 금정기(金井機)를 땅 위에 놓고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금정기는 나무 막대기 네 개를 가지고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관의 크기를 짐작하여 반듯하게 놓고서 네 모퉁이에 말뚝을 박아 표시한 뒤 그 모양대로 파 들어간다. 구덩이를 다 파고 나면 석회에 모래를 섞어 발라서 관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곽(槨)을 만든다.

- 천구(遷柩) : 영구(靈柩)를 상여로 옮기는 의식으로 발인(發靷) 전날 행한다. 이때 오복(五服)의 친척들이 모두 와서 각각 자기의 복을 입고 참례한다. 이때 조전(朝奠)을 올리는데,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앞서 가서 사당 앞에 뵈면 집사는 제물을 진설한다. 다음에 명정이 따르고 복인(服人)들이 영구를 들어 모시면 상주이하는 모두 곡하면서 그 뒤를 따른다. 조전(朝奠)을 올릴 때 집이 좁아서 영구를 모시고 출입하기가 어려우면 혼백으로 영구를 대신해도 된다. 그럴때에는 제물이 앞서 가고, 그 다음에 명정 혼백의 순으로 간다. 사당앞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향해 혼백을 자리 위에 모신다. 이어서 영구를 다시 마루로 옮기는데, 이때 집사가 마루에 포장을 친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영구를 안내하면 주인 이하모두가 곡하면서 뒤따른다. 마루에 도착하면 영구를 마루에 깔린 자리 위에 놓고 축관은 영구 앞에 제물 올릴 상을 마련한다. 이것이 끝나면 모두가 제자리에 앉아 곡을 한다. 해가 지면 조전(祖奠)을 올리고 이튿날 날이 밝으면 영구를 상여로 옮긴다.

- 발인(發靷) : 발인은 영구가 장지로 출발하는 절차를 말한다. 옛날에는 대여(大輿)를 썼는데, 가난한 사람은 어려운 일이므로 상여를 쓰는 풍속이 생겼다. 대부(大夫)는 불삽( )을 쓰고, 사(士)는 운삽(雲 )을 쓴다. 삽은 원래 깃털로 만든 부채 모양이었으나, 후세에 와서는 네모꼴의 화포(畵布)에 길이 다섯 자의 자루를 달고 긴 털을 장식한다. 신주는 밤나무 로고만들고, 궤는 옻 칠을 한다. 다음날 날이 밝으면 영구를 상여에 옮겨 모시고 견전(遣奠)을 지낸다. 견전은 영구를 상여에 옮겨 실은 뒤, 마지막으로 올리는 전을 말하며 「발인제」또는 「영결식」이라고도 한다. 견전의 의식은 조전과 같으며, 축관이 술을 따라 올 린 다음 무릎을 꿇고 견전축을 읽어 고한다. 고축(告祝)이 끝나면 상주 이하 복인들은 곡을 하며 의식에 따라 술을 올리고 재배한다. 일꾼들은 영구를 옮겨 상여에 싣고, 새끼줄로 튼튼히 맨다. 상주는 영구를 따라 곡하면서 내려가 영구 싣는 것을 지켜보고, 부인들은 장막 안에서 곡한다. 상여 앞에는 공포(功布)가 서고, 곁에는 운삽을 세운다. 묘지에서 창을 들고 사방 모퉁이를 지키는 사람을 「방상(方相)」이라 하는데, 이것을 세운다. 공포는 영구 위의 먼지는 터는 데 쓰이는 것으로, 흰 무명 3척으로 만들고 명정처럼 대나무에 매단다. 그 뒤를 만장이 줄을 지어 따른다.

- 운구(運柩) : 영구를 운반하여 장지가지 가는 것을 말한다. 운구하는 도중에는 상주 이하 모두 곡하면서 따른다. 다만 장지가 멀어서 도저히 걸어서 갈 수 없는 경우에는 상주나 자질(子姪)들이 모두 화려하지 않은 수레를 타고 가거나 묘소 300보쯤 떨어진 곳에서 내려 걸어간다. 상여로 운구할 때 묘소에 가는 도중에 노제(路祭)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는 고인(故人)과 친한 조객이나 친척 중에서 뜻있는 사람이 스스로 음식을 준비했다가 지내는 것이다. 만일 묘소가 멀 때는 매 30리마다 영구 앞에 영좌를 만들고 조석으로 곡하며 제사를 올린다. 또 조석 식사 때가 되면 상식(上食)을 올리고, 밤이면 상주 형제는 모두 영구 곁에서 잔다.

- 노제(路祭) : 집을 출발하여 묘지에 이르는 도중 거리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고인과 절친했던 친구나 친척이 조전자(弔奠者)가 되어 제물을 준비했다가 올리는데, 운구 도중 적당한 장소에 장막을 치고 제청을 꾸민 뒤 영여(靈與)를 모시고 조전자가 분향 후 술을 올리고 제문(祭文)을 읽으면 모두 두 번 절을 한다.

