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실크로드(상)]
사막길에 남아 있는 천 년
역사를 찾아서
| ||||||||||||||||||||||||||||||||||
실크로드란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인 F. 리히트호펜이란 사람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운반된 물품이 주로 비단인 것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실크로드에는 천산산맥의 북쪽으로 가는 천산북로와 남쪽으로 가는 천산남로,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으로 가는 서역남로가 있다는데, 우리는 천산남로로 카스까지 갔다가 서역남로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비단이 뭐길래 그 고생을 했을까
난주에 도착하니 전체 가이드 김창묵씨와 난주 가이드 허동식씨가 우리를 맞이한다. 시간이 늦어 부지런히 백탑사(百塔寺)를 보러 갔다. 막 문을 닫으려는 것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어두컴컴한 백탑사로 올라갔다. 백탑사 꼭대기에 올라가니 7층 높이의 하얀 탑이 서 있고, 발 아래로는 어두운 황하에 밝은 조명으로 모양 낸 황하대철교가 걸려 있다. 허동식씨는 우리들이 밤에 황하를 보게 되어 흙탕물이 잘 안 보이니 다행이라고 했다.
부지런히 나와 이번에는 황하모친상(黃河母親像)을 보러 갔다. 중국에서는 황하를 어머니로 보고 중국 사람들은 모두 황하의 자식으로 본다는 것이다. 황하모친상은 누런 조명을 받고 누워 있는 여인의 곁에 아기가 엎드려 있었는데,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본 중국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10월14일 맑음. 가욕관. 아침 8시쯤 가욕관역에 내려 인원을 점검하니 4명이 없다. 먼저 나갔나 보다 생각하고 그냥 나가려는데 김 사장이 역무원에게 부탁해 떠나려는 열차를 붙잡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때서야 정원식, 임경희, 우정복, 윤영자씨가 짐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마 내리라는 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다. 우리는 아찔한 순간을 모면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위진벽화묘(魏晋壁畵墓)를 보러갔다. 겉에서 보기에는 평범한 돌무더기에 불과했으나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니 부부합장묘 안쪽 벽에 온갖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벽돌 하나하나에 소, 멧돼지, 닭 등을 잡는 모습도 있고, 요리하는 모습, 뽕나무의 새를 쫓는 모습 등 일상생활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었다. 몇 백 년을 지난 그림 같지 않게 선명한 색깔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가욕관성에서 나와 현벽장성(懸壁長城)이라고도 하고, 단벽장성이라고도 하는 만리장성 끝자락을 보러갔다. 갈 길이 머니 조금만 올라갔다가 돌아오라는 것을 30분만에 정상의 성루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니 정말 빠르다며 가이드가 혀를 내둘렀다. 가욕관 관광을 마치고 오후 3시가 넘어 돈황으로 출발했다. 돈황까지는 포장도 안 된 고비사막의 흙먼지 길을 하염없이 달렸다. 무슨 화물차들은 그리도 많은지 이 육중한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나 10m 앞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실크로드는 옛날에만 물류의 중심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길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9시간 이상 달리려니 엉덩이가 배기고 허리가 뻐개지는 것 같다. 길에는 당연히 화장실도 없어 수시로 노상방뇨를 일삼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차 타고 가기도 이렇게 힘든데, 이런 길을 몇 달씩이나 낙타 타고 다녔을 옛 상인들을 생각하니 비단이 뭐길래 그 고생을 했을까 싶다. 실크로드는 비단결같이 아름다울 줄 알았더니 아주 사람을 잡는 길이었다. 그래도 가는 도중 이종성님이 고비사막 노래를 불러 피곤에 지친 우리에게 작은 위안이됐다.