- 하관(下棺) : 하관할 때는 상주와 부인들은 곡을 그치고, 널을 싼 종이와 결관 끈을 벗기고 광중의 곽 안에 모신다. 이때 널이 삐뚤어지지 않았는가, 다른 물건이 떨어지지 않았는가 등을 살펴본다. 하관은 먼저, 가는 나무 둘을 회를 깐 바닥 위에 놓고, 기다란 나무 두 개를 광중 위에 가로놓는다. 그리고 영구 위에 명정과 구의(柩衣)를 벗겨서 가로지른 나무 위에 올려놓는다. 다시 무명 두 가닥으로 관 밑 바닥을 머리쪽과 발쪽에서 떠서 들고 장목을 치운 다음, 서서히 내려보낸다. 바닥 위의 나무에 관이 놓일 때 바르게 놓이는 가를 살펴보고, 나무토막을 치우고 광중으로 내려보낸다. 다음에 횐 솜으로 관을 깨끗 이 닦은 다음 구의와 명정을 관에 반듯하게 덮는다. 삽은 광중 양쪽에 기대어 둔다. 집사가 현훈(玄 )을 가져다가 상주에게 주면, 상주는 이것을 받아서 축관에게 준다. 축관은 이것을 받들고 들어가 관의 동쪽, 즉 죽은 사람의 왼쪽에 바친다. 또는 현은 동쪽 위에, 훈은 서쪽 아래에 올린다. 상주가 두 번 절하고 나면 모든 사람이 슬피 곡한다.

- 성분(成墳) : 흙과 회(灰)로 광중을 채우고 흙으로 봉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지석(誌石)을 묻는 경우에는 묘지가 평지에 있으면 광중 남쪽 가까운 곳에 묻고, 가파른 산기슭에 있으면 광중 남쪽 몇 자쯤 되는 곳에 묻는다.

- 반곡(返哭) : 상주와 일행이 영지를 모시고 곡을 하면서 상여가 오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을 말하며, 「반혼(返魂)」또는 「반우(返虞)」라고도 한다. 집에 이르러 문이 보이면 다시 곡을 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집사가 영좌를 차려 놓고, 축관이 신주를 모셔다가 영좌에 놓고 혼백은 그 뒤에 놓는다. 상주와 일행은 영좌 앞에서 다시 슬프게 곡을 한다. 조상 온 사람이 있으면 처음에 하던 것과 같이 절을 한다. 기년이나 9월 복에 해당하는 사람은 술과 고기를 먹되 다만, 잔치는 하지 않는다. 이때 소공 이하 대공까지의 복인으로 따로 사는 사람은 각기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조상하는 사람이 있어도 조례(弔禮)는 길에서 하지 않고 집에 돌아온 뒤에 한다. 그리고 집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반드시 영좌 앞에 나가서 재배(再拜)한다.

-우제(虞祭) - 우제는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로, 우(虞)는 형체가 땅 밑으로 돌아가고 없어서 안정을 못하고 불안에 싸여 방황하고 있는 혼령을 평안하게 한다는 안신(安神)을 뜻한다. 그래서 우제를 세 번이나 지내는 것은 혼령으로 하여 신주나 혼백에 안심하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우제는 장사지낸 당일부터 지내는데, 이날 처음 지내는 우제를 「초우제(初虞祭)」라 하고, 2·3일 만에 지내는 우제를 「재우제(再虞祭)」라하며, 3·4일 만에 지내는 우제를 「삼우제(三虞祭)」라 한다.

- 초우(初虞) : 초우는 장례를 모신 당일에 지내며, 묘지가 멀어서 집에 도착하지 못한 경우에는 숙소에서라도 지내야 한다. 초우제를 지내려면 목욕을 깨끗이 해야 하는데, 형편이 안 될 경우에는 세수라도 정결히 해야 한다. 그러나 빗질은 하지 않는다. 초우제부터는 정식제사를 지낸다. 서쪽 뜰 서남쪽에 대야와 수건을 준비해, 대야는 탁자 위에 놓고 수건은 줄을 매서 걸어놓는다. 술병은 영좌 동남쪽에 탁자를 놓고 그 동쪽에 둔다. 술잔, 잔받침도 그 위에 놓고, 퇴주 그릇도 놓는다. 화로는 영좌 서남쪽에 놓고, 모사(茅沙:띠의 묶음과 모래)도 놓는다. 날이 어두어지면 촛불을 켠다. 제물은 조전(朝奠)과 같다.
제물 외에 채소, 과일은 영좌 앞쪽에 놓고, 수저는 그 안쪽 중앙에 놓는다. 술잔은 서 쪽, 술은 병에 채워 둔다. 상주와 상제들은 방 밖에 지팡이를 짚고 서며, 그 외에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영좌 앞에 가서 곡을 하는데, 북쪽을 향하고 복의 차례로 선다. 만약 초우제를 낮에 지냈으면, 저녁에 상식을 다시 올린다. 상식과 우제는 다른 행 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제가 늦게 끝났으면 생략해도 관계없다. 제사가 끝나면 축 관은 가져다가 집사와 같이 깨끗한 곳에 묻는다. 발인할 때 신주가 혼백 뒤에 있고, 반 혼할 때는 혼백이 신주 뒤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혼백을 묘소 부근에 묻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때부터 조석전은 올리지 않는다.