10월15일(토) 맑음, 돈황.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날을 새우고 아침 일찍 명사산으로 향했다. 명사산(鳴沙山)이란 모래로 된 산인데, 밟으면 모래의 마찰로 소리가 난다고 한다. 난생 처음 낙타를 타려니 좀 겁이 났지만 남들도 다 타는데 못 타랴 싶어 안장 앞의 손잡이를 잔뜩 부여잡고 낙타 등에 오르니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앞뒤로 까불더니 낙타가 일어섰다. 일단 일어서니 별 어려움 없이 명사산 밑에 도달해 거기서부터는 계단으로 올라갈 사람은 20원을 내고 올라가 썰매로 내려오고, 걸어 올라갈 사람은 모래산을 그냥 올라갔는데 한 발짝 올라가면 두 발짝 미끄러지니 할 수 없이 손가락을 모래에 꽂으며 네 발로 기어 올라갔다. 아직 햇볕을 받지 않은 모래는 어찌나 차가운지 장갑을 끼어도 손가락이 동상에 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미끄러지며 고꾸라지며 능선 부근까지 오르니 난생 처음 보는 모래언덕이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월아천에서 낙타를 타고 다시 나와 호텔에 와서 샤워하고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우정복님이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대장님과 김사장님은 얼굴이 일시에 사색으로 변하고 회원들에게도 먹구름이 내렸다. 명사산에서 내려와 사진을 찾을 때 많은 중국인들과 섞이면서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생각한 대장님은 명사산 관리소에 전화를 하여 한국 여권 주운 사람이 있으면 특별히 사례하겠다고 연락하고, 돈황 박물관을 보러 갔는데 우정복님과 김사장은 둘이서 대사관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는 우정복님을 보는 회원들은 여기서 아주 이별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 투르판의 화염산을 낙타로 오르고 있다. 사막 사람들에게는 물 위 세상이 극락세계
이렇게 불상과 벽화를 보고 있는데 우정복님과 김 사장님이 돌아왔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대사관 직원이 다시 나와 임시통행증을
발급해줘 같이 관광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정복님을 다시 만난 우리들은 죽었던 사람이 살아온 듯 기뻐 어쩔 줄
몰랐다. 10월16일, 투루판. 아침 5시 반쯤 투루판역에 내린 우리는 머릿수를 몇 번씩 세어본 후 30명이 무사히 내린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식사를 하고는 고창(高昌) 고성으로 이동, 당나귀차를 타고 성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고창고성은 고대 고창국의 성터인데,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13세기경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은 무너진 성벽과 불탑이 겨우 남아 있을 정도였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 그
때의 번성을 짐작케 할 뿐이다. 남아 있는 성벽을 바라보니 이곳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그 때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지금과 같이 생을 고민하면서 서로 사랑하며 살았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이라도 그 때의 사람이 벽 뒤에서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창고성에서 나와 아스타나 고분을 보러 갔는데, 아스타나는 위구르어로 ‘휴식의 장소’라는 뜻이란다. 여기에는 귀족의 묘, 상인의 묘,
평민의 묘가 있었는데, 평민인 부부 묘에는 부부의 미라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남자는 40대에 폐결핵으로 숨졌고, 여자는 70대에 숨졌다는데,
어떻게 폐결핵이란 것까지 알아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화염산은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던 현장법사가 지나간 곳인데, 서유기에서 우마왕의 집이기도 했단다. 화염산은 이름 그대로 생긴 것도 불꽃 모양이고, 색깔도 불꽃 색깔이고, 여름에는 55℃까지 올라가는 불의 산이란다. 정상에서 깃발까지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는 다시 내려오는데, 대장님은 오른쪽 모래 계곡으로 쏜살같이 뛰어 내려가시고 여자들은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다들 달려 내려가고 무릎과 발가락이 시원찮은 나는 제일 뒤에서 천천히 내려오는데 임양숙씨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천천히 보조를 맞춰 주었다. 화염산에서 내려와 교하고성(交河古城)으로 향했다. 교하고성은 두 개의 하천이 교차하는 곳에 있었다. 2세기에서 14세기까지 번성했다가 멸망한 교하국의 성이란다. 교하고성은 두 하천 사이로 치솟은 30m 벼랑을 위에서 아래로 파들어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벽에는 지층이 그대로 남아 있고, 벽돌로 쌓은 고창고성처럼 허물어지지 않아 많은 건축물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번성했던 수많은 나라들이 이토록 폐허로 변했는데, 중국 귀퉁이에 코딱지만 하게 붙어 있는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것은 생각할수록 기적 중의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인생무상, 나라무상이란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고성을 돌아 다시 나오는데 늙은 할아버지와 어린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카메라맨들이 사진을 찍기에 웬 일인가 했더니 영화촬영 중이란다.
무슨 영화인지 몰라도 나중에 혹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꼭 봤으면 좋겠다.
새벽별 보기 운동으로 시작되는 답사여행
10월17일, 우루무치. 아침에 일어나니 이 날도 양숙씨가 토마토 주스를 마시라고 준다. 매일 주스에 과자에 다시마에 대추에 해바라기씨에
껌까지 얻어먹으니 미안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부실한 줄 알고 대장님이 항상 짭짤한 룸메이트를 짝지어주시니 해외만 나가면 호강이다. 난생 처음
오만 가지 음식이 다 들어오니 내 위장이 엄청 감동 먹었을 거다.
우루무치에 도착해 홍산(紅山)공원에 올라갔다. 정상에 빨간 벽돌로 된 탑이 있었다. 진룡탑(鎭龍塔)이다. 옛날 이 지방에 홍수가 자주 나서 피해가 컸는데, 한 관리가 낮잠을 자던 중 꾼 꿈에서 도사가 나타나 홍수가 나는 것은 용의 조화이니 홍산과 그 옆의 야마리크산 사이에 탑을 세워 용을 진정시키면 홍수를 막을 수 있다고 하여 이 탑을 세웠더니 그 후로 비가 잘 안 온다고 한다. 홍산공원에서 나와 천산 천지(天山 天池)를 보러갔다. 천지는 백두산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천지가 있는 모양이다. 원래는 천지 밑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요즘은 관광객이 많지 않아 움직이지 않는다 하여 하이브리드카를 타고 올라갔다. 천지에 도달하니 맑고 푸른 물 위에 만년설을 인 봉우리들이 비쳐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여기서 유람선을 타고 천지를 한 바퀴 돌았는데 호 선생은 여기 찍으랴 저기 찍으랴 이 사람 찍어주랴 저 사람 찍어주랴 정신이 없다. 카메라도 좋고 ‘찍사’도 좋아 사진이 기막히게 나오니 너도나도 찍어달라고 야단이다. 한 번 여행 갔다 오면 사진 값만 100만 원 넘게 나온다는데, 매번 공짜로 주니 언제나 이 신세를 다 갚으려나 모르겠다. 그저 하시는 사업이 잘 되어 앞으로도 계속 같이 다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천지에 정신이 팔려 있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려 했다. 위구르 박물관이 문 닫을지도 모른다고 허둥지둥 내려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는데 하도 차가 막혀 꼼짝하지 않는다. 걷는 게 더 빠르겠다며 버스에서 내려 부지런히 걸어가니 막 문을 닫으려고 한다. 사정해서 들어가니 불까지 다 끄고 문도 잠갔다가 다시 불을 켜고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박물관 속에는 여러 민족의 고유의상, 그림, 생활용품들이 있었는데, 다리미는 옛날 우리나라에서 숯을 넣어 쓰던 것 하고 똑같이 생겼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아기 요람이었는데, 요람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기들 오줌 받아내는 구멍이란다. 누워 있는 아기 고추에 ㄱ자 형태의 나무대롱을 끼워 밑으로 내려가게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기저귀를 채우는 것보다 더 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볼 것 다 보고 저녁에는 또 민속쇼를 보며 식사하는 곳에 갔는데, 안순자님 내외가 거금 300달러를 내어 한 턱 쐈다. 쇼도 화려하고 음식도 푸짐했는데 신나게 먹다보니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화장실 표시가 없어 일하는 아줌마에게 토일릿이라고 해도 모르고 더블유씨라고 해도 몰라서 할 수 없이 쉬이~ 했더니 단박 알아듣고 저쪽으로 가라고 가르쳐준다. 하여간 어줍잖은 영어보다는 바디랭귀지가 최고다. 10월18일, 카시.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으로 이동해 카시로 향했다. 카시의 원래 이름은 카슈가르. ‘옥석 같은 땅’이란다. 이번 여행은 연일 새벽별 보기 운동이었다. 별 보고 출발하여 별 보고 호텔에 들어오니 북한의 새벽별 보기 운동보다 더 하드 트레이닝이다. 인도에서 귀국하던 당나라 현장법사도 이곳에 들렀는데, 그 때도 꽃과 과일이 풍성했다고 한다.