- 재우(再虞) : 초우가 지난 후 유일(柔日)을 당하면 재우를 지내는데, 유일이란 을(乙) 정(丁) 기(己) (辛) 계(癸)에 해당하는 날이다. 제사 지내는 법은 초우 때와 마찬가지이다. 하루전에 제기(祭器)를 정리하고 음식을 마련한다. 당일 동이 트면 일찍 일어나 채소와 실과와 술과 반찬을 진설하고 날이 밝으려고 할 때 지낸다.

- 삼우(三虞) : 재우를 지낸 뒤 강일(剛日)을 당하면 삼우를 지낸다. 강일이란 갑(甲) 병(丙) 무(戊) 임(壬)에 해당하는 날이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초우 재우 때와 마찬가지이다.

- 졸곡(卒哭) : 삼우가 끝난 후 3개월이 지나서 강일(剛日)을 당하면 지낸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삼우 때와 다를 것이 없고, 다만 이로부터는 비록 슬픈 마음이 들어도 무시로 곡하지 않고 조석곡(朝夕哭)만 한다. 졸곡이 지난 후부터는 밥을 먹고 물도 마신다. 잠 잘 때는 목침(木枕)을 벤다. 고례에 의하면 3년상 동안에는 다른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고 했지만, 장사를 지내기 전에만 폐지하고 졸곡을 지낸 뒤에는 절사(節祀) 기제(忌祭) 묘제(墓祭) 등은 지내되, 그것도 복(服)이 가벼운 사람을 시키는 것이 옳다. 제수(祭需)도 보통 때보다 한 등급 감해서 지내는 것이 예법의 일단일 것이다.

- 부제(부 祭) : 졸곡을 지낸 다음날 지내는 제사로서 새 신주를 조상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낸다. 이 제사도 졸곡 때와 같이 차리지만 다만 사당에서 지낸다는 것이 다르다. 신주를 모실 때는 축관이 독( )을 열고 먼저 조고(祖考)의 신주를 받들어 내다가 영좌에 놓고, 다음으로 내집사(內執事)가 조비(祖 )의 신주를 받들어 내다가 그 동쪽에 놓는다. 이 절차가 끝나면 상주 이하가 영좌로 나가 곡하고, 축관이 새 신주의 주독(主 )을 받들고 사당으로 들어가 영좌에 놓는다. 새 신주를 모실 때는 향을 피운다. 여기에서부터는 우제(虞祭)때와 같이 제사를 지내고 초헌 후에 축문을 읽고 나서 먼저 모셔 내온 조고 조비의 신주를 도로 모시고 새 신주를 모시는 것으로 제사를 끝낸다.

- 치상(治喪)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애써 주신 친지들과 호상이 돌아가실 때에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도록 한다.

-소상(小祥) :소상은 초상을 치르고 만 1년이 되는 날 지내는 제사로, 윤달과 상관없이 13개월 만에 지낸다.옛날에는 날을 따로 받아서 소상을 지냈으나, 지금은 첫 기일(忌日)에 지낸다.
아버지가 계실 때의 어머니 초상은 11개월 만에 연사(練祠)를 지내고, 13개월만에 소상을 지내며, 15개월에 담사( 祠)를 지낸다. 이러한 절차는 3년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므로 11개월 만에 연사를 지내는 것도 사실 기년(朞年)으로 치른 셈이 된다.

-대상(大祥) :초상 후 만2년 만에 지낸다. 그러므로 초상이 난 후 25개월 만에 지내는 셈이다. 초상이 난 후 25개월 만에 지내는 셈이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는 13개월 만에 지낸다. 제사의 절차는 소상 때와 같다. 사당에는 새 신주를 모셔야 하므로 먼저 고하고, 대상이 끝나면 즉시 부묘( 廟)한다. 이 제사에는 남자는 백직령(白直領)에 백립(白笠)을 쓰고 백화(白靴)를 신으며, 부인은 흰 옷에 흰 신을 신는다. 이 제사로 상복(喪服)을 벗고, 젓갈이나 간장, 포 같은 것을 먹는다. 대상이 끝나면 궤연( 筵)을 없애므로 신주는 당연히 사당으로 모시게 된다.

-담제(담 祭):대상을 지낸 후 한 달을 지나 두 달이 되는 달에 지낸다. 초상으로부터 27개월에 지내는 윤달도 역시 따진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는 15개월 만에 지낸다. 전달 하순(下旬)중으로 택일을 하는데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로 고른다.

-길제(吉祭):담재를 지낸 다음 달이 길제이므로 삼순(三旬) 중에 하루를 택해서 거행하는데 정일이나 해일에 한다. 담제를 지낸 이튿날에 정일이나 해일을 택하여 사당에 고(告)하되 주인(복을 벗었으므로) 이하 모두 재배하고, 주인이 분향 재배하면 축관이 주인의 왼쪽에 꿇어앉아 고사(告辭)를 읽는다. 고하기를 마치면 주인 이하 재배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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