카시공항에 내리니 오전 8시 반이 되었는데도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중국은 전체가 북경을 표준시로 잡기 때문이란다. 대장님이 주신 지도를 보니 카시가 북위 39도쯤 됐다. 우리나라도 38도선 부근이니 위도는 비슷한데 북경과의 경도차 때문인 것 같다. 북경은 동경 약 115도이고, 카시는 동경 75도밖에 안 되니 40도 차이면 1시간에 지구가 15도 자전하니까 약 2.7시간이 늦는 셈이다. 그러니 신강자치구 시간으로는 6시도 안 된 것이다. 공항에서 곧 바로 아이티카 청진사(淸眞寺·이슬람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보러갔다. 청진사는 신강자치구에서 가장 큰 청진사라고 했는데, 들어갈 때는 여자 남자가 팔짱을 낀다거나 짧은 팔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기는 이슬람교도들이 대부분이라 길거리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뒤집어쓰고 다니는 여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얼굴까지 시커먼 머플러를 썼는데 어떻게 앞이 보이는지 잘도 걸어 다녔다. 신을 벗고 청진사 안에 들어가니 예배시간이 아니어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벽에는 현재 시각을 알리는 시계와 예배시간을 알리는 6개 시계가 걸려 있고, 예배를 주관하는 아홍(위구르족 이슬람 승려)이 앉는 의자와 큰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이 카펫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물건이라 했다. 사원에서 나와 화장실에 가려고 ‘WC’라고 쓴 곳으로 갔더니 한 남자가 못 들어가게 한다. 여자 화장실은 아예 없고 남자 화장실만 있는데 그것도 돈을 내야한다기에 대장님도 그냥 돌아오셨다. 속으로 ‘에라이~, 여기 아니면 화장실 없냐?’ 하며 돌아나왔다. 하여튼 회교국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청진사에서 나와 위구르 시장 거리를 구경했다. 푸줏간에, 대장간에, 과일가게 등등 우리나라 옛날 장터 같았다. 포도가 어찌나 싼지 1kg에 2원(우리 돈으로 280원)이었다. 우리는 포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베이징서 자살한 향비의 시신 3년 반 걸려 운구
........................................................................................................................... |
[중국 실크로드(하)]
‘그저 가고 또
가고 눈만 뜨면 가는 게 이번 여행’ | ||||||||||||||
10월19일(수) 맑음, 카라쿨 호수. 아침 6시에 모닝콜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6시 반이나 되어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비몽사몽간에 "Hello! This is morning call"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늦게 울려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 시간으로는 새벽
3시밖에 안 되니 미안한 생각에 “Thank you" 하고 끊고는 부리나케 준비를 했다. 위풍당당한 순백의 설산 무즈타그아타
다시 출발해 얼마를 가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거대한 호수가 나타나고 호수 옆에는 순백의 설산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하나는 무스타그아타이고, 하나는 콩구르란다. 무즈타그는 빙산의 아버지란 뜻이란다. 그리고 카라쿨이란 검다는 뜻이라고 했는데, 호수의 색깔이 햇볕에 따라 일곱 가지로 변한다고 한다. 주변 경관에 압도된 우리는 밥 먹을 생각도 안 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김 사장이 빨리 식사하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모두들 식당으로 들어가 뚝딱 해치우고는 또 나와 설원 위를 걸어다녔다. 대장은 말을 타고 눈부신 설원 위를 달렸고, 우리는 더 늦으면 눈이 녹아 되돌아가지 못 한다고 김창묵씨가 채근해 겨우 버스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도 설산에 정신을 뺏겨 경관을 보기 바빴다. 조수경씨는 조수석에서 더 잘 보인다고 맨 앞의 조수석에 앉아 일어설 줄 몰랐다. 조수경이 조수석에 앉았는데 누가 감히 일어서라 하겠는가?
땅도 검고, 사람도 검고, 집도 검고, 옷도 검고
10월20일(목) 맑음. 카시에서 허텐으로. 아침에 일어나 떠나기 전에 대장이 카시에는 볼 것이 없냐고 물으니 반초성이 있단다. 반초는
청나라 장군으로 카시성을 공략한 사람인데, 그 승리를 기념해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이 안 열린 관계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허텐으로 출발했다. 허텐까지는 540km로 8시간이 소요된단다. 하도 이동하다 보니 이제 9시간 10시간은 보통이다 싶다.
얼마를 더 달리니 아만니사한 묘다. 아만니사한이란 여자는 왕비로서 전래음악을 모아 편찬한 사람이란다. 34세에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는데, 초상화를 보니 절세미인이다. 미인박명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재수 없으면 90살까지 산다는데, 이 말대로라면 나는 100세도 넘게 살 것 같다. 신강성 사람들을 보면 땅도 검고, 사람도 검고, 집도 검고, 옷도 검고,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인간이란 잠시 뭉쳐졌다 허물어지는 흙이요, 수면에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물방울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저리 가라
볼 일까지 무사히 마치고 호텔을 출발해 마리크와티 고성을 향했다. 고성 가까이 가니 한 떼의 당나귀 마차가 길을 막고 앞서간다. 입구에 도착하니 서로 자기 당나귀를 타라고 난리다. 원래 두 명씩 타는 마차를 한 명씩 타서 거기 있는 마차를 모두 타 주기로 했다. 이 고성은 당나라 때 번성했다가 당나라 말기에 망했다고 한다. 다른 고성처럼 벽들만 조금 남아있다. 흙으로 된 성벽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는 다시 당나귀 마차를 타고 나왔는데, 꼬마 여자 아이가 좇아오며 장갑 달라 머플러 달라 성화여서 장갑만 벗어주고 내렸다. 다른 회원들도 이것저것 다 빼앗겼단다. 한 번 더 탔다가는 껍데기까지 다 벗게 생겼다. 고성에서 나와 이번에는 무화과나무 왕을 보러갔다. 이 무화과나무는 옛날에 한 농부가 예쁜 아가씨와 결혼했으나 수년간 애기가 없어 곤륜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는데, 한 노승이 지팡이를 주며 이것은 서왕모가 준 것이니 가져가라고 하더란다. 그 지팡이를 집에 가져와 땅에 꽂으니 하루만에 뿌리가 내리고 사흘만에 열매가 열려 부인이 이 열매를 먹으니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단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긴 포도나무 터널을 지나 요타간 유적지를 보러갔다. 말이 유적지지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두 목화밭으로 변한 곳에 단지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허텐의 청진사(힌두교 사원)를 보러 갔다. 마침 예배객들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와 거리를 가득 메워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거리에는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로 귀청이 찢어질 지경이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저리 가라였다. 청진사까지 다 보고는 민펑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를 보니 문득 양은 왜 사나 싶었다. 인간에게 잡아먹히려고 사나. 하다가 그러면 인간은 왜 사나. 죽으려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것이 좋을까. 아니다. 그래도 이 세상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 싶었다. 얼마를 더 가니 마침 지평선으로 해가 진다. 떠오르는 해는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 같아 희망찬 모습인데, 지는 해는 한 인생의 막이 내리는 것 같아 처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
이 엄청난 목화가 다 어디로 팔려가는지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 대장이 나와 지리산 소설 이야기, 오세암 설화 이야기, 본인의 자서전 등등으로 우리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그래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어느 덧 쿠얼러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 후 김 사장과 김창묵씨가 모두 고생했다며 발 마사지를 시켜주겠다고 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을 판이라 우리는 모두 한 호텔로 들어갔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갑자기 들이닥치니 마사지 해주는 아가씨가 모자랐는지 45분 한다는 맛사지가 20분씩 시늉만 내고 말았다. 회원들이 불평하자 김 사장은 김창묵씨에게 반 값만 주라고 하고는 팁으로 2불씩 걷었던 것도 주지 않고 가지고 와버렸다. 쿠얼러는 녹화가 가장 잘 된 곳으로, 길에 휴지 버리면 벌금 50원, 꽁초 버려도 50원이라고 하더니 정말 도시 전체가 깨끗하다.
순천만 갈대밭 같은 연화호 연화호까지 보고는 서둘러 차에 올라 우루무치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황량한 산들만 이어지니 보는 것도 지쳐 비몽사몽간에 가다가 깨어 또
노상방뇨를 하고는 몸을 푼다고 대장이 국민체조를 하자고 했다. 대장 구령에 맞춰 한바탕 체조를 하고는 대장의 태권도 시범까지 감상한 후 다시
차에 올랐다. 우루무치에 도착하니 벌써 오밤중이라 바자르도 다 닫아 몇 안 되는 가게에서 또 스카프를 사들고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두 팀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호텔로 들어가 발 마사지를 받았는데, 어제 실수를 거울 삼아 오늘은 단단히 시간 약속을 받고는 1시간이 넘게 어깨까지 마사지를
받았다.
두 팀의 마사지가 다 끝나자 새벽 1시도 넘었다. 지난 번 우루무치에 왔을 때도 호텔에 몇 시간 머물지 못하고 나갔는데, 이 날도
마찬가지라며 오성급 호텔에서 얼마 못 자는 게 아쉽다고 부지런히 방으로 들어갔다.
.................................................................................................................................. |
'[취미생활과 여행] > 세계의 명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80]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은 도시 라파스 (0) | 2007.04.24 |
---|---|
[스크랩] 인도 최고의 호반의 도시...우다이뿌르 (0) | 2007.04.24 |
[스크랩] 세계 여행지 1위부터 49위 (0) | 2007.04.21 |
홍콩 마니아도 모르는 숨은 관광지 '옹핑 360' (0) | 2007.04.21 |
[스크랩] `영원한 도시’ 로마를 상징하는 콜로세움 (0) | 2007.04.21 |